책은 자신과 대화하며 다른 이들과 함께 가는 길

박상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책임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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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한 지 한 달이 넘어서야 얼추 책 정리를 마칠 수 있었다. 어머니는 지난 해 홀로 되시면서 맏자식인 우리와 살림을 합치기를 바라셨다. 하여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그간 살던 집을 떠나 좀더 큰 평수의 아파트를 새로 얻어 함께 살게 되었다. 먼저 어머니가 이사하셨고, 일주일 뒤 우리가 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당신의 이삿짐이 옮겨지자마자 그만 병원에 실려 가셨고, 급기야 허리 수술을 받게 되셨다. 그로부터 스무 날 가량을 입원하셨으니, 그 사이 이사한 아들과 며느리 내외가 오래 떨어져 있던 두 집의 세간붙이들에게 제자리를 잡아주기란 그리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책을 정리하는 데 오래 걸린 까닭은 책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사할 때는 대개 그랬듯 이번에도 또 책 때문에 마음을 다쳤다. ‘어디 기증할 데 없어요?’ 바리바리 싸서 옮긴 책들을 다시 하나하나 풀어서 서가에 꽂는 내 등 뒤로 아내의 무심한 한 마디가 흘러내렸다. 여섯 해 전 이사할 때 그야말로 이천 권 이상을 ‘어디 기증’하는 바람에 지금은 썩 줄었음에도 또 기증하란다. 하지만 서재라기에는 비좁기만 한 공간에다 딴에 다시는 안 볼 듯한 책들을 세워 놓는 남편이 안쓰러워서 하는 아내의 말을 이해하지 못할 게 무에 있겠는가. 마음이 상한 것은 실은 꽤 똑똑한 줄 알고 있었던 한 지인의 말 때문이었다. ‘인터넷에 다 있는데 무슨 책이 필요해! 그렇대도 다 본 책은 없애야지. 책을 가지고 다니는 건 허영이야.’

그렇다. 요즘에는 거의 모든 정보를 인터넷에서 다 얻어낼 수 있다. 선형적이고 고정적인 기존의 텍스트 형태를 탈피한 인터넷 검색과 하이퍼텍스트는 정보를 주고받는 데 가히 혁명적이다. 특히 최첨단 네트워크 시스템인 하이퍼텍스트는 모든 정보를 상하도 선후도 없이 서로에게 독립적인 텍스트로 존재하게 함으로써 우리의 사고 체계까지 바꿔낸다. 모든 바닷물이 결국 하나이듯 모든 정보도 서로 통하여 마침내 하나를 이루는 인터넷은 말 그대로 ‘정보의 바다’이다. 인터넷 정보와 그 취득 행위를 책과 책 읽기의 대안으로 보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 책 한 권씩과 번갈아가며 씨름해서 얻는 정보의 양하고 인터넷 검색과 하이퍼텍스트를 통해 얻는 정보의 양이 어찌 비교될 수 있으랴.

오늘날의 인류를 있게 한 지식의 역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개별적인 안목과 생각을 정리한 역사와 같다. 따라서 우리는 그 개별자의 안목과 생각을 처음부터 끝까지 깊이 있게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한다. 한 텍스트에서 다른 텍스트로 옮겨갔다 오거나 그러다 아예 앞 텍스트를 포기하는 것은 인터넷에서는 아무 일도 아니다. 이 때 위대한 지식의 역사를 만들어낸 한 인류의 텍스트는 토막만 읽히게 된다. 그의 안목은 툭툭 아무렇게나 잘리고 생각은 잘디잘게 파편화된다. 여기서 우리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차이를 또 절감하고 만다. 그래서 책, 특히 종이책은 가장 소중한 아날로그다. “오늘의 나를 만든 것은 동네 도서관이었다.” 어린 시절 카네기가 세운 작은 도서관의 책벌레였던 빌 게이츠의 고백이다.

2004년 미국 시애틀 시에는 빌 게이츠의 2,000만 달러 기부로 초대형 첨단 도서관이 세워졌다. “활자매체의 무덤”이라는 도서관을 이렇게 세계는 계속 짓고 있다. 우리 국민 넷 중 하나는 일 년에 한 권의 책도 안 본다고 한다. 그러니 인터넷 사용량이 세계 1위면서도 독서량에서는 꼴찌일 수밖에. 책은 바로 다 읽을 수도 있고, 제목이나 목차 또는 앞부분만 훑어본 다음 나중에 꼼꼼히 읽을 수도 있다. 또 두고두고 밑줄 그은 데만을 펼쳐볼 수도 있다. 모든 책의 내용이 인터넷에 다 있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사회에 도서관이 필요한 만큼 개인에게는 장서가 소중하다. 인터넷이 ‘정보의 바다’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가는 길이라면, 책은 결국 ‘자신과 대화’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가는 길이다.

/박상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책임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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