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슴 대통령의 허상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
기자페이지

광우병이라는 유령이 대한민국 주위를 배회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이 유령을 사냥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지만 유령의 공포는 확산되고 있다. 광우병 위협은 실체적 진실이 아니라고 아무리 국민을 설득해도 의혹만 증폭시킬 뿐이다.

광우병에 대한 과학적 진실이 무엇인지는 아직 논란거리다. 전문가들은 미국 쇠고기를 먹고 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정부와 여당은 광우병 괴담이 확산되는 것의 책임을 일부 인터넷의 선동과 미디어의 무책임한 보도의 탓으로 돌린다.

이 세상에 절대적으로 안전한 것은 없다. 모든 위험은 확률적이다. 확률로만 보자면,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광우병에 걸리는 것보다는 자동차 사고로 사망할 확률이 훨씬 더 높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동차 판매를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필자는 문제의 심각성은 광우병 자체의 위험성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라고 본다. 전자의 위험은 허구일 수 있지만, 후자의 징조는 사실이기 때문에 이는 심각한 문제다.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은 ‘말 잘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일 잘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실제로 미국을 방문하여 그가 얼마나 일 잘하는 대통령인가를 보여주기 위해 일거에 쇠고기 수입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미국의 자동차 관세철폐를 위해 쇠고기 검역 조건을 완화하고 연령에 관계없이 모든 쇠고기를 수입하는 선물을 부시 대통령에게 주었다. 이 대통령은 이 거래를 철저하게 장사꾼 마인드에 입각해서 했다. 절대 손해나는 장사가 아니라는 것이 그의 계산이었다.

저번 달 일본 방문길에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질 좋은 고기를 들여와 일반 시민들이 값싸고 좋은 고기 먹는 것, 맘에 안 들면 적게 사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을 시장이 결정한다는 논리다. 이 같은 시장지상주의를 신봉한다면 따로 정부가 존재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취임 초기 이 대통령은 공직자는 국민의 머슴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요새 그의 언행을 보면 그 말이 빈말임을 알 수 있다. 그는 누구인가? ‘왕회장’으로 군림했던 정주영 회장을 상사로 모셨던 분이 아닌가. 청와대의 어느 누구도 대통령에게 직언하지 못한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사소한 것까지 일일이 지시하는 대통령의 ‘말’을 이행하기에 급급하다. 머슴이 되기 위해서는 권력이 없어야 하고, 권력을 가진 자는 결코 머슴이 될 수 없다. 머슴 리더십은 예수님이거나 고객의 욕구를 만족시켜서 최대이익을 얻으려는 기업인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 정부를 교회나 기업으로 착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교회와 기업은 정반대의 논리로 운영된다. 전자가 이타심으로 모인 공동체라면, 후자는 이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모인 집단이다. 이 대통령은 둘 사이의 모순을 머슴 리더십으로 지양을 하고자 했다. 성급한 판단인지 모르나 그 성과는 실패로 드러나고 있다. 최악의 경우, 한편으로는 이 대통령이 ‘대한민국 주식회사’의 CEO고 국민은 직원이 되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 측근들인 ‘강부자’와 ‘고소영’끼리만의 신앙공동체가 될 수 있다.

광우병 사태로 이명박 대통령은 탄핵의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탄핵의 위기가 역전의 기회였다. 하지만 이 대통령에게는 그럴 것 같지 않고, 이는 위기의 시작이 될 수 있다. 더 늦기 전에 이 대통령은 자기 잘못을 시인하고 반성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잃어버린 국민의 신뢰를 되찾아야 한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을 뽑은 국민들은 명심해야 한다. 이 대통령의 실패는 단순히 그의 몰락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불행이라는 사실을.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