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문제와 관련해 입시지옥과 학교폭력은 이미 인내의 한계를 넘어선 지 오래다. 시시때때마다 이들은 우리 주변을 맴 돌며 온갖 분탕질을 치고 있다. 전 국민의 관심 속에서 교육부는 교육부대로, 각급 학교는 학교대로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뭇매를 맞고 있는 형국이다. 최근 들어 새 정부가 학교자율화 추진계획을 발표하자 마자 0교시 수업이 어떻고, 우열반 편성이 어떻고, 과거 신물 나게 보아 왔던 패거리 투쟁의 깃발들이 나부끼고 있다.
학교폭력이 극성을 부리고, 인생을 꽃 피우지도 못한 채 세상을 스스로 등지는 피해 학생들이 있어도, 그 완강한 폭력에 대처하기에 너무나 무력한 이 사회를 우리는 멀쩡하게 두 눈 뜨고 쳐다만 볼 뿐이다. 심지어 교단의 교사들마저 학생의 주먹질에 시달리고 있는 게 작금의 소식이다.
입시지옥과 학교폭력은 교육현장에 사람을 사람답게 키우고자 하는 전인교육의 정신이 매말랐음을 단적으로 말해 준다. 어느 교육자도, 어느 학부모도 인성을 계발하고 건전한 민주시민 의식을 함양하는 전인교육이야말로 나의 제자, 나의 자식을 위해 정말로 중요함을 모르지 않는다. 입시지옥과 학교폭력은 이 시대의 저급한 문화가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 병리현상이다. 물신주의와 비인간화를 조장하는 집단적 경쟁 히스테리, 불신과 갈등, 증오와 분노 등이 만연해있는 정치·경제·사회 전반의 저급한 문화가 초래한 재앙이자, 병리현상이다.
이 같은 병리현상은 대중적 요법만으로 치유 할 수 없다. 인간존중의 가치를 구현하는 범국민적 문화예술 교육정책만이 근본적 치유책이다. 문제의 핵심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람답게 살 줄 아는 교양과 품격으로 이 사회를 재건하는 일이다. 우선 전인교육의 정신을 미래의 주역들이 자라나고 있는 청소년 교육현장에 되살려야 한다.
지·덕·체의 조화로운 발달을 도모하는 전인교육은 예술교육이다.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페스탈로치, 현대의 아도르노, 존 듀이에 이르기까지 예술교육은 전인교육을 의미한다. 선진국의 경우 고도의 산업화로 인간정신의 황폐화가 대두됐을 때, 예술교육에서 해법을 찾았던 것처럼 정보화의 심화에 따른 새로운 인간소외의 문제를 풀어갈 해법은 조화로운 인성을 함양하고 삶의 의미를 깨우쳐 줄 예술교육에 있다. 더욱이 21세기는 문화경쟁력의 시대이므로 창의성, 감성, 이미지 등과 같은 소양을 길러줄 예술교육에 큰 비중을 두어야 한다. 우리 청소년들이 교양 있는 세계 일류시민으로 경쟁력 있는 인생을 개척하게 하려면 지금 당장 그들에게 양질의 예술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현재 학교에서의 예술교육은 입시위주 교육에 밀려 예술교육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 이외에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각급 지자체 등이 주도하는 예술교육 지원사업이 있다. 방과후 학교를 활용한 예술교육지원 사업도 추진되고 있다. 이들 사업은 대체로 사업의 대상과 범위의 우선순위를 저소득 가정 아동·청소년, 노인, 장애인, 다문화교육 등에 두고 있다.
이같은 사업은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이제는 청소년 예술교육에 대한 발상을 전면적으로 바꿔야 한다. 청소년 예술교육을 명목상의 학교교육이나 소외계층 복지 차원이 아니라 건강하고 품위 있는 민주시민사회와 세계 일류국가 건설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학교는 학교자율화 시책에 부응해 용기를 갖고 앞장서고, 학부모는 눈앞의 입시가 성공하는 인생의 전부가 아님을 깨닫고, 정부 및 문예회관 등 공공문화예술단체는 학교와 학부모를 적극 지원해야 할 것이다. 학교, 학부모, 공공부문간의 긴밀하고 다양한 청소년예술교육의 지역단위 연계 구축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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