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35년 전인 1973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 개원함으로써 예술가들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 제도가 처음 펼쳐진다. 이 문예진흥기금 프로그램을 대표했던 사업이 ‘문예지 원고료 지원’이다. 어떤 문예지가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면 그 문예지에 실린 문학 작품의 필자에게 국가가 원고료를 지원하고 또 그 40% 정도의 자사 고료까지 더 얹어 지급하게 하는 제도다. 1970~80년대 이 땅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이 지원 프로그램은 그러나, 1989년을 끝으로 폐지되고 만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유신 정권에 맞서 자유실천문인협회가 결성(1974년)되는 속에서도 이 제도는 많은 문인들의 환영을 받았다. 노순자의 단편소설 ‘산울음’(1986년)처럼 내용에 문제가 있다 해서 지원금 지급이 거부되는 작품도 여럿이었다. 시행 첫 해에는 현실 비판적인 경향의 계간지 ‘창작과 비평’, ‘문학과 지성’이 지원을 받았는데, 이들에 대한 지원은 1987년 6월 이후 민주화의 물결을 타고 재개된다. 1989년에는 ‘빨간 책’에 가까웠던 계간지 ‘실천문학’이 지원 대상으로 포함되지만, 여기 수록된 이른바 집단창작 작품에 대하여는 고료가 지급되지 않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러한 일들이 제도 폐지의 이유가 되지는 못하였다.
먼저 지원금의 유용이다. 문예지사 측이 문인들에게 지원 고료를 지급하지 않았던 것이다. 작품을 실어준 것만도 감지덕지하게 생각하는 일부 문인들이 문예지사 측에 가짜 영수증을 써 주고 고료를 받지 않는 일이 흔했다. 일부 시 전문지를 중심으로 자사 고료마저 지급되지 않는 사례도 많았다. 반면 대하 장편소설은 지원금을 독식하다시피 하였다.
다음은 1987년 이후 지원을 기대하고 급증한 문예지 창간 바람이다. ‘실천문학’까지 지원 받는 실정이라면 그 어떤 문예지도 문예진흥기금 지원에서 예외가 되지 않을 터였다.
그러나 그때 실무 담당자였던 필자는 제도 자체가 지닌 한계 때문에 이 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가졌다. 이 제도는 사실상 자의적일 수 있는 기준에 따라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는 문예지의 편집권에 대한 지원 사업이었다. 편집자가 선고한 작품이면 지원금을 지급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었는데, 이렇게 편집자의 안목에 대해 지원한다는 것은 참으로 우스운 노릇이었다. 더 나아가 이는 문예지와 그 편집자의 문단 권력 강화에 대하여 공적 자금을 투입하는 결과를 빚기도 했던 셈이다.
그래서 지난 2005년 시행된 ‘문예지 게재 우수작품 지원’ 사업은 문인들에게 직접 고료를 지원하는 모습을 띠게 된 것이다. (이 또한 필자가 모든 계획을 세웠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함께 시행되고 있는 ‘문예지 구입 배포 지원’과는 별도로 문예지에 대한 지원책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지만 신중해야 할 것이다. 물론 외줄을 타는 듯한 경영 위기를 딛고 좋은 작가와 작품을 발굴해 내는 훌륭한 문예지에 대한 지원은 고려할 만하다.
예를 들면 일정한 수준 이상의 자사 고료를 지급하는 문예지를 대상으로 앞서 말한 ‘문예지 게재 우수작품 지원’ 총 금액이나 작품 수와 연동하여 사후에 문예지를 평가하여 지원하는 제도 말이다.
‘2006 문화미디어산업백서’에 따르면 2006년 현재 문예지는 221종이다. 월간 ‘현대문학’이 경영난으로 인한 폐간 위기를 겨우 벗어난 게 2002년이었는데, 요즘도 없어지는 문예지보다 새로 생겨나는 문예지가 많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문예지가 문학 권력의 최일선 수단으로 기능한다는 변함없는 사실 때문이 아닌가. 참으로 안타깝다. 환경적 요인으로 순문학의 위기를 논하기 전에 문학계의 자성부터 해야 할 대목이다. 발표 지면이 많아져 좋다지만 함량 미달의 ‘문학교실 신인’, ‘아카데미 신인’ 장사 때문에 공멸해 가는 우리 문학의 앞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땅의 문예지는 18년 전의 교훈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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