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과 서양의 자연관
<불꽃처럼 살다 간 조선의 화가>
자화상은 화가 자신의 모습을 통해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화가에게 작품은 종종 자화상의 역할을 한다. 자유분방한 성격의 화가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기질을 작품에 그대로 보여주곤 한다. 내면의 치열한 고뇌를 안고 살아가는 화가의 그림은 그늘과 자기 분열의 그림자가 스친다. 화가에게 캔버스는 내면의 창(窓)이다.
조선시대의 회화 중에 내게 가장 파격적인 느낌을 주었던 것이 최북의 <풍설야귀인도(風雪夜歸人圖)> 이다. 이 그림은 당시의 어느 화가에게서도 비슷한 화풍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하다. 먼저 몇 개의 선으로 대충 그린 것 같은 나무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대체로 조선시대의 산수화들을 보면 전면의 나무를 상세하게 표현되고 있다. 강세황의 <벽오청서도> , 김정희의 <세한도> , 김득신의 <풍속팔곡병> 등이 그러하고 풍속화의 대가라고 할 수 있는 김홍도의 <밭갈이> 나 신윤복의 <단오풍정> 도 그러하다. 하지만 <풍설야귀인도> 의 나무들은 몇 개의 굵은 선으로 성기게 묘사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지두화(指頭畵)여서 더 억센 표현이 나타난 것 같다. 붓 대신에 손가락이나 손톱에 먹물을 묻혀서 그리는 그림 말이다. 풍설야귀인도> 단오풍정> 밭갈이> 풍속팔곡병> 세한도> 벽오청서도> 풍설야귀인도(風雪夜歸人圖)>
손가락으로 투박하게 그렸지만 상황을 더 없이 적절하게 묘사하고 있다. ‘풍설야귀인(風雪夜歸人)’이란 말 그대로 눈보라 치는 겨울밤에 귀가하는 나그네의 모습을 뜻한다. 밤에, 그것도 눈보라치는 밤에 나무의 모습은 경계가 무너진 흐릿한 모습일 수 밖에 없다. 또한 제법 굵은 나뭇가지들이 일제히 한 방향으로 휘어져 있어서 꽤 거센 바람이 불어대고 있음을 짐작케 해준다. 뒤로는 몇 개의 산봉우리가 어렴풋한 윤곽만을 드러내고 있다. 나무 밑으로 허리를 숙인 나그네가 동자를 데리고 힘겨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왼쪽으로는 개 한 마리가 그려져 있는데, 다리를 구부리고 긴장된 모습으로 있는 모습이 요란하게 짖어대고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이 그림은 화가로서의 최북의 일생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는 흔히 ‘한국의 반 고흐’라 불리기도 한다. 물론 화풍 때문이 아니라 기이한 행동 때문이다. 고흐는 격정에 못 이겨 자신의 귀를 잘라버렸다. 최북은 화가로서의 자존을 위해 스스로 눈을 찌르고 평생의 외눈으로 살아야 했다. 그는 산수화를 잘 그려서 최산수(崔山水)라고 불렸다고 한다. 호는 호생관(毫生館)이었는데 ‘붓(毫)으로 먹고 사는(生) 사람’이라는 뜻으로 스스로 지었다고 한다. 그만큼 직업적인 화가로서의 프로 기질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자유인이기도 했다. 한 세도가가 권세를 앞세워 그에게 여러 번 그림을 강요하자 차라리 내 자신을 자해할지언정 남에게 구속받지 않겠다며 필통에서 송곳을 꺼내서 자기 눈을 찔렀다고 한다. 그는 하루 대여섯 되씩의 술을 마셔대어 주광화사(酒狂畵師)라 불리기도 했는데 그림을 팔아가며 전국을 주유하였다. 주유 중 금강산 구룡연(九龍淵)에 이르러서는 “천하의 명인이 천하의 명산에서 죽는 것이 마땅하다”며 투신했으나 미수에 그쳤다고 하니 그의 광기를 짐작할 만하다. 그는 어느 눈 오는 밤에 만취한 상태로 귀가하다 쓰러져 동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눈보라 속을 헤치며 걷는 그림 속 나그네의 모습에서 자신의 운명을 예감했던 것일까….
<동양화에 나타나는 자연관>동양화에>
다른 한편으로 최북의 그림은 비록 당대의 화가들과 화풍은 다르지만 동양화의 일반적인 자연관을 그대로 보여준다. <풍설야귀인도> 만 보더라도 인간은 자연의 일부로 등장한다. 하늘과 땅과 나무와 짐승, 그리고 인간이 높고낮음 없이 공존하고 있다. 거센 눈보라에 나무도 흔들리고 사람도 웅크린다. 어디 한 군데 자연에 군림하는 인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다. 오히려 광대한 자연 앞에 보잘 것 없는 존재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 겸손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풍설야귀인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동양사상은 대체로 자연과 인간을 공존관계로 파악한다. 도가(道家)와 불가(佛家)의 경우는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다. <대살차니건자경(大薩遮尼乾子經)> 의 다음 대목은 불교의 자연관을 잘 보여준다. “성읍이나 촌락과 산림, 연못과 동산, 궁정과 누각, 모든 도로와 교량, 자연적인 동굴주택과 일체의 농작물, 꽃들과 열매, 초목과 숲 등을 태워서는 안 되며 파괴하지 말아야 하며 물을 빼지 말며 자르거나 베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에는 다 생명을 가진 짐승들과 곤충들이 있으므로 그 죄없는 중생들을 상하게 하거나 그 목숨을 해치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인간이 자연을 이용하는 것조차 작은 벌레와 같은 미물이라도 상하지 않게하는 것이 전제가 된다. 철저하게 자연을 중심으로 인간을 바라본다. 인간도 자연의 여러 생명 중의 하나에 불과한 존재이고, 그 이상의 특권적 지위가 인정되지 않는다. 스님들이 지팡이를 지니는 것도 발걸음에 앞서 미리 지팡이를 짚음으로써 행여 작은 벌레라도 발에 밟혀 죽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니 자연 중심의 세계관을 얼마나 강조하는지 쉽게 짐작이 간다. 대살차니건자경(大薩遮尼乾子經)>
유가(儒家)는 인간에 의한 자연의 이용을 인정하되 과도한 파괴를 경계한다. <맹자> 의 양혜왕편의 다음 대목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꾀하는 유가적 자연관이 잘 묻어난다. “때맞추어 농사를 짓게 하면, 수확이 풍성하여 먹고 남을 것이다. 촘촘한 그물로 연못이나 강물에서 생선을 잡지 않으면, 강물이나 연못에는 먹기 풍족할 만큼 물고기가 있을 것이다. 도끼를 들고 때맞추어 숲속에 들어가면, 숲에는 쓰고 남을 만큼 목재가 풍족해질 것이다. 곡식과 생선이 먹고 남을 만큼 있고, 재목도 쓰고 남을 만큼 있다면, 이는 백성들로 하여금 살림살이를 유지하고, 장례를 치르는데 유감이 없게 한다. 살림살이를 유지하고, 장례를 치르는데 유감이 없다면, 이것이 바로 왕도의 시작이다.” 인간의 삶을 위한 살생은 인정되나 촘촘한 그물로 필요 이상의 고기를 잡는 것은 안 된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기만 한다면 자연은 인간에게 필요한 것들을 풍족하게 제공한다는 생각이다. 맹자>
조선 선비들의 그림만이 아니라 시조를 봐도 유가와 도가의 영향이 진하게 풍긴다. 조선의 문신인 송순(宋純)의 시조 하나를 보자.
십년을 살면서 코딱지만한 초가삼간을 지은 게 전부다.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는 데 큰집이 필요할 일이 없다는 생각이다. 그나마 그 초가삼간 중에 자신은 한 간에서 살면 된단다. 나머지 두 간에는 각각 달과 맑은 바람을 들이겠단다. 어디 한군데에서도 자연에 대한 인간의 오만함을 발견할 수 없다. 자연과 인간이 일체화되는 순간이다.
최북의 다른 작품인 <조어산수도(釣魚山水圖)> 를 봐도 마찬가지다. 빠른 속도로 순식간에 그렸을 것 같은 기암괴석이 화면에 가득하다. 전면에는 가느다란 버드나무의 한 그루가 물 쪽으로 자연스럼게 가지를 내려뜨리고 있다. 뒤로는 초가로 지은 누각이 자연의 일부인 양, 강산이 생길 때부터 원래 거기에 있었던 것처럼 한가롭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늘과 물이 마치 한 몸처럼 맞닿아 있다. 그 사이에 한 어부가 조각배를 띄우고 낚시를 하고 있다. 자연을 거스르는 존재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자연과 동화된 존재로 느껴진다. 조어산수도(釣魚山水圖)>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동서양의 상이한 태도>인간과>
하지만 서구적인 자연관은 자연을 지배의 대상으로 여긴다. 괴테의 <파우스트> 는 서구의 자연지배사상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파우스트>
서양화에서도 대체로 자연은 인간을 강조하기 위한 보조적인 장치로 등장한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이 인물화의 배경 역할이다. 근대 이후에는 자연 자체 중심으로 묘사하는 풍경화도 발달했지만 자연과 인간의 일체화, 동화의 측면보다는 인간의 시점에서 감상의 대상으로서 주로 다루어진다. 웅장한 자연 경관을 사실주의에 기초하여 표현한 대표적인 서양화가로 카스파(Caspar David Friendrich, 1774~1840)를 꼽을 수 있다. 그는 독일 낭만주의 회화를 대표하는 작가로, 가을·겨울·새벽·안개·월광 등의 풍경을 즐겨 표현하였다. 그의 작품 속에서는 거대한 스케일의 자연과 작은 인간이 전형적으로 대비된다. 그 가운데 <안개 낀 바다를 바라보는 방랑자(wanderer above the sea of fog)> 는 대표작에 해당한다. 안개>
작품 제목 그대로 한 남자가 안개 자욱한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안개가 피어오르는 바다의 모습이 마치 거인이 꿈틀거리며 일어나는 것처럼 웅장하다. 어찌 보면 바위 위에 서 있는 남자가 위태로워 보일 정도로 위압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그런 점에서 자연을 오직 지배와 개조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았던 서구적인 자연관과는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있는 듯하다. 이 작품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그의 작품에서는 자연 자체의 아름다움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하지만 형식적으로 인간의 모습이 작게 묘사되어 있다고 해서 동양화에서 나타나는 자연관과 동일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인간은 자연을 감상하는 주체이고 자연은 단지 대상일 뿐이다. 일체감보다는 어쩔 수 없는 거리감이 느껴진다. 인간과 자연을 분리시키는 뿌리 깊은 서구적 사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현재 우리의 시각은 최북일까, 카스파일까? 동양화의 정신은 전시장에만 있을 뿐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서양화의 정신, 서구적 이원론이 아닐까?
/박흥순(유레카 대표강사)
불꽃처럼>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