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 김종휘의 대중문화로 읽는 논술 >

개그계를 사로잡은  호통 개그

신문 방송은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올해의 10대 뉴스니 하는 것들을 뽑는다. 그중 대중문화계, 특히 TV를 위주로 하는 연예계도 주된 관심의 대상이 된다. 드라마, 오락, 가요 등 분야별로 다루기도 하고, 올해 특히 뜬 스타 연예인이 누구며 저문 스타 연예인은 누구인지 개별 캐릭터를 다루기도 한다. 그런 기사들을 보다 유독 눈에 띈 기사가 하나 있었다. “2007년 연예인들은 건방져야 살아남았다”라고 이야기를 시작한 조선일보 송혜진 기자의 글이었다. 기사는 그렇게 첫 말을 뗀 뒤 이렇게 이어간다. “호통은 인기를 얻기 위한 ‘기본기’였고 잘난 척은 곧 ‘개인기’였다.”

개그맨 박명수, 지상렬, 김구라 등의 호통 개그나 막말 개그가 대표적인 예로 꼽혔다. 뿐만 아니라 가수 솔비나 개그맨 유세윤의 경우 호통까지는 아니나 오락프로그램에 패널로 나와서 상대방을 직설적으로 비꼬거나 잘난 척을 하는 ‘건방진’ 캐릭터를 선보여 인기를 끌기도 했다. 이에 대해 기사는 전문가의 이야기를 빌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워낙 고달프고 팍팍하다 보니까 꽉 짜여진 틀에서 벗어나는 톡 쏘는 한 마디,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언어가 아니라 막무가내처럼 휙 던지는 말 한 마디가 사람들에게 스트레스 해소의 청량제로 새롭게 각광을 받게 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런 일반적인 분석에 덧붙이길, 그렇게 ‘건방진 캐릭터’로 뜬 연예인들은 대부분이 출연하는 오락 프로그램 등에서 메인 NC를 하지 못하거나 2인자로도 자리를 굳히기 힘들었던 ‘하찮은 존재감’을 가졌던 경우라고 해서 눈길을 끌었다. 다시 말해서 메인 NC나 스타 캐릭터로 이미 자리 잡은 연예인이 호통 개그를 하거나 막말 개그를 했다면 그렇게까지 인기를 끌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해진다. 요컨대 ‘잘 나가지 못했던 연예인’이 그 경력을 바탕으로 ‘잘난 척’ 하기 때문에 사랑을 받는 것이지 ‘잘 나가고 있는 연예인’이 ‘잘난 척’을 했다면 과연 호감을 얻을 수 있었을까 하는 시각이다.

이점에서 박명수, 지상렬, 김구라 등의 호통치고 막말하는 캐릭터와 반대로 이미 ‘잘 나가고 있는 연예인’ 캐릭터로 비교 분석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유재석과 강호동일 것이다. 알다시피 유재석과 강호동 두 사람은 지상파 방송 3사와 케이블 TV를 오가며 수많은 오락 프로그램의 메인 NC를 싹쓸이하다시피 하고 있는 ‘귀한 몸’이다. 두 사람이 오락 프로그램에서 메인 NC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보면 상반된 캐릭터가 두드러진다. 이들 두 사람이 진행하는 오락 프로그램에는 예외없이 앞서 말했듯 호통과 막말 개그를 하는 패널들이 나오는데, 메인 NC의 캐릭터에 따라 호통과 막말 개그의 의미도 달라진다.

유재석은 조금만 무리가 생기면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시청자와 패널들에게 자세를 낮추는 캐릭터이다. 패널들의 좌충우돌을 원만하게 아우르는 조율자 스타일의 캐릭터다. 반면 강호동은 “영원하라”와 같이 기를 불어넣는 주도적 캐릭터이다. 패널들과 자주 충돌하면서 이기든 지든 똑 부러지는 결과를 도출하는 캐릭터다. 유재석은 예컨대 ‘자 이제 어디로 갈까요?’ 하고 패널들에게 물어서 그 결과를 수용하는 지도자 스타일이고, 강호동은 ‘자 나를 따르라!’고 앞장서 치고 나가며 ‘너는 왜 안따라 오는가?’라고 묻는 지도자 스타일이다. 그에 따라 똑같은 호통 개그를 하는 패널이라도 그 빛깔이 변화하게 된다.

유재석 캐릭터 앞에서 호통과 막말 개그는 비교적 자유로워 보인다. 리더인 유재석이 계속 달래기 때문에 패널들의 호통과 막말은 귀여운 캐릭터로 귀결된다. 응석을 부리는 모습이 되는 것이다. 반면 강호동 캐릭터 앞에서는 같은 호통과 막말이 전투가 되어 승패가 분명하게 가려진다. 응석부리고 받아주는 관계가 아니라 사생결단으로 결말을 내는 관계다. 그러니까 겉으로 보면 똑같은 호통과 막말이라도, 그 상대편의 캐릭터에 따라, 가벼운 애교가 되기도 하면서 동시에 뜨거운 결투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달라지지만 그럼에도 시청자들은 그 상대편이 유재석이든 강호동이든 다 웃는다.

그 이유는 끌려 다니며 의견을 조율하는 유재석이든 주도하며 질서를 잡는 강호동 이든, 그것이 바로 호통과 막말의 울타리가 되어 주기 때문이다. 만약 유재석이나 강호동처럼 메인 NC가 그런 울타리 역할을 하면서 안정감을 주지 않았다면, 때로는 패널들의 비꼼과 공격에 당하기도 하면서 결국은 그것을 다 추스르는 그런 역할이 중심에 없었다면, 호통 개그와 막말 개그는 부담스럽고 불안해보이고 지루해졌을 것이다. 다시 말해 호통이든 막말이든 잘 들어주는 상대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것이다. 지난 해 우리는 나의 호통과 막말을 들어줄 그 한 사람이 절실했는지도 모르겠다.

/김종휘 : 문화평론-기획자, 방송인, 노리단 단장, 하자센터 기획부장, 저서 <일하며 논다, 배운다> <내 안의 열일곱> <너 행복하니?>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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