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주의의 올바른 인식이 필요하다

이진배 의정부문화의전당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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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력직 인수위원회가 이명박 새 정부의 정책들을 쏟아 내고 있다. 처음의 경제 살리기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실용주의 경제정책으로부터 시작해 실용주의 교육정책, 실용주의 외교정책, 실용주의 정부 조직 개편 등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소모적인 이념논쟁과 시대착오적 수구좌파 정책에 신물이 난 국민들에게 무엇이 정말 국민의 일상생활에 보탬이 되는가를 보여 주겠다는 실용주의 정책은 옳은 선택이며 매력적이다. 실용주의를 표방하는 소리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그런데 문제는 어느 정책이건 신중한 검토·여과·수렴의 정책형성 과정이 필수인데도 그러한 과정 없이 실용이란 이름으로 정책 하나를 뚝딱 만들고 발표하는 말 앞세우기 경쟁으로 비쳐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실용주의는 대통령 당선인이 이미 천명한 바와 같이 말이 앞서는 게 아니라 실천과 그 실천으로 얻게 될 이익을 앞세우는 것이다. 대통령 당선인은 선거기간 중 “경제 살리기, 꼭 실천해 내겠습니다”라고 되풀이해 국민들에게 철석 같이 약속했다. 실용주의는 이념이나 지식 자체를 중요시하는 게 아니라 이념이나 지식이 사람들의 생활에 어떤 실용성이 있으며 이익이 있는가를 먼저 본다. 그래서 국민들은 실용주의가 빛깔 좋은 말잔치가 아닌, 살 맛 나는 새 세상을 여는 진정한 변화와 실천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현장에서의 실천이 없는 탁상행정을 질타하면서 전남 영암군 대불산업단지 전봇대를 대표적인 사례로 지적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곧장 대형 화물트럭의 장애물로 민원의 대상인 전봇대 2개가 바로 처리될 것이라고 밝혔고 그런 발표가 있던 날 오후, 5년 동안 뽑지 못했던 전봇대 한개는 철거됐고 또 한개는 다른 곳으로 이설됐다. 이 뉴스를 접한 국민들은 새 정부의 실용주의 정책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이쯤 갖고 실용주의 정책의 앞날을 낙관하기는 너무 이르다. 기실 따지고 보면 이틀만에 뽑을 전봇대를 5년 동안 방치했다 대통령 당선인의 질타 한마디에 부산을 떤 모양새에서 우리가 떠올리는 건 과거 익숙하게 보아 왔던 눈앞의 성과에 집착하는 효율지상주의나 씁쓰레한 관료적 보신주의, 그리고 절대권력 추종의 부정적 유산 등이다.

실용성과 이익은 실용주의의 최고 가치다. 그러나 실용성과 이익이란 가치는 실용주의 철학의 토양에서 가꿔지는 꽃과 같은 것이다. 실용주의 철학을 결여한 실용성과 이익의 추구는 비윤리적이며 인간의 존엄을 파괴하는 물질 만능주의를 부추기고 효율과 성과중심의 무분별한 경쟁으로 사람들을 파탄시킬 뿐이다.

여기서 우리는 실용주의 철학의 대가, 존 듀이가 “지식(이념)은 항상 사람들을 이롭게 할 때 유용한 것이 되며, 철학자의 소임은 사람들을 도덕적으로 행동하게 하고 사회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라고 주장했음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이처럼 실용주의 철학은 인간을 중심에 둔 인식론과 인간의 도덕적 성장을 무엇보다 중시한다. 철학적 인식을 결여하고 인문학적 접근을 망각한 실용주의의 추구가 만약에 앞에 언급한 과거의 부정적 유산들과 결합한다면, 이로 인해 야기되는 재앙은 불을 보듯 뻔하다.

결국 이명박 정부 실용주의 정책 성공의 관건은 문화·인문학적 접근의 성실성 여부에 달려 있음을 하루 빨리 깨닫는 것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이 점을 명심하고 정부 출범을 준비하는 게 본연의 임무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새 정부가 출범하지도 않았고, 새 정부의 주요 정책을 책임질 각 부처 장관들도 임명되지 않았다. 인수위원회는 문화정책적 접근과 실용주의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부족한 것 같고, 국민들을 위한 실용주의정책 형성과정에 대해서도 별로 고민하는 모습이 아니다. 특히 실용의 가치를 정책적으로 실현하는 건 존 듀이가 교육현장에서 ‘실험학교’를 통해 교육개혁을 구현하려 했던 것처럼 사람들의 의식을 개혁하는데서부터 시작됨을 알아야 한다. 인수위원회는 실용 정부의 출범을 준비하는 소임에 오직 충실하고, 말 먼저 앞세우는 포퓰리즘과 아마추어리즘 등을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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