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으로 쓴 환상시 -왕자의 죽음 편

알퐁스 도데 (Alphonse Daudet, 1840~1897)

프랑스의 소설가, 극작가. 프로방스 출생. 사업가인 아버지의 파산으로, 중학교에서 사환으로 일하면서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그는 플로베르, 졸라, 공쿠르, 투르게네프와 친교를 맺었는데, 이들과 더불어 자연주의파에 속한다. 그의 작품은 천부적인 시적 정서와 고요하고 아름다운 서정적인 글로 날카로운 풍자와 짙은 인간미를 안겨준다. 주요작품으로는 단편집 《풍차 방앗간 소식》 《월요 이야기》, 그리고 비제가 작곡하여 유명해진 희곡 <아를르의 여인> 등이 있다.

어린 왕자가 병이 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왕국의 모든 교회에서는 왕자의 회복을 빌며 낮이나 밤이나 성체를 내어놓고, 커다란 초에 불을 켜 놓았습니다. 고색 창연한 거리는 고요하고 쓸쓸했으며 교회의 종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마차들도 천천히 다녔습니다. 궁궐 주위의 호기심 많은 백성들은 궁금해서 창살 틈으로, 위엄있는 태도로 궁정 안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금줄단 뚱뚱보 위병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성안은 온통 들끓고 있었습니다. 시종들과 청지기들이 종종걸음으로 대리석 층계를 오르내립니다. 현관에는 비단옷을 입은 신하들과 시종들로 가득 차 있는데, 그들은 이리 저리 몰려다니며 새로운 소식을 알아내려고 수군거립니다. 넓은 계단위에서는 눈물에 젖은 시녀들이 수를 놓은 고운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서로 인사를 주고 받습니다.

오렌지 온실 안에서 가운을 입은 의사들이 거듭 회합을 합니다. 그들의 긴 검정 소매가 움직이고, 길게늘인 가발이 점잖게 수그러지는 모습이 유리창 너머로 보입니다. 사부와 시종 무관은 문 앞에서 서성대며 의사들의 발표를 기다립니다. 요리사들이 그들 곁을 인사도 없이 지나갑니다. 시종은 이교도처럼 욕설을 퍼붓고, 사부는 호라티우스의 시를 읊습니다. 한편 저편 마구간 쪽에서는 구슬픈 말 울음 소리가 길게 들려옵니다. 그것은 마부들이 잊고 밥을 주지 않아 텅빈 구유 앞에서 슬프게 울부짖고 있는 왕자의 밤색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임금님은 어디 계신가요? 임금님은 성끝에 있는 방안에 홀로 앉아 계십니다. 임금님들이란 남에게 눈물을 보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왕비님은 다릅니다. 여왕님은 어린 왕자의 머리맡에 앉아 고운 얼굴이 눈물에 젖은 채 비천한 비단장수처럼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큰 소리로 흐느껴 울고 계십니다.

레이스가 달린 침대에는 어린 왕자가, 깔고 누운 요보다도 더 흰 얼굴로 눈을 감은채 누워 있습니다. 잠들어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자고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머니를 향해 몸을 돌리더니, 어머니가 울고 있는 것을 보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마마마, 왜울고계세요? 정말 제가 죽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왕비님은 대답을 하려고 했지만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질 않습니다.

“어마마마, 제발 울지 마세요. 제가 왕자라는 것을 잊으셨군요. 왕자가 이렇게 죽을 수 없다는 것을 잊으셨어요?”

왕비님은 더욱더 흐느껴 웁니다. 그래서 왕자도 무서워집니다.

“그만두세요! 전 죽고 싶지 않아요. 절대로 죽음이 여기까지 오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을 거예요……. 당장 사십명의 아주 힘센 근위병을 오게 해서 침대 주위를 둘러싸게 해 주세요……. 대포 백 문을 창밑에 배치하여 도화선에 불을 붙인채, 밤이나 낮이나 지키게 해 주세요. 그래도 죽음이 접근해 올때는 호통을 쳐 줄거야!”

왕자를 즐겁게 해 주려고 왕비님은 손짓을 합니다. 당장 궁정 안으로 커다란 대포가 굴러 오는 소리가 들리고 창을 든 장대한 사십 명의 근위병들이 몰려와 방 안에 둘러섭니다. 이들은 수염이 허옇게 된 노병들 입니다. 왕자는 그들을 보자 손뼉을 칩니다. 왕자는 그들 중에서 자기가 알고 있는 한 사람을 불렀습니다.

“로뎅! 로뎅”

그가 침대 앞으로 한걸음 나섭니다.

“로뎅, 난 당신이 참 좋아……. 당신의 장검을 좀 보여줘. 죽음이 나를 잡으려고 하면 죽여버려야 하겠지?”

로뎅이 대답합니다.

“그렇습니다, 전하!”

노병의 거무죽죽한 뺨위에는 굵은 눈물이 두줄 흘러 내립니다.

이때, 궁정사제가 왕자 곁으로 가까이 오더니 십자가를 보이며 낮은 목소리로 오랫동안 이야기를 합니다. 어린 왕자는 아주 놀란 얼굴로 이야기를 듣고 있더니 갑자기 사제의 말을 가로막습니다.

“사제님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친구 베포 녀석에게 돈을 많이 주고 내 대신 죽게 할 수는 없을까요?”

사제는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계속 합니다. 어린 왕자는 더욱더 놀란 얼굴을 합니다.

사제의 이야기가 다 끝나자, 어린 왕자는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제님의 말씀은 한마디 한마디 나를 아주 슬프게 합니다. 하지만 저 하늘 위 별들의 낙원에 가도 나는 역시 왕자일 터이니 까 안심이 되는군요……. 하느님은 나의 친척이니 나를 신분에 맞도록 대우할 것을 잊으시진 않겠죠.”

그리고는 어머니 쪽으로 몸을 돌리며 왕자는 이렇게 덧붙여 말합니다.

“제 가장 고운 옷들, 흰 담비 가죽저고리와 우단으로 만든 무도화를 가져오라고 하세요! 왕자의 옷을 입고 천국에 들어가서 천사들에게 뽐내고 싶어요.”

사제는 세 번째 어린 왕자를 향해 몸을 숙이고 낮은 목소리로 오랫동안 이야기를 합니다. 이야기를 하는 도중 왕자는 화를 내며 말을 가로 막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다면 왕자란 아무것도 아니군요!”

그리고는 더 이상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하지 않고, 벽을 향해 돌아눕더니, 왕자는 흐느껴 우는 것이었습니다.

> > 짧은 얘기 긴 여운

오늘 소개한 도데의 <산문으로 쓴 환상시> 에는 두 편의 글이 실려 있는데, 그중 오늘 실린 얘기는 ‘왕자의 죽음’ 입니다.

소설은‘어린 왕자가 병이 들어 죽게 되었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부러울 것 없는 왕자가 그만 병이 들었는데, 쉽게 나을 병이 아니어서 죽음에 다다를 수밖에 없는 비극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짧은 소설에서 주목해 볼 것은 왕자의 생각이 변해가는 과정입니다. 왕자는 자신이 가진 권력과 재물, 능력으로 다가오는 죽음을 거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사제의 말을 들으면서 죽음이란 어떠한 힘으로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 들입니다. 그렇다면 신분을 드러내주는 의복으로 천국에서라도 자신이 누리던 것을 누리려 합니다. 그러자 또 사제가 뭐라 말하고, 왕자는 마침내‘그렇다면 왕자란 아무것도 아니군요!’하며 흐느껴 울지요.

아주 짧은 이야기지만 이 속에는 인생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종교적, 철학적으로 묻고 있습니다. 사제는 과연 뭐라고 왕자에게 말했을까요? 작가가 되어 사제가 왕자에게 들려주었을 법한 대사를 적어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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