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매몰비용(sunk cost)이란 쉽게 말해 이미 지출되어 되돌릴 수 없는 비용을 말한다. 예를 들어 신제품 개발을 위해 이미 1억 원의 돈을 투자했다면 이 1억 원은 매몰비용이다. 돈을 더 투자해 개발을 완료할지 아니면 중도에 포기할지는 사업가의 판단에 따라 달라진다. 사업가는 이를 판단함에 있어 이미 지출한 1억 원을 염두에 두어선 안 된다. 매몰비용인 1억 원이 아까워 무조건 끝 까지 밀고 나간다는 판단을 내렸을 때 더 큰 손해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1억 원은 이미 투자되었고, 앞으로 더 투자해야 할 금액이 3천만 원일 때 향후 예상되는 수익이 2천만 원이라면 투자를 중단해야 한다. 반면 향후 예상 수익이 4천만 원이라면 투자를 계속해 개발을 완료해야 한다. 총 1억3천만 원을 투자해 2천만 원의 수익만 얻든지, 4천만 원의 수익을 얻든지 손실을 보는 것은 동일하지만, 현 시점에서는 이미 들어간 비용을 제외하고 가장 유리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 타당하다. 이 판단의 과정에서 이미 투자한 1억 원은 고려해선 안 된다. 현 시점에서 더 투자해야 할 금액과 수익을 비교해 손실을 최소화하는 결정이 합리적이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 의사결정을 할 때 회수가 불가능한 비용은 무시해야 한다. 현 시점에서 고려해야 할 것은 선택의 기회를 반영하는 기회비용이다.
나) 우리는 사업실패나 성적 등을 비관하여 목숨을 끊었다는 안타까운 뉴스를 종종 접합니다. 자살하는 사람의 수도 매년 증가하고 있습니다. 외국의 경우 인구 10만 명 당 자살률이 영국 6.7명(2003년), 미국 10.9명(2002년), 독일 13명(2004년), 일본 23.7명(2003년)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본보다 높은 25.2명(2004년)으로 특히 젊은 층의 사망원인으로 자살이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흔한 매몰비용의 오류
영화를 보기 위해 7천원을 지불하고 자리에 앉은 여러분을 생각해보세요. 기대와는 달리 영화가 아주 지루하고 재미없는 상황이에요. 여러분은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영화를 볼 것인가요? 아니면 자리를 박차고 나올 것인가요? 자리를 박차고 나올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렇다면 이런 경우는 어떤가요? 여러분이 영화표를 구하기 힘들어 한참을 수소문하다가 암표상에게 3만원을 주고 표를 구입했다면요?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끝까지 영화를 볼 거예요. 그리고 판단과정에서 이미 지불한 3만원이 아깝고 자리를 지키는 것이 그나마 이익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오락가락했겠죠. 남은 상영 시간이 결코 우리에게 어떠한 효용도 가져다 주지 못하는 상황인데도 선뜻 영화관을 나올 정도로 배포가 크지 않죠.
하지만 이러한 판단은 제시문 [가]의 설명처럼 결코 합리적인 판단이라 볼 수 없어요. 이미 지불한 3만원은 영화가 아무리 재미없었다 하더라도 돌려받을 수 없는 비용이죠. 즉 매몰비용인 거예요. 하지만 극장을 나오면 남은 시간 동안 친구와 재미있는 대화를 나눌 수도 있고, 서점에서 좋은 책을 고를 수도 있어요. 즉 남은 상영시간을 기회비용으로 따져보고 다른 유익한 일을 했을때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죠. 재미없는 영화를 보느라 극장에 남아 고통스럽게 남은 한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는 그 시간에 더 즐거운 일을 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인 거예요. 되돌릴 수 없는 매몰비용은 현 상황의 판단 과정에서 무시하는 것이 가장 좋아요. 그것이 손해를 최소화하고 이익을 높이는 길인 거죠.
‘놓친 고기가 더 커 보인다’는 말처럼 우리는 앞으로 다가올 이익보다 이미 잃어버린 손실을 더 애석해 하는 경향이 많아요. 때문에 종종 매몰비용의 오류를 별 생각없이 범하곤 하죠. 배가 갑자기 아파 오는데 이미 지불한 음식 값이 아까워 끝까지 먹느라 결국 배탈이 나서 치료비가 더 많이 드는 경우, 주식시장에서 자신이 보유한 주식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본전 생각이 나서 팔지 못하고 결국 더 큰 손해를 보는 경우 등이죠. 경마장에서도 끝날 시간이 가까워올수록 사람들은 우승 가능성이 적은 말에 투자해 대박을 노리는 경우가 많아진다고 해요. 이미 잃어버린 돈은 빨리 잊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이것이 쉽지 않은 것이죠.
우리 사회 자살이 늘어나는 이유는?
제시문 [나]를 보면 우리나라의 자살이 급격히 많아지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어요. 2005년의 자살자수는 1만2천명에 달해 2000년의 두 배 가까이 늘어났어요. 1995년의 4천3백여명에 비해서는 세배 가까이 늘었다고 해요. 인구 10만명당 자살자수를 의미하는 자살률도 2005년 26.1명으로 1995년의 11.8명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었죠. 이젠 OECD 국가들중 자살률이 가장 높다고 알려져있어요. 자살률이 높은 사회로 유명한 일본을 넘어선 것이죠.
이처럼 자살률이 높아지면서 그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해요. 우리 사회와 경제가 급격히 변화하면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는 의견도 있고, 외환위기 이후 진행된 광범위한 구조조정으로 인한 생활고, 양극화의 심화에 따른 심리적 박탈감 등이 거론되고 있죠. 문제는 이처럼 사회적 요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분석이 아니라 개인의 선택이라는 측면에서 분석할 것을 요구하고 있어요. 제시문 [가]를 참고로 해야 하는 만큼 경제학적 관점에서 자살현상과 자살을 선택하는 과정을 분석하라는 것이죠.
자살도 결국 비합리적 선택
경제학적으로 살펴보면 자살이란 남은 삶의 효용이 영보다 낮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에요. 즉 남은 삶이 고통스럽고 계속 살아봐야 아무런 의미나 희망이 없을 때 자살하는 것이죠. 하지만 남은 삶이 고통스러울 것이라 단정하기는 쉽지 않아요. 미래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죠. 자살은 대개 과거의 일에 영향을 받아 미래마저 희망이 없다고 잘못 판단하는 경우일 거예요.
제시문 [나]는 사업실패나 성적비관 등으로 자살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어요. 하지만 사업실패나 성적비관은 이미 과거의 일이며 되돌릴 수 없는 것이에요. 매몰비용인 셈이죠. 결국 자살을 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매몰비용에 얽매여 미래를 포기하는 것이라 볼 수 있어요. 과거의 기억을 모두 지워버린다면 아마도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즉 자살은 매몰비용에 빠져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죠. 특히 젊은 층의 사망 원인 중 자살이 1위라는 제시문 [나]의 내용은 경제학적 판단으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에요. 젊은층의 자살은 노년층의 자살에 비해 보다 더 비합리적인 선택인 거죠. 아무리 힘든 상황일지라도 젊은이들에게는 더 많은 미래가 있고 그만큼 더 많은 기회비용을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돌이킬 수 없는 것에 연연해하지 말고 현재를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그만큼 삶의 자세에서 중요하죠.
/조성진 유레카논술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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