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삭 지도와 논술

김진익 (수성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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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 교사만 첨삭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의 논술 문제는 과거의 논술 문제에 비해 다양하고 정교해진 형태를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논제에 대해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써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조건과 논제, 그리고 제시문의 복합적인 관계를 살펴 답안을 써야 한다. 논제도 논증의 과정을 나누어 여러 단계로 제시되며, 제시문의 숫자도 크게 증가하였고 제시문 간의 관계도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학생의 답안만 보고도 어느 정도의 논리성이나 논거의 타당성을 가늠하며 첨삭이 가능했던 시대는 분명 아니다. 논술 문제에 대해 철저히 이해하고 분석해 보지 않고서는 적절한 첨삭을 해 나가기가 쉽지 않다. 문장이나 문단을 작성하는 과정에 대해 어법의 오류를 점검하거나 논리적 일관성을 따지는 정도의 첨삭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논지의 타당성이나 창의적인 논리 전개의 유무까지 따져보는 첨삭은 우선 논제의 깊이 있는 이해가 선행되어야 가능하다.

그러나 역으로 논술 문제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면 논술 첨삭이 가능하다는 말도 성립된다. 학생들도 논술 수업을 받고 논제 이해 능력을 키워나간다면 논술문을 첨삭할 수 있는 능력도 키울 수 있다. 그래서 학생들의 논제 이해 능력이 일정한 수준에 이르게 되면 첨삭을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첨삭 방법을 지도해 주는 것이 좋다. 이렇게 첨삭 능력을 키우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논술에 대해 얻을 수 있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학생들끼리 논술문을 서로 고쳐 주는 첨삭은 우선 문장이나 문단의 개념을 분명하게 알게 해 줄 수 있다. 다른 학생의 글을 읽어나가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길게 쓴 문장, 앞뒤 간의 연결이 매끄럽지 않은 문장 등을 지적해 줄 수 있다. 또 소주제 문장이 분명하지 않거나 뒷받침 문장과 연결이 어색한 점 등 문단 구성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고칠 계기를 주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첨삭 과정을 통해 논술 문제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고 심화 학습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좋은 논술문을 쓴 친구에게 그 장점을 배우고, 또 좋지 않은 글이라도 그 글의 단점을 통해 자신의 글에서 반성할 점을 찾게 된다. 논제가 자신도 고민하고 써 보았던 문제이므로, 첨삭 과정을 거치며 결국 자신이 쓴 논술문을 되돌아보고 반성할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학생들끼리 첨삭 과정을 경험해 보면서 교사의 첨삭 내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학생이 첨삭의 경험을 거쳤기에, 교사의 지적이나 지도 조언이 어떤 맥락과 상황에서 나온 것인지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그리하여 이를 통해 교사와 학생 간의 의사소통의 길이 더 많이 열리게 된다.

학생들끼리 동료 첨삭을 한 후에, 첨삭 내용을 발표하고 토론을 시키는 것도 첨삭을 통해 논술문을 발전시키는데 큰 도움이 된다. 모둠을 편성해 모둠끼리 논술문을 돌려 첨삭을 하고 난 후, 하나의 논술문에 대해 여러 학생이 의견을 발표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이 친구의 논술문은 이런 점에서 뛰어나고 저런 점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논의를 진행하면 더 좋은 논술문이 될 수 있다’는 수준에서 시작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글을 쓴 학생은 자신이 왜 그렇게 썼는지, 상대의 의견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는 식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토론을 통해 첨삭 내용을 논의함으로써 논술 문제에 대해 깊고 넓게 접근해 볼 수 있다.

이렇듯 학생들의 첨삭 능력을 신장시키는 것이 결과적으로 학생들의 논술 능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학생들이 스스로 첨삭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움으로써, 하나의 논술 문제에 대해 한 번 쓰고 교사의 첨삭 한 번 읽어보고 정리하는 정도의 논술과는 차원이 다른 논술이 될 수 있다. 이를 학교나 학급의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운영한다면 교사들이 첨삭 부담을 과중하게 느끼고 있는데, 이를 줄이게 되는 효과도 덤으로 얻을 수 있게 된다.

김진익 (수성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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