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만 된다면 공정하다. “대선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김(경준)씨 사건 수사를 후보 등록일(25~26일)이전에 가급적 끝낼 방침”이라고 했다. 이명박(한나라당 대선 후보) 관련 의혹이 제기된 BBK 주가조작 사건 수사에 대해 검찰 고위 관계자가 그렇게 말했다. 만약 그때까지 결론을 못내리면 수사를 대선 이후로 미룰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오는 중순쯤 미국에서 국내로 송환될 문제의 김경준이란 사람은 자진해서 불을 지고 섶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공항도착 즉시 갈 감옥행을 뻔히 알면서도 오는 것이다. 베일에 싸인 그 불이익의 이면이 뭔지 궁금하다. 이명박의 결백 주장에도 대통합민주신당 등 범여권은 이명박에 대한 의혹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김경준이란 사람 역시 이명박을 물고 늘어질 것이다. 이명박이 비리에 관련된 게 사실이면 두 말 할 것 없이 끝장난다. 관련이 안 됐더라도 억울하게 상처는 받겠지만, 조금이라도 잘못된 게 드러나면 낙마가 불가피하다.
이회창(전 한나라당 총재)의 대선 삼수 선언에서 이명박으로는 미덥지 않다는 건 이런 BBK 의혹과 무관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이유다. 만에 하나라도 후보 등록이 끝난 뒤에 이명박이 피의자 신분이 되면 보수진영의 정권교체는 물건너 간다. 국민이 피의자 후보를 당선시킬리가 없는 가운데, 당의 후보 교체 또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검찰의 대선후보 등록일 이전 수사결론 방침은 이 점에서 매우 적절한 중립의 자리에 서 있다.
이회창의 탈당, 무소속 출마 선언은 돌연변이다. 엔트리에도 없는 선수가 갑자기 출전하겠다고 링에 오르는거나 진배없다. 원로의 체모를 흠집내는 노탐이랄까, 노추가 실로 지나치다. 보수세력의 분열을 앞장서 일으킨 장본인이 보수세력의 규합을 말하는 것은 가관이다.
위기다. 이대로 가면 이명박, 이회창 다 떨어진다. 좌파정권 10년으로도 모자라, 차기 정권 5년을 또 갖다 바치는 꼴이 된다. 한나라당은 ‘경선불복보다 더한 배신’이라고 욕한다. 하지만 이제 와서 이회창의 오만을 비방한다고 일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대통령선거 본선에서도 굳이 그를 욕할 필요가 없다.
당장 급한 건 한나라당의 응집이다. 경선의 앙금을 끝내 이대로 짊어지고 있으면 대선 전이든, 대선 뒤든 분당의 고비를 맞는다. 대선 전에 앙금을 털지 못하면 잠정적 분당상태로 있다가 이회창과 함께 침몰한다. 결국 대선에 패배한 한나라당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양분된다. 설령, 분당의 파국을 가까스로 면한다 할지라도 대선에 이은 총선 역시 지리멸렬할 것이다. 이것이 지금 보수정당의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적 여망에 부응하는 면모는 아니다.
경선에서 이긴 사람이 먼저 내놔야 한다. 경선에서 진 사람은 내놓으려고 해도 내놓을 것이 없다. 대권과 당권 분리는 당헌으로 안다. 당헌이 아니더라도 분리하는 게 순리다. 이재오(최고위원), 이방호(사무총장)를 내치는 것은 ‘읍참마속’도 아니다. ‘이명박 선대위’서 중용하다가 집권하면 총리 같은 자릴 맡길 수도 있다. 이재오, 이방호를 당직에서 물러서게 해 박근혜(전 대표)를 비롯한 경선에서 진 사람들의 소외감을 덜 수 있다면, 그래서 당의 응집력을 살릴 수 있다면 그토록 인색해선 대의를 안다고 할 수 없다.
경선에서 진 박근혜 캠프 진영은 내년 총선에서 공천이 안 될 것이라는 위기감을 당내에 확산시킨 게, 경선에서 이긴쪽이 비친 걸 부인할 수 없는 현실에서 이명박은 거게 본의든 아니든 간에 책임이 없다할 수 없다. 일국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이회창의 탈당 출마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자신이 속한 당의 단합을 이루지 못하면 역량과 경륜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명박이 자기 계보의 대통령 후보가 아닌, 당의 대통령 후보란 사실에 인식을 새로 한다면, 당의 응집력을 보여야 국민을 대해도 신뢰감을 준다. 지금까지의 일은 돌이킬 수 없지만, 더 돌이킬 수 없는 불행한 사태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 국민을 더 실망시키지 않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BBK 의혹에 관련이 없다는 것에 그렇게 알고는 있어도 검찰수사의 결론을 기다리는 후보인 점은 역시 국민사회에 어쩔 수 없이 부담을 준다. 검찰수사가 후보등록 이전에 행여라도 이명박에게 흠결이 있는 것으로 결론나면 한나라당이 서둘러 새로운 후보로 바꿀수는 있어도, 등록 이후일 것 같으면 분산되는 보수세력의 표가 이회창에게 더 쏠릴 것이다. 이회창의 원려라 할까, 틈새 노림수가 바로 이런 것이다.
나라의 명운이 어디로 가자고 이러는 것인 지, 대선 판도가 참 묘하게 돌아간다. 좌파정권 10년에도 시련을 다 하지 못했는 지, 대통령선거를 불과 42일 남기고 또 밀어닥친 설상가상의 시련이 힘겹지만 잘 넘겨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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