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발견> 논술로 읽기 문화란 무엇인가?
잠시 초등학교 저학년 때를 떠올려 보자. 그 시절 국어 시간 혹은 바른 생활시간에 많이 공부했던 것 중 하나가 낱말 공부다. 새 낱말의 뜻을 배우며 신기해 하기도 했고 늘 쓰는 낱말인데도 막상 정확한 뜻을 말하려니 막막하기도 했을 것이다. 발음이 비슷하거나 뜻이 같은 낱말은 매번 헷갈리기도 했다. ‘발명’과 ‘발견’도 그런 낱말 가운데 하나다.
오늘 우리가 읽은 <문화의발견> 은 ‘KTX에서 찜질방까지’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부제와 원제를 같이보면, 이책은 ‘KTX에서 찜질방에 이르는 우리 주변 여러 곳에서 발견한 문화의 모습’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의발견>
하지만 책장을 넘기기 전에 이 책이 우리 생활환경의 문화를 ‘발명’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한다는 점을 한번쯤 짚고 넘어가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 이유가 궁금한 친구들도 있겠지만 함께 답을 찾아보는 재미를 위해 잠시 미뤄두기로 하자.
# 문화란 무엇인가?
흔히 ‘문화’라고 하면 유명 화가의 작품이나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의 음악 연주를 떠올리기 쉽다. 라디오나 TV에서 흘러나오는 인기 가수의 노래나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를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예술과 관련한 무언가를 문화로 꼽는 셈이다. 물론 여러 예술작품도 문화에 속한다. 하지만 그것 만이 문화는 아니다. <문화의발견> 은 30개의 공간을 중심으로 우리 문화를 살핀다. 그 공간들은 지하철, 버스, 노래방, 찜질방, 편의점, 집, 학교, 화장실 등 우리 일상과 매우 밀접해 있거나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곳이다. 예술과 관련된 것들만을 문화라 생각했던 독자라면 우리가 늘 접하는 여러 공간들을 ‘이동과 교통’ ‘유희와 교류’ ‘유통과 서비스’ ‘거주와 돌봄’ ‘창조와 성장’ ‘몸과 자연’이라는 여섯 부로 나누고 또 묶어서 문화에 대해 이야기 하려는 책의 목차를 보고 어리둥절 했을 것이다. 문화의발견>
대체 문화란 무엇일까? 그리고 책에 실린 각각의 공간에는 어떤 문화가 담겨 있는 것일까?
# 공간에 주목한 이유
<문화의 발견> 은 <한겨레신문> 에 2005년 5월부터 약 1년 동안 격주로 연재됐던 원고를 수정하고 확장해 꾸며졌다고 한다. 신문이라는 매체의 속성에 따라 각 글들은 현재 우리 생활의 모습들을 소재로 하고 있고 그것은 읽는 이에게 생동감을 전해준다. <문화의발견> 은 단 번에 명료하게 정의내리기 어려운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도 술술 읽히는 편이다. 아마도 거기에는 생생함이 한몫했을 것이다. 각 단원의 끝에는 ‘생각할 문제’가 실렸는데 글을 읽고 난 뒤 문제들을 풀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문제들을 보면서 글을 읽는 중에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것들을 생각할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문화의발견> 한겨레신문> 문화의>
그런데 왜 저자인 김찬호는 문화를 이야기하면서 생활공간에 주목한 것일까?
도서평론가 이권우는 그 이유로 ‘속도’를 제시한다. 이권우는“징후로서 문화를 말하고자 하면, 그것은 벌써 사라져 버린다”고 말한다. 문화가 빠른 속도로 변화하기 때문에 어떤 문화에 대해 분석하고 설명하려 하면 그 문화는 처음과 다른 모습을 보이거나 아예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다. 덧붙여 이권우는 저자가 공간에 주목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그 많은 문화현상이 덧없이 사라지거나 한물간 듯 말하는 시대에 변화 자체의 흔적마저 간직한 곳이 공간일 터이니 말이다.” 우리 주변 환경은 몇달만에 새로운 건물이 생겨나고 길이 달라지고 다리가 세워지는 등 숨 가쁘게 변한다. 이를 보면 이권우의 말은 매우 설득력 있게 들린다.
저자의 의도는 어땠을까? 저자는 “구체적인 경험”을 읽어내고자 생활 공간에 주목했다고 답한다. 1990년대 이후 우리 사회에서 문화 연구가 활발히 이뤄졌다. 하지만 외국 이론을 빌어 추상 담론을 하는 데 치우친 경향이 짙었다. 저자는 문화 이론 대신 생활공간을 살피며 우리 문화의 모습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고자 한 것이다.
# 변화된 삶을 담는 공간!
저자가 연구한 공간 가운데 먼저 한국고속철도, KTX를 찾아가보자. 시속 300㎞를 돌파하는 KTX 시대의 막이 오른 것은 지난2004년이다. 이후 많은 사람들이 KTX를 이용하며 생활의 편리를 누리고 있다. 개통 이후 3년이 지난 2007년 4월까지 승객수는 1억 명에 이른다. KTX는 우리 생활에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예전에는 전국이 ‘1일 생활권’이었지만 KTX 개통 이후 전국은 ‘3~4시간 생활권’이 됐다. 지역간 이동 시간이 단축되면서 그동안 서울 시민들이 독식하다시피한 여러 시설을 지역 주민들도 어렵지 않게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예를들어 지방 학생이 서울 강남의 입시학원을 다니는가 하면 서울에서 열리는 유명 가수의 콘서트에 지방 사람들이 몰려들기도 한다. 또한 주말부부로 지내던 사람들이 KTX 통근 거리에 집을 마련해 평일부부로 돌아가고 있다. 대전의 경우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모여 회의하기에 좋은 도시로 각광받고 있다. 대전은 KTX를 이용하면 전국 어디에서나 부담 없이 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각지에서 서울까지 오느라 시간을 허비해야 했지만 최근에는 대전에서 여유롭게 회의를 마치고 뒤풀이까지 한다. 이동의 속도를 높인 KTX로 “일상 공간의 부피”가 늘어난 셈이다.
다음으로 노래방을 살펴보자. 어느 나라 사람이나 노래를 좋아한다. 하지만 한국인의 노래 사랑은 좀 유별난 편이다. 다른나라 사람의 경우 어렸을 적에는 노래를 많이 부르다가 어른이 되면 노래를 부르기보다 듣기를 더 즐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면 한국인은 나이를 불문하고 노래를 즐겨 부른다.
그런데 사회가 점차 도시화되면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공간과 기회가 줄었다. 노래방은 그 공간과 기회를 늘려주고 사람들의 억눌렸던 유희 충동을 되살려주었다. 이제 각종 모임의 마무리는 노래방에서 이뤄진다. 특히 직장인들의 회식에서 노래방은 필수 코스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가족들끼리 노래방을 찾는 경우도 적지 않고 친구들끼리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며 스트레스를 풀거나 친목을 다진다. 노래방은 사람들 간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고 지치고 우울한 기분을 달래며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는 “순수한 놀이공간”이다.
예전에는 동네 어귀마다 ‘구멍가게’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생활 필수품이나 여러 먹거리 등을 사기도 하고 동네 사람들과 교류하며 이런저런 소식이나 소문을 접했다. 그러다 1990년대 들어 ‘24시간 편의점’이란 것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2006년 전국의 편의점 수는 1만 개를 돌파했고 2007년 말에는 1만 4천 개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구멍가게와 달리 편의점에서는 공공요금을 수납할 수 있고 휴대전화를 충전하거나 팩스를 보낼 수 있고 책을 구입할 수 있으며 DVD를 대여할 수도 있다. 또한 편의점에서는 물건이 다 떨어져 소비자가 원하는 때에 상품을 사지 못하는 경우가 드물다. 편의점은 판매와 재고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POS(판매 정보 통합 관리) 시스템을 이용해 본사에서 하루에 1~2번씩 각 가맹점에 물건을 공급하기 때문이다. 24시간 내내 환한 조명을 밝히는 편의점은 도심속 안전지대 역할을 맡기도 한다. 어두운 밤길을 걷다가도 밝게 빛을 내는 편의점을 보면 괜스레 불안했던 마음이 안정된다. 일본의 편의점은 ‘아이들과 여성의 110번(한국의 112번) 점포’라는 안내문을 설치하고 비상 시 사이렌을 울리도록 해 지역 치안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편의점에서는 종업원들이 “무관심의 배려”로 손님들을 번거롭거나 귀찮게 하는 일도 없다. 이는 익명성이 짙은 현대인들의 코드와 잘맞아 떨어진다. 그 때문에 많은 이들이 편의점을 이용하고 있기도 하다.
여러분 주변에는 어떤 공간이 새로 만들어졌는지 한번 둘러보면 어떨까? 더불어 그 공간을 통해 나의 생활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도 함께 생각해 보자.
# 공간에 따라 변하는 삶
저자는 30개 공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여기서는 대표적으로 3곳의 특징을 살펴봤다. KTX, 노래방, 편의점은 최근들어 새로 생겨난 것들이다. 그런데 이들 3곳은 변화된 우리의 생활태도를 반영하고 있는 동시에 기존의 우리 생활방식을 바꾸고 있기도 하다. KTX는 빠른 속도를 추구하고 속도에 중독된 우리의 모습이 반영됐다. KTX가 아닌 기존의 열차로 여행한 사람들은 열차 바깥으로 펼쳐지는 자연 경치를 한껏 느끼거나 옆사람과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우고 간식거리를 나눠먹었다. 예전에는 열차에 오르는 순간부터 여행이 시작됐다. 하지만 KTX는 외부 세계와 거의 단절됐다. KTX 노선에는 굴이 너무 많아 풍경을 감상하기가 매우 어렵다. 또 KTX에는 각종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서 혼자서도 충분히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텔레비전을 보거나 영화를 볼 수도 있고 사무를 보거나 책과 신문을 읽기도 한다.
노래방은 일본의 ‘가라오케’에 뿌리를 두고 있고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상업적인 판단에 의해 만들어진 곳이다. 하지만 노래방은 남다른 우리네 노래 사랑과 유희 충동이 만들어낸 공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별한 노래 사랑과 유희충동이 없었더라면 노래방이 생기고 노래방 경기가 활황을 누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처럼 노래방은 노래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사랑을 반영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노래방은 노래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바꿨다. 과거에는 노래란 흥을 돋우고 나의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에 그쳤지만 노래방이 생기면서 노래 부르는 행위 자체보다 노래 실력이 중요해졌다. 저마다 “카수왕”이 되려고 노력하게 되었고 심지어‘음치 클리닉’에 다니며 서투른 노래 실력을 업그레이드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현대인, 특히 도시인들은 밤늦게 까지 잠을 자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귀가 시간이 늦어서이기도 하고 인터넷이나 텔레비전을 즐기는 탓이기도 하다. 그러다보면 출출하게 마련인데 그때만큼 편의점이 간절하게 생각나는 때도 없을 것이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올때 혹은 학원에서 늦게까지 공부를 하다 귀가할 때 편의점에 들러 허기를 채우는 친구들도 많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편의점은 우리의 소비욕을 자극하기도 하고 소비형태를 바꾸기도 한다. 깔끔하고도 가지런하게 진열된 편의점의 여러 상품들은 우리의 소비욕을 부추긴다. 언제든지 편리하게 필요한 물건을 편의점에서 살 수 있게 되면서 물건 소비양이 늘었고 인스턴트 음식의 의존도도 높아졌다.
# 좋은 문화, 나쁜 문화로 나눌 수 있을까?
KTX, 노래방, 편의점 등 우리 삶은 크고 작은 공간안에서 이뤄진다. 그런 점에서 여러 공간은 우리 삶을 담는 그릇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우리 삶은 항상 변한다. 위에서 살핀 것처럼 때로는 삶의 변화가 공간을 바꾸기도 하고 공간의 변화로 우리 삶의 모습이 달라지기도 한다. 그리고 삶과 공간이 일으키는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의 문화가 생겨난다. 한번 꽃피운 문화는 열매를 맺기도 하고 낙엽이 되어 사라지거나 새로운 싹을 움트기도 한다.
그 변화 가운데는 긍정적인 것도 있고 부정적인 것도 있다. KTX의 경우 빠르게 이동할 수 있게 한 긍정적 결과를 낳기도 했지만 여행에서의 여유를 앗아갔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결과를 낳기도 했다. 또한 KTX가 개통되면서 주말부부로 지냈던 사람들이 평일 부부로 돌아온 것은 좋은 일이지만 덕분에 수도권 인근지역의 원룸을 중심으로 집값이 많이 떨어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문화 중에서는 좋은 문화도 있고 나쁜 문화도 있는 것일까?
최근 노래방에서는 “노래방 도우미”라는 새로운 업종이 등장했다. 이는 노래방이 퇴폐적으로 변화한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일부 노래방에서는 음성적으로 도우미를 불러 흥을 돋우게 하고 술을 판매한다. 그러는 가운데 성희롱 시비가 붙기도 한다. 편의점은 많은 소비자들에게 편리함과 안정감을 준다. 그러나 정작 그곳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 점원에게는 결코 즐겁기 어려운 일터다. 편의점은 소비자의 요구를 세세하게 점검하고 충족시켜야 하는 만큼 일이 많고 고되다. 하지만 비교적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구하고자한다.
문화에는 좋고 나쁨이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노래방이나 편의점에서 생겨나는 부정적인 모습을 떠올리면 주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문화를 두고 좋고 나쁨을 구분할 수 있다면 그 기준은 무엇일까?
# 우리 문화의 현주소는?
앞서 책을 읽기 전에‘문화의 발견’이라는 책의 제목을 눈여겨보라고 권했다. 아마도 지금쯤 많은 친구들이 그 이유를 알아챘을 듯싶다. 우리는 문화를 우리 일상과는 먼 특별한 어떤 것이라고만 생각하기 쉽다. 그러다보니 우리 주변에서 숨 쉬고 있는 문화의 모습을 놓치기 일쑤다. 하지만 문화는 우리 삶과 늘 함께 한다. 어쩌면 문화는 우리 삶과 너무나 가까이 놓여 있기에 우리 눈에 잘 들어오지 않을 수 있다.
<문화의 발견> 은 우리에게 친숙한 공간에서 문화의 모습을 발견하도록 이끈다. 그 문화의 모습은 추상적이거나 난해하지 않고 구체적이며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제 문화의 지도가 있다면 우리 문화의 위치를 제대로 짚어낼 수 있을 것 같다. <문화의 발견> 을통해익숙한 우리 문화를 낯설게 보면서 우리 문화의 모습을 새로 알아갈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즐거운 경험이다. 물론 우리 문화의 어두운 면도 함께 보게 되지만 <문화의 발견> 은 그것을 밝게 만들 방법까지 발견할 힘을 길러주기도 한다. 문화의> 문화의> 문화의>
그런데 우리는 문화를‘발견’하기만 할 뿐 ‘발명’할 수는 없는 것일까? 우리 스스로 문화를 만들어 갈 수는 없을까? <문화의 발견> 의 5부에 실린 한 단원에서는 학교에서 이뤄지는 구태의연하고 건조한 졸업식에 대해 지적한다. 최근 졸업식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면서도 졸업생 수를 감안할 때 그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문화의>
지금의 학생 수와 학교 사정 등을 고려해 졸업식을 흥겹게 만들 방법을 생각하며 문화의 ‘발명’을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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