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논술로 감상하기

무엇을 살(買) 것인가, 어떻게 살(生) 것인가?

스토리보다 명품패션으로 더 유명해진 영화가 있다. 이른바‘칙릿’(젊은 여성의 삶을 다룬 문학작품) 장르의 대표 소설인 로버트 와이즈버거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가 대표적인 경우다. 시골 출신의 새내기 직장인인 앤드리아가 유명 패션잡지 편집장의 비서로 일하면서 겪는 욕망과 좌절, 새로운 삶을 그린 이 영화는, 현란한 패션쇼를 방불케 하는 명품 브랜드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패션잡지 패션지 <런웨이> 로 상징되는 화려한 욕망과 출세를 선택할 것인가, 시사지 <뉴요커> 로 상징되는 진실한 삶과 사랑을 선택할 것인가? 앤드리아의 선택은 이미 정해졌고, 여러분의 선택은 아직 미지수다. /유승찬(영화평론가)

20대 명품 소비의 천국인 한국에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의 성공을 예측하는 건 쉬운 일이었다. 이 영화는 한국영화의 박스오피스 1위 기록을 무려 16주만에 갈아치웠다.

그리고 올해 20대 명품소비가 100%나 증가했다는 통계가 보고됐다. 롯데카드 구매고객을 분석한 결과다. 한동안 우리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된장녀’ 논란도 기세등등한 명품 소비시장앞에서는 ‘새발의 피’였던 셈이다. 특히 주목할 것은 남성들의 명품 구매 비율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어쨌든,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는 명품에 대한 화려한 보고서라 부를만하다. TV 시리즈 <섹스앤더시티> 로 전세계 트렌디 드라마 열풍을 주도했던 데이비드 프랭클 감독과 그 드라마의 앞서가는 패션 감각을 직접 연출했던 의상감독 패트리샤 필드는 세련미와 화려함의 극치를 선사한다. 이 영화는 명품 브랜드의 진열장이다. 제목에 포함된 프라다를 비롯해 발렌티노, 도나 카렌, 갈리아노, 샤넬, 베르사체, 캘빈 클라인, 마크 제이콥스, 헤르메스, 지미 추, 마놀로, 톰 포드, 돌체, 크리스천 디오르 등 세계 유명 브랜드가 <런웨이> 사무실을 비롯해 영화곳곳을 장식하고 있다.

# 그런데 왜 하필 프라다일까?

<악마는 샤넬을 입는다> 나 <악마는 루이뷔통을 입는다> 혹은 <악마는 아르마니를 입는다> 가 아닌 이유는 뭘까?

영화 얘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이 궁금증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자. 그 수많은 명품 브랜드 가운데 제작진과 감독은 왜 하필 프라다를 선택했을까? 프라다에서 가장 많은 협찬을 받았기 때문에? 그건 너무 단순하고 쉬운 상상력 아닐까? 편집

장인 미란다(메릴 스트립)와 프라다가 선명하게 연결되는 장면은 처음 등장할 때 손에 든 베이지색 로고가 방이 고작이다. 자선파티에서의 검은 드레스와 볼레로 재킷은 이탈리아 디자이너 발렌티노가 직접 만든 것이다. 메릴 스트립 팬인 그는 직접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한다. 이 밖에 미란다는 도나 카렌, 캘빈 클라인, 헤르메스 등도 입고 나타났다.

의상감독 패트리샤 필드의 말을 들어보면 답을 얻을 수 있다. “영화는 영화를 보는 모든 대중을 염두에 둔다. 나의 임무는 패션계의 현실을 재연하는 것이 아니라 판타지를 심어주는 것이다. 이름만으로도 판타지를 심어줄 수 있는 프라다, 샤넬 등이 필요했다.”

즉, 프라다의 대중적이고 도회적인 이미지가 필요했던 셈이다. ‘세련된 미니멀리즘’으로 상징되는 프라다의 이미지가 영화가 표현하고 싶었던 이미지와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로고를 전면에 드러내지 않는, 마치 흰 종이처럼 군더더기 없는 미니멀한 느낌을 스크린에 옮기고 싶었을 터이다. 즉 쾌락적 이미지의 입센로랑이나 수동적인 여성을 표현하는 디오르 같은 브랜드가 강인하고 파워넘치며 까칠하기 이를 데 없는 미란다 이미지와 맞지 않았던 셈이다. <악마는 샤넬을 입는다> 정도가 후보작으로 거론됐을까?

# 패션잡지 편집장의 비서로 산다는 것

대학을 갓 졸업한 사회 초년생 앤드리아 삭스(앤 해서웨이)가 면접을 보기 위해 옷을 입는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그녀는 대학신문 편집장 출신으로 <뉴요커> 기자가 되는 것이 꿈이다. 경비노조에 관한 글로 전국 대학신문 기자상까지 받았다. 소박하고 진지하며 소외된 이웃에게 관심과 애정을 가진 진실한 젊은이다. 그러나 그 어느 곳에서도 그녀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오직한군데 연락온 곳이 패션지 <런웨이> 편집장의 비서 자리다. 그녀가 신문기사 스크랩을 들춰볼 때 “왜 명품은 페미니즘의 적인가?”라는 자막이 나온다. 생각할 거리가 많은 질문이고, 페미니즘을 진실한 삶 정도로 바꾸면 이 영화와 맥락이 닿기도 한다.

“명품은 진실한 삶을 방해하는가?”

앤드리아는 그 유명한 패션지 <런웨이> (원래 배경은 보그지다)도 모르고, 패션계를 주름잡는 미란다 프리슬리는 더더욱 모른다. 베르사체 철자도 모른다. 온통 44 사이즈들이 즐비한 사무실에서 66인 그녀가 촌스러운 옷을 입고 나타났을 때 모든 사람들이 경악한다. 하지만 미란다는 다르다. 명품으로 치장한 44 사이즈의 여성들로부터 약간 신물이 나 있던 터라, 촌스럽지만 조금은 지성적으로 보이는 앤드리아에게 일을 시켜보기로 한 것이다.

일은 한마디로 “장난 아니다.” 까다롭고 질문도 할 수 없는 미란다는 속사포처럼 일을 시킨다. 퇴근시간도 없다. 변덕은 죽 끓듯 하고 사적인 심부름까지 시킨다. 아빠와 저녁먹고 뮤지컬 <시카고> 를 관람하기로 한 날에 전화를 걸어 아들 발표회에 가야 한다고 뉴욕행 비행기표를 마련하라고 하는가 하면, 집에서 쓸 테이블도 사야 하고, 식사는 물론 커피까지 대령해야 한다. 하다 못해 출판되지도 않은 해리포터 다음 시리즈를 구해오라는 변태적인 요구까지 서슴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는 아트디렉터이자 미란다의 충실한 동료인 나이젤(스탠리 투치)의 도움으로 변신을 시작한다. 앤 해서웨이는 변신 전과 변신 후를 찍기 위해 5킬로그램을 찌웠다가 뺐다고 한다. 마돈나의 대표곡인 <보그> 에 맞춰 패션쇼하듯 변신하는 그녀의 모습은 관객의 욕망을 한껏 부풀린다. ‘옷이 날개’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순간이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명품으로 치장한 그녀의 모습은 한마디로 아름답다.

# 앤드리아의 변신은 무죄?

관객들은 아마 애인인 네이트(애드리언 그레니어)와 관계가 멀어졌다가 다시 사랑하게 되는 순수하고 소박한 이야기보다 그녀의 변신이 보여주는 파괴력에 훨씬 더 매료됐을 것이다. 그녀의 변신은 그 정도로 스토리를 압도한다. 특히 젊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느꼈을 명품 브랜드의 마력은 이 영화의 주제를 압도하고도 남는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를 단지 “패션 잡지사에 취업한 사회 초년생의 고군분투기”라고 읽는 것은 얼마나 앙상한가.

현대사회에서 소비, 또는 합리적 소비와 관련된 주제는 대학 논술문제의 단골 메뉴 가운데 하나다. 특히 한국사회의 비합리적 소비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명품 소비 문제는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분에 넘치는 무리한 소비가 개인적 삶과 사회적관계에 미치는 파장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일례로 2004년 고려대 수시 2학기 논술시험에서 ‘소비사회의 전령’이라 불리는 광고가 자아정체성에 미치는 영향을 묻는 문제가 출제됐고, 같은 해 이화여대 정시에서는 장 보드리야르 등의 제시문과 함께 ‘소비에 대한 현대사회의 가치관이 전통적 가치관과 상충하는 원인’을 분석하는 문제가 나왔다. 2003년 고려대 수시 1학기에는 현대사회소비의 특성을 물었고, 2006학년도 성균관대 정시에서는 이른바 ‘짝퉁’이라고 알려진 모조품 소비현상이 발생하게 된 배경과 문화적 함의를 논하라는 문제가 출제되기도 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는 영화의 주제와 상관없이 젊은이들 사이에 불고 있는 명품 소비 욕망을 합리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전적으로 영화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20대 명품 소비량이 전년도에 비해 두배 가까이 늘어난 것은, 명품에 대한 저항감이 많이 해소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 앤드리아의 선택을 어떻게 볼까?

앤드리아는 파리에서 패션계의 비리를 발견한다. 미란다는 절친한 동료 나이젤을 배반한다. 그리고 앤드리아에게 말한다. “넌 나랑 무척 닮았어.” 앤드리아는 강하게 부정한다. 하지만 명품 패션으로 무장한 그녀는 애인하고도 헤어지고, 파리에 오는 게 꿈이었던 에밀리를 짓밟고 파리에 온 자신을 발견한다. 미란다는 그런 그녀에게 뚜렷이 환기시킨다. 자신이 나이젤을 배반한 것과 앤드리아가 에밀리를 짓밟은 것은 전혀 다르지 않다고.

화려한 세계에서 편집장에게 인정받고 출세를 목전에 둔 앤드리아는 그 자리를 과감히 박차고 떠난다. 소중했던 친구와 가족과 자신의 가치관에게로 돌아온 것이다. 어쨌든 해피엔딩이다. 앤드리아는 화려한 세계의 소용돌이를 거쳐 다시 옛날 옷차림으로 돌아와 옛날 애인과 재회하고, <뉴요커> 에 버금가는 <뉴욕미러> 기자로 입사한다.

미란다 역을 연기한 메릴 스트립의 열연에 대해서는 만장일치의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정말 완벽한 연기를 선보인 57세의 대배우에게 경의를 표한다. 또 체중을 늘렸다 빼가면서 아름다움을 맘껏 과시한 신예 앤 해서웨이의 매력도 잊을 수 없다. 그녀는 작가 제인 오스틴 역을 맡아 다시 우리를 찾을 예정이다. 이영화가 보여준 의상과 음악, 그리고 두 여자 주인공의 앙상블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스테레오 타입화된 이 영화의 이야기 구조는 조금 더 탄탄해져야 하지 않을까?

패션은 개성이다. 이미지다. 자신을 표현하는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분수에 맞는 소비로 자기만의 멋을 가꾸어갈 줄 아는 지혜야말로 진정한 멋을 창조할 수 있다. 누구나 명품 하나쯤 가질 수는 있지만, 그것에 중독되어서 자신과 주변을 파괴하는 일은 없어야 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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