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로 읽는 논술> 惡과 맞서며 어른으로 성장하다

<디스터비아> 는 스릴러영화인 동시에 청춘영화다. 문제아인 고교생 케일은 90일의 가택 연금에 처해진다. 발목에 부착된 감시장치 때문에 집앞도로 조차 나갈 수 없는 신세가 된 케일은, 게임기와 아이팟마저 빼앗겨 버리자 엿보기에 몰두한다. 앞집 남자와 가정부의 불륜 장면, 겨우 10살이 넘은 꼬마들이 포르노 방송을 보는 장면, 옆집에 새로 이사온 소녀가 비키니를 입고 수영하는 장면 등을 훔쳐보던 케일은, 드디어 뭔가 심상치 않은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옆집의 남자가 한 여인을 데리고 와 죽이는 장면을 보게된 것이다. 그것이 진짜 벌어진 일인지 의심하면서도, 케일은 그 남자가 최근 인근에서 벌어진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이라고 짐작한다. 그러나 경찰은 케일의 말을 믿지 않는다.

엿보기는 스릴러 영화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코크의 <이창> 에서 소재로 쓰인 후 많은 영화에 등장했다. <이창> 에서는 휠체어에 탄 남자가 엿보기를 하다가 범죄를 목격하고, 결국은 사건에 말려들어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된다. <이창> 을 패러디한 브라이언 드 팔마의 <바디 더블> 도 비슷한 내용이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쾌락을 위해 엿보기를 하다가 음모에 말려들어간다. <디스터비아> 도 그런 이야기와 거의 흡사하다. 엿보기를 하다가 범죄를 목격하고, 정의감과 호기심 등등으로 사건에 개입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나 경찰은 그를 믿지 않는다. 엿보기는 차마 남에게 고백하기 어려운 악취미인 것이다.

그런데 <디스터비아> 는 또한 청춘영화이기도 하다. 즉 어떤 사건을 통해 케일이 성장해가는 모습을 그린 성장영화인 것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아버지와 함께 다정한 주말을 보내는 케일의 모습이 보인다. 즐거운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케일이 몰던 차가 사고를 내고 아버지가 죽는다. 그리고 장면이 건너뛰어 문제아가 되어버린 케일이 보인다. 교통 사고는 불가항력이었지만, 자신이 차를 몰았다는 사실 때문에 케일은 죄책감을 느낀다. 아버지의 죽음에 자신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케일은 더 이상 모범적인 착한 학생이 되기를 거부한다. 케일은 이미 큰 잘못을 저지른 자기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 그래서 어긋난 길로만 가려 한다. 그럼에도 근본적으로 케일은 착한 아들이다. 그래서 아버지를 모욕한다고 생각하는 선생을 공격한다. <디스터 비아> 는 죄책감 때문에 오히려 모든 책임을 방기해 버리는 소년이, 가족의 안녕을 위협하는 외부의 적에 맞서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가족을 재건하는 이야기다.

케일의 성장을 보여주기 위한 <디스터비아> 의 키워드는 교외와 엿보기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교외라는 공간은 정말 묘한 곳이다. 한때 미국의 교외는 중산층에게 가장 이상적인 공간이었다. 도시의 복잡함과 범죄 위협에서 벗어나, 행복한 전원생활을 누릴 수 있는 곳. 중산층이 모여 사는 교외는 안전하고, 평화롭고, 행복한 공간의 대명사였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그들이 꿈꾸는 이상이었을 뿐이다. 혹시 <위기의 주부들> 이란 미국 드라마를 보았다면 교외라는 공간이 대체 어떤 곳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중산층이 모여 사는 교외는, 쾌적한 환경과는 별개로 인간의 추악한 욕망이 날것으로 들끓는 곳이다. 불륜은 일상사에 불과하고 가정 내 폭행이나 사소한 질투심에 기인한 살인까지 서슴없이 벌어지는 곳이다. 아무리 도시에서 벗어난다고 해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욕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교외는 일종의 모델 하우스 같은 곳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근사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온갖 모조품이나 지저분한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사람들은 단지 겉모습에만 혹해서 집을 사게 되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우리가 감추고 싶어 하는 모든 것이 존재한다. <배트맨> 의 감독 팀 버튼은 자신이 자란 LA의 교외인 버뱅크가 지독하게 끔찍한 곳이라고 토로했다. 눈앞에 펼쳐진 정경보다는, 이면에 존재하는 무엇을 바라보려 했던 팀 버튼은 교외가 철저한 모조품의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이 본 교외의 진정한 모습을, <가위손> 에서 생생하게 그려 낸다. 원색으로 예쁘게 꾸며진 교외에서 화사한 옷차림의 교양있는 중산층들이 모여 안락하게 살아가만 사실 그들은 정말 추악한 존재들이다. <디스터비아> 에서 케일이 바라보는 교외 역시팀버튼의 악몽과 근접해 있다.

그런 교외의 진면목을 보기 위해서는, 엿보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엿보기는 죄악이다. 엿보기라는 죄악을 택한 케일은 남을 엿보는 즐거움을 만끽하다가 위기에 몰리고 온갖 고생을 하게 된다. 그것은 일종의 통과제의 같은 것이다. 자신이 저지른 죄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그 고통을 슬기롭게 극복하면서 진정한 자신을 찾게 된다. 그것이야말로 성장 영화의 일반적인 패턴이다.

살인마는, 케일이 엿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챈다. 케일도 그 사실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하나뿐이다. 먼저 케일이 치고 들어가 살인마의 정체를 밝히는가, 아니면 그저 기다리고만 있다가 교활한 음모에 당하는가. <디스터비아> 는 아주 영리하게 이야기를 전개한다. <디스터비아> 는 어쩔 수 없는 틴 무비다. 근육질의 영웅이 등장하는 액션 영화가 아니라, 죄책감에 사로잡힌 소년이 악과 싸우면서 성장하는 청춘 스릴러 영화인 것이다. 아무리 치밀한 작전을 세운다 해도, 평범한 문제아가 연쇄 살인마와 대적하기는 무리다. 하지만 그런 객관적인 전력의 열세 덕에, 케일이 살인마와 악전고투하는 과정은 더욱 실감나고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어설픈 주인공 덕에,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친절한 이웃이 교외의 살인마라는 사실이 더욱 소름끼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리고 거대한 악과 싸워서 이긴 케일은 마침내 아버지의 자리를 이어받게 된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소원했던 어머니와의 관계도 개선되고, 가족을 지키는 존재로서 케일의 가치가 입증된 것이다. 케일은 진정한 남자이자 가장이 되고, 교외의 질서도 원상복귀된다. 사실 <디스터비아> 는 매우 전형적이면서도 보수적인 영화다. 모든 질서가 원상회복되는 것으로 마무리 된.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논제 분석과 첨삭 지도> / 김 진 익(수성고 교사)

논술문에 대해 첨삭을 하려면 먼저 논술 문제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논술도 글의 하나이기 때문에 국어 정서법을 지켜서 써야 하고, 글의 전개도 보편적인 글쓰기의 원리 안에서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것이 첨삭의 전부는 아니다. 논술문은 수필이나 설명문이 아니다. 따라서 논술문의 성격을 이해하고 논술 문항이 무엇을 평가하고자 하는지 알아야 논술 첨삭을 잘 할 수 있다. 문항이 요구하는 내용은 무엇인지 살펴야 하고, 또 각각의 제시문은 어떤 내용인지 분석하고, 여기에 문항과 제시문의 관계를 파악해서 출제 의도까지 파악해야 한다. 논술문을 평가하고 그 논술문의 문제점을 고치기 위한 개선의 시사점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논술 문제를 다각도로 충분히 이해하여야 한다.

논술 문제가 제시한 논제가 요구하는 내용이 무엇일까 정리해 보는 것을 논제분석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정보화 시대의 바람직한 민주주의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라’는 논제가 있다면, 대다수의 학생들은 대체로 자신이 생각하는 민주주의를 모습만을 제시하는 답안을 쓰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이 논제를 수행하려면 그 모습이 왜 바람직한 민주주의의 모습인지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논제의 요구를 따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위 논제를 제대로 수행하려면 바람직한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 정보화 시대와 민주주의와의 관계, 그리고 그 관계를 통해서 나타나는 바람직한 민주주의의 구체적인 모습을 제시하고, 마지막으로 그 모습이 왜 바람직한 것인지 설득하는 논리가 필요하다. 따라서 논제 분석을 통해 논제를 보다 체계적으로 이해하게 되고, 논술문에서 논제를 이탈하는 일이 줄어들게 된다.

[논제 예시] (가), (나), (다)에 나타난 인간관 또는 생활 태도를 (라)의 관점을 활용하여 각각 비판하시오.

위의 예시 논제에 대해 논제분석을 해 보면 다음과 같은 요구 사항을 담고 있다.

1. (가),(나),(다)에 나타난 인간관 또는 생활 태도를

2. (라)의 관점을 활용하여

3. 각각 비판하시오.

이 논제에 대한 논술문을 첨삭할 때는 우선 위의 요구 사항을 모두 담고 있는지 살펴야 하고, 둘째는 하나하나의 요구 사항을 적절히 논의했는지를 검토해야 한다. 이때 그 적절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논제의 요구 사항에 따라 달리 보아야 한다. 요구 사항 2의 경우, 제시문에서 관점을 추출하여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배경지식을 동원하고, 이를 3의 요구 사항에 따라 답안을 쓰라는 것이다. 이 부분을 첨삭할 때에는 (라)의 관점은 결정론적 관점과 인간의 자유의지적 관점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었는데, 이를 바탕으로 학생이 논의를 적절하게 전개하고 있는가를 살펴야 한다. 학생이 1의 요구사항에 대해 자신의 배경지식만으로 문제점을 지적하고 비판을 전개한다면 그것은 논점 일탈이 된다. 이 논제는 여기에서 나아가 인간의 본질을 심층적으로 논술해 보라는 의도를 담고 있다. 첨삭을 하기 위해서는 이 의도까지 염두에 두고 논술문을 검토하여야 한다.

논술문을 첨삭하기 위해서는 우선 논제에 대해 정확하게, 또한 다각도로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논제의 요구사항을 충실히 파악하여 논제 분석을 제대로 하는 것이 학생들이 논술실력을 키우는 논술 첨삭지도의 첫걸음이 된다.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