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의 힘

박 진 우 수원대 통계정보학과 교수·통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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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수 년 전 중견기업에 다니던 한 후배가 찾아와서 걱정을 늘어놓았다. 직장 내의 부서 이동으로 새로이 영업부서로 배치가 되었는데 자신이 과연 영업을 잘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평소 내성적이고 온순한 성격이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술을 일절하지 않는 사람이었기에 그러한 두려움을 갖는 것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아닌 게 아니라 바뀐 부서의 첫 회식에서 담당 상사가 술을 마시지 않는 그를 보고 어이가 없어하며 “자네, 영업사원 맞아?”라고 하더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얼마 후 그 후배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영업실적 우수사원으로 대표이사 표창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의외의 소식에 놀라워하면서 그 같은 실적을 올린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 처음 얼마간 고객들은 익숙지않은 스타일의 영업사원의 출현에 난감해하는 것 같아 그로서는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한다. 그러나 나름으로 마음을 열고 겸손히 성심을 다하니 고객들이 그의 진정성을 알아주더라고 했다. 나중에 그 후배의 담당 이사는 “너를 보고 새로운 영업 스타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라며 격려해주었다고 한다. 이 일을 통해 삭막한 영업의 세계라고해도 진정성은 힘이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자동차 판매를 하는 또 다른 지인의 경험담이다. 그는 적극적인 구매의사를 가진 한 고객과 상담을 하였다. 당시 그는 판매실적이 부족하던 터이었기에 순간적으로 기왕이면 최고급 차종을 팔아볼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냉정하게 고객의 입장에 서서 판단했을 때 한 수준 낮은 차종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솔직하게 고객에게 말했다. 나중에 돌아보면 당연한 행동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그러기가 이상하게 어렵더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 고객은 그의 조언을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나중에 여러 다른 고객을 소개해주는 등 자신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또 한 번 진정성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최근 우리 사회는 각계 유명 인사들의 학력위조 파문으로 홍역을 앓고 있다. 알게 모르게 우리 속에 똬리를 틀고 있던 문제들이 곪아 터진 모습일 것이다. 이런 증상들은 진정성의 힘을 망각하고 살아가는 우리의 현주소를 보여 주는 것이 아닐까? 주목하지 않아서 그렇지 우리 사회에는 앞에서 말한 두 사람처럼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묵묵히 진정성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분명히 많이 있다. 이제는 매스컴도 더 이상 우리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들의 어이없는 행태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진정성의 힘을 지닌 무명의 시민들에게 주목했으면 좋겠다. 하여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자신과 이웃과 사회에 대해 진정성을 갖고 사는 것이 가장 자랑스럽고 자신에게도 유익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으면 한다.

며칠 전, 밤늦게까지 실습실에 남아 과제를 작성하는 학생들을 보았다. 농담 삼아 학생들에게 “자기 힘으로 해야지 남의 것 베끼면 안 돼”라고 말했다. 그때 한 학생이 “교수님, 차라리 과제를 못했으면 못했지 남의 것 베끼지는 않겠습니다.” 라고 대답해왔다. 뜻하지 않은 학생의 대답은 귀가 길 내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무심코 학생들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말을 내뱉었던 나 자신이 무안하게 느껴졌다.

우리 사회에는 진정을 다해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또한 그런 사람들이 말없이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고 있다. 참으로 진정성은 힘이 있다.

박 진 우 수원대 통계정보학과 교수·통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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