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에서 찾은 논술 : '교과서에서 찾은 논술’에서는 철학·역사·사회·문학을 번갈아 연재합니다. ‘철학’코너에서는 교과서에 등장하는 여러 철학자들의 삶과 사상을 살펴봅니다.
▲데카르트는 왜“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말했을까?
● 데카르트를 ‘근대철학의 아버지’라 부르는 이유
흔히 데카르트를 ‘근대철학의 아버지’라고 부르는데, 여러분은 데카르트 하면 제일 먼저 뭐가 떠오르나요? 아마도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일 거예요. 이 명제는 서양 근대철학의 시작을 거론할 때 빠지지 않는 단골메뉴예요. 최근에는 “나는 뛴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고로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식의 패러디까지 등장할 정도로 너무나 익숙한 문구가 되었지요. 그런데 데카르트는 왜 뜬금없이 이렇게 말했을까요? 그를 근대철학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와 이 말은 무슨 관련이 있을까요?
데카르트를 ‘근대철학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가 중세 철학을 벗어나 근대 철학의 출발점을 제공했기 때문이에요. 우선 두 철학이 근본적으로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는지 살펴봅시다.
서양의 중세는 기독교가 지배하던 시대였어요. 다시 말해 신의 ‘말씀’이 세상을 지배하고 통치하던 시기였던 것이죠. 신의 말씀은 성직자를 통해 전달되었기 때문에, 진리에 대해 고민할 것도 없이 성직자의 말만 따르면 되었어요. 무엇이 진리인지는 신의 말씀을 전하는 성직자가 보장해 주었으니까요.
학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로 신학이 모든 학문을 지배하고, 철학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지요. 신학이 허용한 범위 안에서만 철학이 존재할 수 있었고, 신 안에서만 철학적 사고가 허용되었어요. 중세의 철학은 신학의 교리를 증명하고, 신에 대해 제기되는 의문을 논박하고, 신학을 변호하는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지요. 그 때문에 중세 철학은 ‘신학의 시녀’라고 불렸어요. 이러한 시대적 상황 때문에 중세 사람들은 확실성의 근거를 신에게서 찾았죠. 신은 한 마디로 의심해서는 안 되는 절대 진리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데카르트는 이런 중세 철학의 룰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독립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정립해 나갔어요. 이 과정에서 바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말이 나온 것이랍니다. 데카르트는 더 이상 신에 의지하지 않고 신에게서 독립한 ‘나’란 주체를 철학적 사고의 출발점으로 삼았던 거예요. 즉, 그는 인간의 생각하는 능력인 이성의 힘을 신뢰하여, 이성으로 지식의 확실성을 밝힐 수 있다고 봤어요. 이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가리는 기준이 더 이상 신에게 있지 않고 인간에게 있다는 것을 의미했죠. 신이 독점했던 지혜의 권위를 인간이 빼앗은 거예요. 이제 인간은 성경에 의존하지 않고도 스스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가릴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이죠. 이렇게 근대철학의 출발은 인간의 이성에 대한 신뢰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어요. 그 기초를 데카르트가 닦아놓은 것입니다.
하지만 데카르트가 근대철학의 기초를 세웠고, 이성을 중시했다는 걸 그저 지식으로만 안다면 여러분의 철학적 사고력을 키우는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거예요. 스스로 데카르트가 되어 그의 사고과정을 따라가며 논리를 확장시킬 수 있어야 비로소 자신의 것이 될 겁니다. 자 그럼 데카르트는 어떻게 근대철학의 기초를 놓을 수 있었는지 교과서를 통해 살펴봅시다.
고등학교 윤리와 사상_교육인적자원부_111쪽
합리론의 대표자는 데카르트(Descartes, R., 1596~1650)이다. 그는, 감각적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은 주관적일 뿐만 아니라 단편적이고 우연한 것이어서, 명백한 진리로 믿을 수 있는 것이 못 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는 의심할 여지없이 확실한 지식을 찾기 위하여 일단 모든 것을 의심해 보았다. 이것이 이른바 ‘방법적 회의(懷疑)’이다. 그 결과, 아무리 모든 것을 의심한다고 해도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한 가지 사실에 이르게 되었는데, 그것은 “의심(생각)하고 있는 내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확고 부동한 명제를 얻을 수 있었다. 데카르트의 이러한 태도에는 인간의 사유 능력, 즉 이성에 대한 신뢰가 깔려 있으며, 이는 대부분의 합리론자들에게 공통되는 모습이기도 하다.
데카르트가
진정 알고 싶었던 것은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확실한 진리가 무엇인가 하는 거였어요. 그는 열 살 때부터 9년 동안 예수회 신학교에서 신학 중심의 철학인 스콜라 철학을 배웠어요. 하지만 데카르트는 신학에서 얘기하는 견해들을 도무지 확신할 수가 없었어요. 즉, 신의 말씀이 모두 옳은 것인지 믿을 수가 없었던 거지요. 그런 이유로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그는 이전에 배운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고 완전히 다시 출발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어요. 데카르트는 가장 확실한 진리에서 출발하려고 그 진리를 발견하는 데 전력을 다했지요. 일단 모든 것을 의심해 보고, 또 의심하는 과정을 반복했어요. 이런 그의 철학적 방법을 소위 ‘방법적 회의’라고 불러요. 그는 명증성의 규칙, 분해의 규칙, 합성의 규칙, 열거의 규칙, 네 가지 규칙을 만들어 철저히 학문적 방법론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명증성의 규칙은 “명증적으로 참이라고 인식한 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말라”는 거예요. 조금 더 풀어보면, “속단과 편견을 신중히 피하고 조금도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분명하고 뚜렷하게 내 정신에 나타나는 것 외에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판단을 내리지 말라”고 주문하는 것이죠.
분해의 규칙은 “검토할 어려움들을 각각 잘 해결할 수 있도록 가능한 한 작은 부분으로” 나누라는 거예요. 세 번째 합성의 규칙은 “가장 단순하고 알기 쉬운 대상에서 출발하여 마치 계단을 올라가듯 조금씩 올라가 가장 복잡한 것의 인식에까지” 도달하라고 요구하죠. 네 번째 열거의 규칙은 “아무 것도 빠뜨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 정도로 완벽한 열거와 전반적인 검사를 어디서나 행”할 것을 요구하는 규칙이에요. 사실 이 네 가지 규칙은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에요. 그러나 그가 얼마나 진리를 찾기 위한 방법에 철저했는가 하는 점을 알 수 있어요. 이 규칙들은 모든 학문에서 진리를 발견하기 위한 방법으로 적용되었을 때 아주 유용하게 쓰일 수 있어요.
어찌됐든 데카르트는 그렇게 해서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확실한 진리를 발견하게 돼요. 바로 “의심(생각)하고 있는 나”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이죠. 내가 철수인지, 영희인지 본래부터 누구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라는 거죠. 어찌 보면 대단한 발견도 아니에요. 어떻게 나의 존재를 부정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당연한 지적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인간과 자연, 세상의 모든 것들이 신의 창조물이라고 여기던 시대에, 신을 제쳐두고 ‘생각하는 나’란 주체가 모든 지식과 사고의 기초이자 출발점이라고 생각한 것은 대단히 혁신적인 발상이었지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 데카르트에게는 생각이 존재보다 우선하고 있어요. 즉 생각이 있어야 비로소 존재한다는 것이죠. 여기서 주체는 생각하는 나, 곧 정신을 의미해요. 그렇게 설정하는 순간, 육체는 주체와 분리되는 대상인 객체가 되어버려요. 그리고 정신이 육체나 물질보다 우선한다고 생각하게 되지요. 그런 점에서 보면, 데카르트의 철학은 관념론이라 할 수 있어요. 성경에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고 말한 것과 똑같이 생각, 정신, 관념이 우선한다는 거지요. 한 인간만을 놓고 보면 그런데요, 인간과 자연으로 관계를 좀더 확장시켜 보면 어떻게 될까요? 누가 주체이고 누가 객체가 될까요. 생각하는 능력을 가진 인간이 주체가 되고 자연은 대상, 곧 객체가 되는 것이죠. 따라서 주체인 인간이 대상인 자연을 지배한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 나오게 되는 거예요. 진리를 위해 자연을 조작할 수 있다는 생각은 후에 자연과학과 과학기술의 발전에 크나큰 영향을 미치게 돼요.
● 진리에 이르는 길
데카르트는 확실한 진리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의심하다가 결국 신으로부터 독립된 ‘생각하는 나’를 발견하게 됐어요. 하지만 신으로부터 독립하는 그 순간, 이전에 진리임을 보장해 주었던 절대자까지 사라지고 말았어요. 이제 무엇이 진리인지는 인간이 이성을 통해 스스로 개척해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거예요. 데카르트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갔을까요?
‘생각하는 나’에서 사고를 출발한다는 것은 인간의 이성을 그만큼 중요하게 여겼다는 걸 의미해요. 이성을 통해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굳게 믿은 것이지요. 예를 들어볼까요. 원의 개념은 ‘완전히 둥근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완전한 원을 그리기란 쉽지 않고, 완전한 원의 개념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데카르트는 실제 모습과 일치하지 않더라도 이성을 통해 인식하고 있는 완전한 원의 개념이 훨씬 더 진리에 가깝다고 생각했고, 따라서 수학이야말로 확실하고 완전한 지식, 즉 진리의 모델이라고 생각했지요.
데카르트의 인식은 자연에 대한 것뿐 아니라 인간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어요. 데카르트는 자연을 지배하기 위해 자연을 알아야 하듯, 우리 자신의 육체를 지배하고 통제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의 육체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 육체에 작용을 미치고, 육체에서 파생하는 감정, 정념을 규제하고 그 힘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감정과 정념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고 주장해요. 이성이 아무리 옳다고 하더라도 육체가 제멋대로라면 인간이 신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은 정당화되기 어렵겠죠. 그래서 그는 ‘어떻게 육체를 이성적으로 통제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다루는 도덕론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 때문에 데카르트는 감정과 정념, 욕망과 육체적 활동을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 완전한 능력을 가진 이성이 통제하고 지배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게 돼요. 결국 도덕론에 관한 데카르트의 생각을 정리하면, 이성에 의해 통제되는 상태를 위해서 제멋대로인 육체를 통제하고 욕망을 억제하라는 것이지요.
● 데카르트의 철학이 미친 영향
이러한 데카르트의 철학은 어떤 변화들을 일으켰을까요? 먼저 이성을 통해 진리를 인식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생각은 결과적으로 과학의 발전에 논리적 근거를 제공하게 돼요. 역으로 과학의 발전으로 데카르트의 사고가 태동할 수 있게끔 도와주기도 했지만 말이에요. 신의 말씀이 아니라 실제 세계를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게 진리에 이르는 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지요.
하지만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문제도 있어요. 데카르트는 정신과 육체를 분리시킨 동시에 인간과 자연을 분리시키면서 자연에 대한 인간의 우위를 주장하게 돼요. 즉, 인간이 자연을 지배한다는 생각을 낳은 것이죠. 자연은 인간을 위해 봉사해야 하고, 진리를 찾기 위해 자연을 실험 대상처럼 조작하고 실험하는 인간의 행위들이 모두 정당화되는 거예요. 근대 이후 오늘날까지 자연파괴뿐만 아니라 동물 실험과 복제를 아무런 죄의식 없이 행할 수 있는 것도 인간은 자연과 구별되는 특별한 존재라는 근대철학적 사고가 깊이 뿌리내렸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른바 과학만능주의 사고를 낳는 뿌리를 제공한 거죠.
또한 데카르트는 이성의 힘을 중시했기 때문에 이성으로 대중의 편견과 무지를 일깨우고, 이성에 따라 행동하도록 하라는 계몽주의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어요. 신에 종속된 존재가 아니라 ‘생각하는’ 독립된 주체로 인간을 자리매김함으로써 훗날 개인의 자아를 중시하는 인권 개념을 발전시키는데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지요.
진리를 향한 한 철학자의 열정이 근대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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