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 비빔밥 논술 - 주검 앞에서 노래하다 -

쉽게 읽는 장자 이야기

자상호(子桑戶)와 맹자반(孟子反)과 자금장(子琴張) 세 사람이 서로 사귀면서 말했다.

“누가 서로 사귐이 없는 것을 서로 사귀는 것으로 여기며, 누가 서로 도와줌이 없는 것을 서로 도와주는 것으로 여길 수 있는가? 누가 하늘에 올라 안개 속에 노닐어 한없이 넓은 세계에서 자유롭게 생을 잊고 끝나고 다하는 바가 없게 할 수 있는가?”

세 사람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빙그레 웃으면서 각자의 마음에 거슬리는 바가 없게 되어 마침내 서로 벗이 되었다.

아무 일 없이 얼마 지난 뒤 자상호가 죽어서 아직 장례를 치르지 않았는데, 공자가 그 소식을 듣고 자공으로 하여금 가서 장사를 도와주게 하였다. 자공이 가 보니 한 사람은 노래를 부르고 나머지 한 사람은 거문고를 타면서 서로 화답하면서 노래했다.

“아, 상호여. 아, 상호여. 그대는 이미 참된 세계로 돌아갔는데 우리는 아직 사람으로 남아 있구나. 아.”

자공이 종종걸음으로 그들 앞에 나아가 말했다.

“감히 묻겠습니다. 시신을 앞에 놓고 노래하는 것이 예(禮)입니까?”

두 사람이 서로 마주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이 사람이 어찌 예의 본래 뜻을 알겠는가?” (6 대종사)

교과서는 항상 ‘매우’ 일반적인 주장을 한다. 사실의 영역을 담는 학문인 과학에 비해, 가치의 영역을 다루는 학문인 도덕은 특히 그렇다. 동양과 서양이 교차하는 한반도에서, 더구나 전근대와 근대 및 현대가 공존하는 한국에서 도덕과 관련해서 명확하게 특정한 주장을 지지하기란 쉽지 않다.

교과서에서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하니 예절만이 결코 변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한다. 또 동양의 전통적 예절 사상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이것이 꼭 옳은 것이라고 하지도 않는다. 동양의 것이 전적으로 옳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현대화된 것이 옳다고 할 수도 없다. 결국 여기도 다리를 걸치고, 저기도 다리를 걸쳐야 한다. 동양과 서양을 절충하고, 전근대와 현대를 절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양다리를 걸치면 이번에는 주의주장이 없다는 비판을 받게 마련이다. 따라서 이틈에서 도덕교과서는 가장 안전한 주장을 선택한다. 다소 범범하고 엉성한, 매우 일반적인 주장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교과서에 의하면, 예절은 원만한 인간관계를 성취하는 데 목적이 있다. 원만함이란 둥글둥글한 것으로 공기가 꽉 찬 축구공을 연상하면 쉽다. 사람의 관계가 공 구르듯 부드럽게 굴러가는 것이다. 예절을 어기면 법을 어겼을 때처럼 직접적인 형벌은 없지만 주위의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예절은 정신과 형식으로 나눌 수 있다. 상대방에게 머리를 숙이는 행위는 예절의 형식이고 이런 행위를 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상대를 공경하는 마음은 예절의 정신이다.

예절은 관습을 통해서 형성되었다. 원시시대부터 살아오면서 얻은 공통 습관이 고정화, 형식화된 것이 예절이다. 그래서 예절의 형식은 지역에 따라서 다르다. 동아시아를 벗어난 곳에서는 머리를 숙이는 행위가 아니라 손을 잡거나 서로 안는 행위가 상대를 공경하는 마음을 표시하는 것이 된다. 물론 행위는 서로 다르지만 그 안에 ‘공경하는 마음’은 같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예절의 형식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서로 다르지만 예절의 정신은 언제 어디서나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를 각각 예절의 가변성과 보편성이라고 말한다.

● 유학의 예절론

이에 비해 동양에서는, 예절을 대체로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으로서 결코 어길 수 없는 절대적 법도라고 이해했다. 중국의 모든 학파의 예절론을 살피기 어려우니, 유학의 예절론만 간략하게 살펴보겠다.

일반적으로 공자의 핵심사상은 인(仁)과 예(禮)인데, 맹자가 인을 계승하고 순자가 예를 계승했다고 본다. 이러한 견해는 어떤 사상가가 예를 무시했다는 것이 아니다. 세 사상가 모두가 예를 존중했는데 거기에 다소 비교 우위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예(禮)는 사랑으로서의 인(仁)을 표현하는 방식이며, 인(仁)은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예의 내용 또는 정신이 된다고 하겠다. 한편 <논어> 의 구절을 해석하면서 주희(朱熹)는 “예(禮)라는 것은 천리(天理)가 정해준, 표현방식의 절도(節度)요, 사람 일에 있어서의 의례적 법칙이”라고 하였다. 또 “이러한 예(禮)는 모두 자연(自然)에 근원하여 나왔다”고 하였다. 즉, 예절을 인간의 약속, 사회적 계약, 관습이라고 보지 않은 것이다. 예절을 세계의 궁극적 존재자인 천리(天理:하늘의 법칙, 세계 전체의 법칙)에 의해 정해진 것으로 보고, 결코 어길 수 없는 법칙임을 강조하였다.

전통사회에서도 이러한 예절을 어기는 경우도 많았던 모양이다. 과거 어린 아이를 위한 교재 <소학> 에는 상례(喪禮)를 어겼던 사례가 기록돼 있다.

1) 진(晉)나라 완적(阮籍, 210~263)은 재주를 믿고 방탕하여 상중에서도 무례했기 때문에 하증(何曾)이 문제(文帝)가 앉은 자리에서 그 얼굴을 보면서 꾸짖어 말하기를 “그대는 풍속을 무너뜨린 사람이니 이런 것을 키워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문제(文帝)에게 말하기를 “왕께는 지금 효도로 천하를 다스리고 있는데 완적이 깊은 슬픔 중에 있으면서도 공석에서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습니다. 마땅히 그를 국경지역으로 물리쳐 중국을 더럽힐 수 없게 하소서.”라고 하였다.

2) 송나라 여릉왕 의진(義眞)이 무제(武帝)의 상중(喪中)에 있으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생선과 고기, 진귀한 음식을 사오게 하고 재실 안에 따로 휘장을 친 주방을 세웠다. 마침 관리 유침(劉湛)이 들어오자 의진이 바다조개를 굽도록 명령하였다. 유침이 “이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라고 하자, 의진이 “아침 날씨가 매우 차갑네. 그대는 한 집안이나 다름없으니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시오.”라고 하였다. 드디어 술이 나오자 유침은 마침내 “이미 능히 예로써 자처하지 못하고 또 능히 예로써 남을 대하지도 못하십니다.”라고 하였다.

3) 수나라 양제가 태자가 되어 문헌황후의 상 중에 있을 때에 고기와 식혜를 남몰래 들여와 먹었다고 한다. 이에 무식한 시골 사람들은 염을 하기도 전에 친구와 빈객이 술과 안주를 가지고 와서 위로하면 주인은 함께 마시고, 심한 자는 상주(喪主)에게 시집가고 상주가 장가가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상례는 망자(亡者: 돌아간 사람)를 위한 슬픔이 중심이라 장례 기간 동안에는 금욕적인 생활을 한다. 쉽게 말해서 돌아간 사람을 위해 한동안 슬퍼하고 엄숙하게 지내는 것이다. 이런 금욕 생활은 길게는 3년 정도 계속되기 때문에 계율을 지키기 쉽지 않았다. 물론 3년상은 고통을 주기 위한 기간이 아니라 열심히 공부하는 기간이고 거룩함에 집중하는 기간이다. 그렇다고 해도, 3년상을 엄숙하게 치르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뛰어난 행실을 가진 인물이어야 가능했던 일이다.

문제는 의도적으로 이런 상례를 무시하고 어긴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위의 사례 중에서 1)번의 완적은 의도적으로 어긴 사례에 속한다. <자치통감> 을 보면 완적의 얘기가 나와 있다. 완적(阮籍)이 보병(步兵) 장교가 되었을 때였다. 완적이 바둑을 두고 있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전갈이 왔다. 함께 두던 상대방이 그만 두자고 하였지만 완적은 남아서 승부를 결정지었다. 이윽고 2말이나 되는 술을 마시고 큰 소리를 지르고 피를 여러 되 쏟고 앙상하게 뼈만 남은 채로 서 있었다. 상례 기간 중에도 평소와 다름없이 술을 마셨다. 하증(何曾)은 이로써 문제(文帝)에게 위와 같이 완적을 비판하였던 것이다. 이런 기이한 행동을 한 완적은 이른바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이다. 죽림칠현은 중국 위진(魏晉)시대에 노장사상의 영향을 받아서 유교의 예교(禮敎, 예절의 가르침)를 비웃으며 개인주의적, 무정부주의적으로 살았다. 그들이 유교의 예교를 비웃을 수 있었던 것은 장자의 <대종사> 와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 장자가 말하는 예의 본뜻

앞의 예문에서는 “누가 서로 사귐이 없는 것을 서로 사귀는 것으로 여기며, 누가 서로 도와줌이 없는 것을 서로 도와주는 것으로 여길 수 있는가? 누가 하늘에 올라 안개 속에 노닐어 한없이 넓은 세계에서 자유롭게 생을 잊고 끝나고 다하는 바가 없게 할 수 있는가?”라고 했다. 한없는 자유에서 살고자 하는 뜻을 말한 것이다. 이 한계 없는 자유는 생이라는 경계 지음도 없는 것이다. 삶을 잊었기 때문에, 죽음도 문제될 것이 없다. 친구의 죽음 앞에서 눈물짓는 것은 삶에 집착하는 낮은 경지다. 사실 죽음은 삶에 비해서 오히려 높은 상태일 수 있다.

“아 상호여. 그대는 이미 참된 세계로 돌아갔는데 우리는 아직 사람으로 남아 있구나. 아.” 그의 죽음을 슬퍼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기뻐해야 한다. 그러므로 주검 앞에서 노래하고 거문고를 연주하며 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죽음 앞에서 슬퍼해야 하는 유학자는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럴 수가 있습니까?”라고 자공이 물을 수밖에 없다.

장자가 말하는 예의 본뜻은 무엇일까? 예문의 뒷부분을 읽어보면, 장자는 자연과 합일하여 세속의 예절을 초월하는 것이 진정한 예의 뜻이라고 말한다. 죽고 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당연히 기뻐할 것이요 슬퍼할 수는 없는 것이다. 상사(喪事)에 슬퍼하는 것은 인위적(人爲的)인 것일 뿐이다. 세속의 인위적 예절은 초극하지 않을 수 없다. 완적이 상례를 의도적으로 어긴 것은 세속의 예절을 초월하여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의 상태에 있고자 함이다.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자연스러움, 곧 생사(生死)의 경계를 초월한 자유에 도달함이 목표이다.

이제, 이러한 장자 이야기의 본뜻을 알았으니, 어떤 이의 장례식에서 잘 죽었다고 소리 내어 웃을 수 있을까? 완적처럼 용감하면 모르겠지만 아마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주위 사람들의 모진 비난을 감수해야 하며, 심지어는 사회생활이 불가능해질지도 모른다. 다만 관습적으로 성립된 예법을 준수하기는 하되, 그 본래의 뜻에 대하여 한 번쯤 생각해둘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진정성이 있는 예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장례식이 가끔 잔치처럼 보일 때에 장자의 말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것이다.*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