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사람은 손바닥만 본다. 중앙부처 기자실을 없애고 단 세 군데의 합동브리핑룸으로 대체하는 언론 통제정책을 이 정부는 ‘전향적 개편’이라고 강변한다. 해를 가린 손바닥만 보고 하는 소리다.
브리핑룸을 안해본 건 아니다. 브리핑이란 게 신문이 아닌 구문을 재탕하기가 일쑤다. 그나마 불리한 질문엔 동문서답이 아니면 ‘시간이 없다’며 뺑소니 치기가 예사다. 기사 공급을 불러주는 대로 받아쓰라는 것이 브리핑룸이다. 그런데 이젠 세 군데의 브리핑룸만 언론사가 왔다 갔다 할 뿐, 기자의 정부 부처 출입을 통제하는 것이 엊그제 국무회의란 데서 의결한 새로운 브리핑룸 제도다.
공무원과의 대면취재를 엄금한다. 기자를 멋대로 만난 공무원은 작살을 낼 요량이다. 취재원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이다. 이래놓고는 자유취재를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니라고 또 우긴다. 공보관실을 통한 자유취재는 편의를 도모한다지만 가당치 않다. 불리한 내용의 취재협조 의뢰엔 자료를 왜곡할 경우, 이를 확인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아니면 자료 협조에 마냥 시간을 끌어 기사 작성을 제때 못하게 할 수가 있다. 취재협조이기 보다는 취재방해인 게 이른바 공보관실을 통한 자유취재인 것이다.
이같은 기자실 통폐합, 브리핑룸 운영이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하는 정보공개의 원칙에 합치된다고 말할 순 없다. 지금은 언론이 특권 의식을 가질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예컨대 언론사 자동차라고 교통법규 위반이 묵인될 수 없고 그렇게 여기지도 않는다. 오히려 더 조심해야 하는 것을 당연한 걸로 안다. 이 정부는 권력에 불리한 보도는 민·형사 문제 제기를 능사로 삼지만, 이를 두려워하면 이미 언론이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언론과의 전쟁’을 선포했던 사람이다. 이런 가운데도 대통령 당선 직후에는 “방송 덕분”이라며 “방송이 하라는 대로 하겠다”는 등 덕담을 아끼지 않았다. 우호적인 친여 신문사를 방문하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임기말 들어선 방송을 악담했다. 친여 신문도 불신한다. ‘언론과의 전쟁’ 자체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언론이 책임 질 일은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한다. 기자실에 문제가 있다고는 믿기지 않지만 문제가 있으면 시정해야 된다. 그러나 기자실 통폐합을 골자로 하는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은 방안이 아니다. 이런 선진화는 그 어느 선진국에도 없다.
기우일 진 모르지만 걱정되는 게 있다. 몹쓸 병은 빠르게 퍼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중앙정부를 모방한답시고 행여 지방에서도 엇비슷한 통제를 염두에 두는 지방자치단체장이 있을지 모른다. 만일 이의 시도를 생각해보는 자치단체장이 있으면 자충수임을 일러둔다. 손바닥으로 해를 가릴 수 없기는 중앙이나 지방이나 다 마찬가지다.
노 대통령의 측근들은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은 앞서가는 생각을 하는 데 국민이 몰라준다”고 했다. ‘참여정부의 치적을 언론이 제대로 평가해주지 않는다’는 건 언론에 대한 대통령의 불만이다.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 것은 고사하고 ‘헐뜯는다’고 보는 것이 대통령의 생각인 것 같다. 여기선 이에 대한 시시비비를 길게 가릴 계제가 아니어서 한 마디로 집약한다. 일찍이 ‘국민의 지지도에 개의치 않겠다’고 했던 대통령의 말은 대통령의 언론관이 잘못된 사실을 자인하는 반증인 것이다.
언론의 비판을 거부하는 권력은 독선에 빠진다. 상습벽은 결국 중독 증상을 드러낸다. 전두환 정권을 낳은 신군부의 언론사 통폐합은 물리적이었다. 노무현 정권의 기자실 통폐합은 지능적이다. 어떻게 보면 물리력보다 한 술 더 뜨는 것이 합리화를 위장한 지능적 수법이다. 기자실 통폐합은 지능적 언론 통폐합으로 비유된다.
브리핑룸에서 불러주는 대로 보도하는 것을 언론으로 보는 게 대통령의 생각이라면, 그같은 획일적 보도가 대통령이 바라는 언론의 합리화 성과라면, 북의 로동신문 등 기관지와 어떻게 다르다 할 수 있는지 자문해볼 일이다. 그렇기도 하지만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의 햇살을 손바닥으로 가릴 수는 없다. 설령 오는 8월부터 합동브리핑룸이 실시된다 해도 1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다. 다음 정권에서 누가 들어서든 없앨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슬픈것은 이를 주도한 청와대와 정부 관계자들이 언론인 출신이란 사실이다. 유신정권의 언론 통제, 신군부의 언론사 통폐합을 주도했던 사람들도 언론인 출신이었다. 이들에게 침을 뱉었던 언론인들이 잘못된 선배의 전철을 밟아 권력의 맛을 잘못 맛들인 것이다. 언론을 억압하는 권력의 하수인이 언론인 출신인 것은 정말 자괴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역시 손바닥으로 해를 가릴 수는 없다. 대통령이 보는 것은 해가 아닌 자신의 손바닥이다.
/임양은 주필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