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가 드디어 터져나왔다. “큰 박수를 부탁합니다!”라는 진행자의 통사정에도 별로 움직이지 않던 관중석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치어리더 30여명이 그라운드에서 펼치는 응원 율동이 점점 고조됐다.
이에앞서 가진 염광여고 고적대의 마칭퍼레이드, 경찰대학 의장대의 의장대 시범, 경희대와 해피수원태권도가 벌인 태권도 시범 역시 화려 장쾌한 게 볼만했다. “꽤 잘하네!” 어느 장년의 부부는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손은 박수 대신 빵 조각을 입에 넣기에 바빴다. 물병까지 든 빵 봉지엔 ‘경축 제53회 경기도체육대회 (협찬) IBK 기업은행’이라고 씌어 있었다.
수원종합운동장 메인스타디움은 서북쪽 코너만 자리가 좀 비었을 뿐 거의 꽉 찼다. 자원봉사자들이 관중석을 돌아다니며 나눠준 건 빵만이 아니다. 긴 수건도 나눠줘서 웬 것인가 했더니 알고보니 응원용이었다. 치어리더의 율동과 함께 장안원두를 펑펑 울리는 탱고조의 음악이 드높아지자 이윽고 관람객 응원전은 절정에 올랐다. ‘제53회 경기도체육대회 Happy Suwon’이 새겨진 빨갛고 파란 엠블렘을 모두 들고 일어나 좌우로 흔들면서 어깨를 둥실거리기도 했다.
이어 벌어진 정조대왕 능행차 재연은 역시 장관이었다. 트랙을 따라 돌아가며 장사진을 이룬 행차행렬은 카메라진들의 플래시 세례로 걸음을 종종 머물러야 했다. 정조의 도시, 유서깊은 화성을 알리는 남녀 사회자의 마이크 멘트가 낭랑하게 울려 퍼졌다.
특전사의 고공낙하는 식전행사의 하이라이트였다. 먹구름을 머금어 잔뜩 찌푸린 하늘을 날던 헬리콥터가 토해내듯이 뛰쳐나온 공수부대를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은 한참 뒤였다. “어머! 바람이 센데 엉뚱한데로 떨어지면 어쩌지?” 어느 아주머니의 걱정은 그럴법 하기도 했다. 바람이 많이 불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대체가 몇 명일까, 낙하산을 요리조리 운전해가며 가볍게 착지하고 나서 거수경례를 단아하게 붙이는 공수부대원들은 모두 열두 명이었다. 박수가 쏟아졌다.
고공낙하로 모든 식전행사가 끝나기 때문에 로열박스는 이 무렵엔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개회식이 오전 11시이긴 하지만 좀 더 일찍 와서 식전행사 관람을 관중들과 함께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았다. 고공낙하 때만 해도 관중석은 하늘을 바라보며 환성을 올리는데, 로열박스의 벼슬꾼들은 서로 악수하기에만 바빴다. 기왕 내친 김에 로열박스 얘길 더 해야겠다. 경기도체전은 경기도체육회가 주최하는 것이지만 이번 대회의 주관은 수원시다. 대회를 실질적으로 주관하는 사람보다 명의상의 기관장이 상급단체라 하여 독판으로 행세하는 것은 모양새가 보기에 안좋았다. 다음 대회가 열리는 안산에선 그 자신이 주관 단체장을 예우할 줄 알면 좋겠다.
31개 시·군 선수단의 입장식은 실로 현란했다. 시·군마다 고장 특색을 드러낸 입장식은 나름대로 다 의미가 깊은 가운데 기교가 만발하고 재치가 가득했다. 형형색색의 조형물이나 가지가지로 나타낸 지역 표상을 일일이 여기에 옮길 순 없고, 그렇다 해서 몇 가지를 예로 드는 것도 공평치 못해 그만 두지만, 사람의 생각이나 재주는 여러가지고 또 거의 무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입장식은 오색풍선이 스타디움을 뒤덮는 가운데 흥분의 도가니속에 잠겼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관중석의 마음이다. 입장식에서 시·군팀이 더러 볼을 관중석에 날려 보내는데 이를 낚아잡은 사람들은 여간 기뻐하는 게 아니다. 돈으로 치면 얼마나 될까만 행운으로 치는 것 같아 보였다. 볼이 자기 이마에 맞았는데도 잡지 못해 딴 곳으로 튄 것을 엉뚱한 사람이 잡는 등 갖가지 진풍경이 벌어져 웃음 바다가 되곤 했다.
그런데 행사 도중에 찌푸린 하늘에서 마침내 빗방울이 떨어지자 스타디움 관중석은 온통 하얀색으로 일변했다. 모두가 비닐 비옷을 입었기 때문이다. 대회를 주관하는 데서 자원봉사자를 통해 나눠준 것은 빵이나 수건 엠블렘만이 아니고 비닐로 만든 비옷도 들어 있었던 것이다. 몇 푼 안되는 것이지만 여간 긴요한 게 아니다. 그러찮아도 날씨가 좋지 않은 것으로 예보되어 염려했던 비가 좀 뿌리다가 이내 그치더니 개회식이 본격화하면서 ‘후두둑’하고 빗방울이 굵어졌다. 관중석의 걱정은 그라운드에 서있는 선수단이었는데, 그들도 역시 비닐비옷을 입는 것이었다. 연이나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미리 나눠준 용의주도함이 돋보였다.
어제부터 시작된 대회 열전은 내일 끝난다. 31개 시·군 1만200여 명의 선수단이 30개 경기장에서 20개 종목에 걸쳐 자웅을 겨룬다. 육상 같은 실외경기를 생각해서 날씨가 개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아울러 선수들에게 최선을 당부한다. 승부는 그 다음이다. 자신이 최선을 다하면 그 자체가 이긴거나 다름이 없다. 관중석에서 보였던 관중들의 범시민적 관심이 또한 좋은 대회를 만든다.
/임 양 은 주필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