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판이다. 대선정국이 이 모양이다. 역대 대선에서 없었던 도깨비 현상이 이번 대선의 특성이다. 국어대사전은 도깨비를 가리켜 ‘동물이나 사람 형상의 잡귀로서 사람을 호리는 괴상한 재주를 가졌다’고 풀이해 놨다.
대통령 자릴 따 놓은 당상처럼 거들먹거리던 한나라당이 4·25 재보선 몰락으로 초상집이 됐다. 당내 주자가 당의 눈칠 살피지 않고, 당이 대선 주자의 눈치를 보아온 취약성이 분열의 위기를 가져왔다. 당 대표와 두 주자의 강(姜재섭)·이(李명박)·박(朴근혜)등 3자 회동으로 일단은 위기를 봉합할 것이다. 그러나 의문이다. 봉합된 수술 자국 흉터는 우주 공간에선 째진다. 대선의 공간이 본격화되면 이·박의 봉합은 결국 실밥이 터질 공산이 높다.
이들의 대통령병은 이미 불치의 단계에 들어섰다. 도깨비 놀음이긴 했지만, 대중 동원의 대통령병 맛 또한 길들어졌다. 한나라당 자체가 두 동강으로 벌써 균열이 가 있다. 이·박의 본선 대결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는 전망은 그리 어렵지 않다. 다만 그 형태가 어떻게 나타날 것인지는 더 두고 볼 일이다. 대선을 앞둔 제일 야당이 이토록 비실비실한 전례가 없다.
여권 사정은 더 도깨비판이다. 대체로 정세균의 열린우리당, 김한길의 탈당파 통합신당 모임, 박상천의 민주당, 한명숙 등 친노그룹으로 구분된다. 김근태의 ‘민평련’계보, 천정배의 ‘민생정치모임’이 또 있다. 손학규의 ‘선진평화포럼’이 태풍의 눈으로 출범했다.
이번 재보선에서 민주당은 전남 무안·신안, 국민중심당은 대전 서구을 등 각자의 텃밭에서 국회의원을 한 명씩 냈다. 민주당과 국민중심당은 이를 “승리”라며 자축해 들떴다. 국민중심당의 심대평은 ‘독자노선’, 민주당의 김홍업은 ‘중도통합’을 당선 일성으로 내놨다. 심대평은 상대가 누구든 대선의 ‘충청 러브 콜’에 자기 당 몫을 단단히 챙긴다는 의도다. 김홍업은 정치 입문생이다. 입문생 주제에 말하는 ‘중도통합’ 주도는 아버지 되는 김대중의 호남 영향력을 두고 하는 소리다. 국회의원 1석 차지를 ‘승리의 잔치’로 보고, 이의 초선 당선자가 큰 소릴 쳐 웃기는 상황이 범여권의 복잡한 속사정이다.
주목되는 것은 친노그룹의 부활이다. 정운찬의 중도 하차 이후 이해찬, 한명숙, 김혁규 등의 세력화가 추진되고 있다. 한명숙은 대선 의사를 밝혔고, 이해찬은 대통령 노무현의 절대적 신임을 받는 사람이다. 친노그룹의 계산은 이렇다. 대통령 지지의 절대적 핵심세력 15%를 넘겨받고, 여기에 알파를 생성하는 가운데 야권이 분열하면 승산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물론 대통령이나 청와대측은 함구로 일관한다. 대통령의 함구는 그에게 적잖은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되고 있다. 한미자유무역(FTA) 협상을 강단있게 타결한 이후, 반전된 지지도가 돌출 발언의 침묵으로 상승세를 타고 있는 것은 눈여겨볼 현상이다.
범여권의 대선 주자 판도는 노무현의 ‘盧心’과 김대중의 ‘金心’이 어떻게 의기투합하느냐에 달렸다. 친노그룹이 아무리 ‘盧心’의 뒷배를 업을지라도 정치세력화, 즉 정당의 배경없이는 본선이 불가능하다.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에 미련이 있겠지만 각자가 헤쳐모여야 할 처지에 있는 것이 열린우리당의 형편이다. 김근태나 천정배는 FTA 단식으로 대통령과는 또 담을 쌓은 상태다.
그렇다고 노무현이 지역주의 정당이라고 비판한 민주당에 회귀할 수도 없는 일이다. 사정은 ‘金心’도 비슷하다. 민주당만의 리모컨 작동으로는 승산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김대중은 잘 안다. 민주당 대표 박상천은 ‘민주당 중심 통합론’을 말하고 있지만 민주당에 흡수될 당은 있을 것 같지 않다. ‘제3지대 신당론’이 이래서 나온다.
탈당파인 통합신당 모임은 열린우리당이 복잡하게 돌아가는 것에 기다리다 못해 오는 7일 중앙당 창당대회를 갖기로 했다. 독자적 신당 창당을 해놓고 민주당, 국민중심당과 통합 협상을 벌인다는 것이다. 이렇게 저렇게 얽힌 범여권의 내부 사정은 앞으로 대통령 후보로 누굴 내세우느냐에 따라 이합집산의 형세가 달라질 것이다.
대선을 앞두고 여권이 이토록 복잡했던 전례 역시 일찍이 없었던 일이다. 관심의 초점은 여권 또한 분열의 여부다. 즉 단일 후보의 가능성이 어느 정도 있느냐는 것이다.
도깨비 놀음에서 이상한 것은 결코 그렇게 볼 수 없었던 사람들이 너도 나도 ‘중도개혁’을 표방하고 나서는 사실이다. 중도개혁은 좋지만 이도 양면이 있다. 차라리 여야할 것 없이 모두 보수·진보의 개혁적 양대 정당으로 헤쳐 모이면 좋겠지만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우린 지금 도깨비도 보통이 아닌 낮도깨비들의 포위속에 갇혀있다. 도깨비 중에도 착한 도깨비, 나쁜 도깨비가 있다. 이들이 누군가를 잘 봐둬야 한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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