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이 망해가는 데,

남쪽(대한민국)이 망해간다. 북쪽(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망해간다. 남쪽은 플러스(+)형에서 마이너스(-)형으로 망해가고, 북쪽은 -형에서 +형으로 망해간다.

남쪽에서 말하는 반란군·공비·빨치산·남부군 등은 남로당 세력의 지칭만 다를 뿐 동종이명의 공산주의자들이다. 이들의 무력 봉기를 토벌하지 않았으면 대한민국은 건국될 수도 없었고, 건국이 된 뒤에도 나라를 지탱할 수 없었다. 남로당은 1948년 5월 건국을 위한 제헌국회의원 총선을 총검과 죽창으로 일부 투표소를 급습, 양민을 살상해가며 방해 책동을 벌였다. 건국 후에도 경찰관서를 기습하는 등 무력 준동은 여전했다.

6·25전쟁 당시 내각수상이며 인민군최고사령관인 김일성이 남로당 지도자로 부수상겸 외무상이던 박헌영을 전후 미제 간첩으로 몰아 숙청한 것도 이와 연유한다. 인민군이 남침하면 남로당 세력의 무장 봉기가 들고 일어나 절로 적화통일된다는 것이 김일성 앞에서 다짐한 박헌영의 호언장담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반란군 또는 공비로 불린 남로당 공산주의자들의 무력 봉기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토벌됐기 때문이다. 당시 반란군(공비)의 본거지였던 지리산 공비 토벌의 최대 경찰조직인 ‘서남지구전투사령관’ 신상묵이 몇해 전 일본 헌병 출신인 게 구설수에 올라 낙마한 신기남 열린우리당 의장의 아버지다. ‘지리산에 드디어 평화의 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루 말할 수 없는 동지(경찰관)들의 대가를 생각하면 혈루가 쏟아집니다’ 신상묵이 평소 교분을 가진 국군 장교였던 선친에게 보낸 엽서 내용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한 대목이다.

지리산으로 말하면 실종된 내 작은 숙부도 공산주의자였던 터라 지리산 공비의 총사령이던 이현상의 휘하에 있다가 그곳에서 돌아가신 걸로 추정하는 입장이다. 지금 생각하면 반란군이든 공비든 시대적 이데올로기의 희생이다. 그들을 이제 빨치산이니 남부군이니 하고 부른 것을 굳이 이해못할 것은 없다. 그러나 영웅시하는 풍조는 아니다. 대한민국 건국을 방해하고 국기를 위협한 남로당 공산주의자들의 행적을 미화하고, 사상적 그 후예들이 큰 소리치는 작금의 국가사회는 정상이 아니다. 나라를 망가뜨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6·25 당시 중학교 2학년생으로 남침 적화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세상에서 3개월을 살면서 ‘학생전위대’에 불려가 ‘김일성 장군의 노래’ ‘적기가’ ‘빨치산의 노래’등을 열심히 불렀다. 한참 부르다 보면 후퇴한 선친 생각에 잠겼던 처음과는 달리 들뜬 곡조에 신명이 절로 나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어린 마음에도 반복교육의 세뇌공작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느끼곤 했다. 소년단에서 인민반에 이르기까지 날마다 자아비판이다, 세포회의다 해가며 회의 투성이었다.

왜 이런 말을 하는가 하면 요즘 들리는 북녘의 세태가 나의 체험으로는 이해가 좀 안 되기 때문이다. 물론 북녘도 달라졌을 것이다. 달라져도 통제사회의 바탕은 달라지지 않았을 터인데, 남쪽 대중문화가 북쪽 주민들 사이에 인기를 끈다고 한다. 중국을 통해 들어간 드라마·영화·가요를 담은 비디오며 CD가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의 머리며, 옷 모양새가 한류풍을 따라 유행하는 것 같다. ‘부르주아 날라리풍을 경계하자’는 사상교양 강화에도 별 신통한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언이 좀 과장된 면이 있다 하여도 망조의 조짐임엔 틀림이 없다. 소련의 붕괴는 그 계기가 미국풍의 청바지 유행이 이데올로기 와해의 단초였다.

탈북 입국자가 1만명에 이른다. 여성 가운덴 시내 음식점 같은데서 홀 서빙으로 일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홀로 탈북한 사람은 북녘에 두고온 가족과 전화 통화도 한다고 한다. 핸드폰 중계국이 중국에 있는 것은 통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섬뜩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한 얘기지만, 이 또한 북의 망조다. 입국을 못하고 중국이며 러시아며 동남아 등지를 떠도는 탈북자가 수만 명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비록 핵 무기를 만들어 위협이 되긴해도 망해가고 있는 것이다.

남쪽은 -형으로, 북쪽은 +형으로 망해가는 망조에 어느 쪽이 안 망하는가는 어느 쪽이 먼저 망조에 제동을 빨리 거느냐에 달렸다. 생각컨대 북쪽의 제동이 더 어렵다고 보는 것은 인간생활의 본능을 영원히 억압할 순 없기 때문이다.

남과 북이 다 같이 흥하는 길이 있다. 북은 +형으로 체제 전환하고, 남은 -형을 공식 자제하는 것이다. 남쪽은 물론이고 북쪽도 흥하기를 바라는 것은 장차 평화통일의 날이 올 때, 남쪽의 통일비 부담 절감으로 더 좋은 한반도의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서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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