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개헌의 불씨를 열심히 지핀다. 공무원까지 동원한다.(노무현 대통령은) 헌법상의 모든 권한 행사를 가능한한 극대화할 생각인 듯 싶다. 개헌 발의는 기정 사실로 굳었다.
그런데 정작 개헌안은 베일에 싸였다. 2월 임시국회 후 발의하겠다면서도 주물럭거리는 개헌안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알려진 것은 (원 포인트) 한 가지 뿐이다. 이도 그렇다.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를 한 번에 치르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두 선거를 일치시키면 엄청난 경제·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어 (이도) 민생사안”이라는 청와대측 말은 찍어다 붙이는 구실에 불과하다. (현행) 국회의원 총선은 대통령의 중간평가이며, 대통령 선거는 국회의 중간평가다. 뭣보다 선거(투표)는 민주주의의 기본적 수단이다. 선거를 거추장스럽게 여겨선 민주주의를 한다고 할 수 없다.
또 두 선거를 일치시키기 위해 대통령의 5년 단임제를 4년 연임제로 하는 것이 절대적 가치성을 지닌 것은 아니다. 임기 4년의 대통령이 연임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3년만 되면 벌써 다음 선거를 염두에 안둔다 할 수 없다. (안 그렇다면 거짓말이다) 5년 단임과 4년 연임제는 비유의 상대적 가치성을 지녔을 뿐이다.
주요한 것은 연임과 중임의 용어 차이다. 현행 헌법의 대통령 임기조항은 ‘중임할 수 없다’고 돼있다. 연임은 계속해서 같은 자리에 있는 것이고, 중임은 전의 자리로 되돌아 가는 것을 말한다. 가령 중임의 제한이 없으면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임기를 건너뛰어) 다시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설 수가 있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개헌을 말하면서 연임만 입에 담고 중임엔 말이 없다. 청와대 구도의 개헌안에 ‘중임 제한’이 그대로 들어 있는지 뺏는지 모르겠다.
중임 제한이 살아있다 해도 알 수 없는 건 또 있다.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헌법에 고칠 게 많다’고 했다. 하지만 엊그제 가진 지역신문 편집국장·보도국장 청와대 초청 간담회서 나온 말로 미루어선 권력구조 개편은 개헌안에 포함되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고 원 포인트 개헌안만 발의할 것으로도 믿기지 않는다. 다른 또 뭣을 손댈 것인지 궁금하다.
이래서 새삼 말해두는 건 정체성 등을 훼손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토지의 공개념 도입, 기업 문제 같은 게 검토되는 것으로 안다. 토지의 공개념 도입 자체가 부정적인 건 아니지만(난 땅 한 평 없어도) 재산권을 현저히 침해하거나, 시장주의에 반한 기업의 좌편향 규제는 경제질서의 기본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는 것은 영토 조항이다. (대북 관계에 걸림돌이 된다고 보아) 만약에 이를 삭제한다면 건국 이념에 어긋난다.
(노 대통령은) 개헌안 발의를 ‘꽃놀이 패’로 삼는 것 같다. 국회에서 빤히 예견되는 대로 부결이 되어도, 아니면 대역전극 통과의 반전이 있어도 다 좋다는 식의 계산이 깔린 게 분명하다. (그것은) 예의 승부사 기질이다. 한나라당은 대선 흥행이 한창인 판에 열린우리당은 지리멸렬하여 점방도 차리지 못하고 있다. 대선정국을 개헌정국으로 돌려 발목 잡으면서, 열린우리당 (아니면 통합신당)의 전열을 가다듬는 신장개업 시일을 벌려는 것 같다. 이러면서 개헌안이 부결되면 덤터기를 씌울 수 있는 포퓰리즘적 구실을 작업 중인 걸로 관측된다.
개헌을 둔 민중사회의 얘길 들어봤다. “개헌이고 뭐고 일자리나 좀 주쇼” 환경미화원에 응모했다가 낙방했다는 대졸 실업자의 말이다. “장사가 안되지만 빚쟁이 달려들까봐 문도 못닫소” 한 상인의 코방귀다. “설은 다가오고 수금은 안되고 죽을 지경인데…. 개헌은 무슨…” 어느 중소기업인의 하소연이다. “개헌하면 살림 형편이 펴지나요?” 당장 아이들 학원비가 걱정이라는 주부의 비아냥이다. “몰라요…. 처 자식 먹여살리기도 바쁘니까요” 40대 직장인의 푸념이다.
형편이 나은 공무원은 어떤가 싶었다. “나하고는 관련없는 일이니까” (모르겠다는 것은) 6급 공무원의 반응이다. 한 부유층은 “그런 것 하면 뭣해…”하며 들을려고도 않는다.
(대통령은) 개헌은 꼭 해야된다지만 헌법이 덧나 대통령노릇 제대로 못했느냐는 얘기가 세간에 파다하다. 이런 가운데도 (청와대는) 건곤일척의 각오로 개헌의 불씨를 열심히 지핀다. 이상한 것은 개헌의 토론을 거부한다며 불만을 갖는 그들이 개헌안의 정확한 내용은 베일속에 묻어 놓고 있는 사실이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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