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한해는 유난히 길고 지루했던 것 같다. 아니 이렇게 길고 지루하게 느껴진지가 벌써 몇 년째가 되는 것 같다. 왜 그럴까?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우리도 선진국에 들어설 것이라는 희망이 무너지고, 그 희망을 어떻게든 붙잡으려는 국민적 노력이 ‘금 모으기’로 이어지고, IMF로부터 빌려온 돈을 다 갚았다고 할 때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던 것 같은데…, 그로부터 1~2년도 아니고 벌써 4~5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는 아직도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넘을 뚱 말 뚱 한 지점에서 엉거주춤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것도 환율에 기대어….
선진국의 문턱이 그렇게 높은 것인가? 1960년대 중반부터 거듭된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추진해오는 동안,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던 1997년까지 30년 이상의 세월동안 우리는 단 한번도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6% 아래로 내려가 본 적이 없고, 같은 기간동안 단 한번도 미국이나 유럽의 선진국들보다 낮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해 본 적도 없다. IMF 외환위기로 잠시 주춤하기는 했지만 이미 IMF 채무로부터 벗어나는 등, IMF 외환위기도 이제 10년 전의 사건이었는데도 우리는 아직도 선진국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것은 혹시 고성장을 지속적으로 유지해 가기만 하면 언젠가는 저절로 선진국에 이르게 될 것이라거나, 아니면 우리가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선진국이 지금 ‘선진국’으로 불리고 있는 나라들과 다르기 때문일까? 아니다. 그보다는 선진국 진입을 위한 구체적인 전략과 준비가 충분하지도 체계적이지도 못했고, 우리가 가고자 한 선진국을 우리 스스로가 잘 모르거나 구체적으로 설정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수출을 많이 하고, 해외에 나가서까지 일을 해서 돈을 많이 벌어오고, 관광객들이 많이 와서 돈을 쓰게 한다고 해서 우리가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인 부(富)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되지만, 그것만으로 선진국에 이를 수도 없다. 선진국은 경제적 풍요 외에도 다양한 모든 국민들이 모두 사람답게 살수 있는 인권과 정의(正義)로움, 그것을 보장하고 규율하는 법과 제도, 그리고 그러한 사회적 규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국민들의 의식(意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경제적 부를 위해서는 경쟁과 결과가 가장 중요하겠지만, 사람답게 사는 사회를 위해서는 사람(인권)과 더불어 사는 상생(相生)과 정의로운 과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더 이상 늘릴 수 없는 토지는 그의 개인적 소유권을 보장해주지만, 농지는 농업에, 상업지는 상업에, 공장지는 공업에 이용되도록 하고, 아파트나 주택은 주거 목적에 이용되도록 하는 일에 엄격해져야 한다. 임대를 목적으로 소유되고 있는 토지나 주택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국가의 지출 생산비와 생활비 지출은 더 많이 드는 구조가 되기 때문에 그만큼 빈부격차도 커지게 된다. 나아가 이에 따른 사회적 갈등도 서로 이해를 구하고 극복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관리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앞서가는 사람들이, 정부가, 그리고 국가 지도자들이 아무리 “우리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조금만 더 힘을 냅시다!”를 소리 높여 외쳐도,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는 이제 아무런 희망이 없으니 당신들끼리 잘 해보시오!”로 답하고 돌아앉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먹을 것도 필요하고 돈도 필요하지만, 반드시 희망이 있어야 한다. 또한 희망은 모든 사람들에게 앞으로의 계획과 예정을 갖게 해주고, 사람들은 내일에 대한 희망이 있는 한 열심히 살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죽을 때까지 내 삶이 크게 나아질 것 같지 않다거나 그저 막연하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의 숫자가 갈수록 많아지게 된다면 우리가 어떻게 선진국을 논할 수 있겠는가? 희망이 얇아지고 붙들고 있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더는 늘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당장 손에 쥐어지는 몇 푼의 돈이나 쌀, 연탄 등도 유용하지만, 그보다는 더 절실한 것은 ‘희망’과 ‘내일’이다. 우리가 진정 선진국이 되고자 한다면, 이제 사람과 더불어 나누는 상생(相生)과 과정(過程)의 정의(正義)로움을 더 중요한 가치로 받아들이고 가꾸어 나가야 한다.
/이 영 석 한국농업전문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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