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조 히데키는 제2차대전 당시 일본 군벌내각 총리다. 그가 미국의 원자폭탄에 대한 정보를 들은건 1944년 10월이다. 설마했다. 원폭 정보가 일본 첩보기관에 입수된 것도 미국이 고의로 흘린 일종의 심리적 협박일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그의 오판은 이듬해 인류사상 초유의 핵 재앙을 일본 국민에게 안겼다. 1945년 8월6일 히로시마에 이어 11일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 날벼락으로 그 자리에서 숨진 사람만도 40만 명이 넘었다.
비전투원인 무고한 시민을 이처럼 잔인하게 죽인 트루먼 미 행정부의 인도적 죄업이 크다. 무한한 살육이 자행되는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비극적 선택이었다고 트루먼은 후에 회고록에서 밝혔다. 전쟁이란 이런 것이다.
“북한이 핵 무기를 사용했을 때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지만 북한은 절대로 우리를 이길 수 없다” “북한이 이길 수도 없고, 점령도 못하고, 지배도 못하는 전쟁을 왜 일으키겠느냐”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다. 얼마전 뉴질랜드 순방길에 가진 동포간담회 자리서 이렇게 말했다. 이른바 남북 군사력 균형론이다.
좋은 말이다. 말인즉슨 그렇다. 그러나 그의 생각이 오판이 아니기 위해서는 제시돼야 할 몇가지 근거가 누락됐다. 우선 ‘북한은 절대로 우리를 이길 수 없다’는 대목이 한·미 공조인지, 남한 단독 능력인지가 분명치 않다. 한·미연합사 해체를 가져오는 전시작전통제권의 이양을 요구하는 사람이다. 한·미동맹을 무력화 시키면서 북측이 핵 전쟁을 일으켜도 이긴다는 건 객기다.
한국군 장비중 40%가 낡았다는 신문보도가 있었다. 듣기좋게 말하면 구식이고 짓궂게 말하면 고물인 것이다. 북이 핵 전쟁을 일으켜도 한국군 단독으로 이길 수 있다고 한다면 허풍이다. 핵무기 한방이면 끝장이다. ‘대통령이 말한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지만 …’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에 책임을 지는 게 대통령의 소임이다. 국민사회에 자신감을 주기 위한 다소 과장 섞인 말일 지라도 대통령의 말엔 신뢰가 담겨야 한다. 북이 핵을 행사해도 점령되지 않는다는 그의 균형론을 곧이 들을 국민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6·25때 인민군이 서울 외곽에 쳐들어오는데도 “용맹 무쌍한 국군이 38선 일원에서 괴뢰군을 반격하고 있다”던 이승만 대통령의 말이 생각난다.
이런 건 있다. 동족에게, 그것도 줄만큼 주고 있는데 핵 무기를 차마 쓰겠느냐는 마음이다. 핵무기는 어디까지나 생존 수단의 대미 과시용으로 보고자하는 설마하는 마음이다. 그러나 아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강석주 부상은 “핵무기를 폐기하려면 아예 만들지를 않았다”고 말했다. 또 만들었으면 써야할 땐 쓰는 것이 저들의 계산 방법이다. 혁명과업 수행에서 수단을 가리는 것은 부르주아 계급의 반혁명적 인식이라는 것이 이들의 혁명관이다.
노무현 정부는 유엔안보리 결의의 대북제재 이행에 거의 뒷짐 지고 있다. 한·미간 불신의 골이 북 핵실험 이후 더 깊어만 간다. 이런 시기에 나온 북이 핵무기를 가져도 위협이 안된다는 투의 균형론은 핵보유국 인정으로 가도 된다는 것으로 들릴 수가 있다. 김정일 정권에겐 듣기싫은 소리가 아니다. ‘북한이 이길 수 없다’는 건 수식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요즘 남북정상회담 물밑 추진설이 끊임없이 나돈다.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은 ‘전혀 그런 조처도 구상도 없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작금의 정황으로 보면 그같은 부인이 되레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 반증이 된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은 “장관 시절 남북간에 구체적인 협의에 들어간 적이 있다”고 밝혔다. 정상회담 장소 문제까지 논의된 바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 정권의 북핵 유화정책은 결국 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대북 추파로 비친다. 내년 예산에 대북사업용 남북교류협력기금으로 1조원을 편성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6·15 회담을 위해 북에 보낸 5억달러의 약 곱절이 되는 협력기금 1조원은 노무현-김정일 회담을 위한 지참금인 셈이다.
물론 좋다. 한반도 비핵화로 남북간에 평화가 정착된다면 만나도 자주 만나는 게 좋다. 이런데도 의문을 갖는 것은 6·15 정상회담 결과에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저들의 선동선전 수단으로 이용된 가운데 대북 부담만 잔뜩 키웠다. 돌아온 것은 핵무기 개발이다. 내년 봄쯤에 두 정상이 회동을 갖는다 해도 역시 크게 기대될 게 없다. 좋은 말은 간곳없고 그림만 남을 것이다.
북측이 미끼로 삼는 것이 정상회담이다. 정상회담을 못 이긴척 수락하여 노 대통령이 만나러 가는 경우가 있게 되어도 알아둘 것이 있다. 국민사회의 관심은 전같지 않다는 것이다. 이 정권의 지지도 추락을 일거에 회복하면서, 내년 대선 판도를 확 바꿀 수 있는 또 한번의 깜짝쇼가 남북정상회담이라고 여기면 큰 착각이다. 청와대는 도조 히데키 같은 오판속에 아무래도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아니면 의도적인가?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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