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는 정말 NO, NO다

노무현 대통령은 타고난 승부사다. 그를 한창 밀어붙이던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 등 당 지도부의 기세가 그만 한풀 꺾였다. 요즘의 열린우리당 형편은 친노세력이 득세한 것 같다. 당 지도부가 수세에 몰린 형국이다.

노 대통령이 청와대에 있는 것도 아니다. 호주 국빈 방문 등으로 신선놀음을 하고 있다. 떠나면서 남긴 ‘당원에게 드리는 편지’가 그만 친노 당원이 들고 일어서는 기폭제가 됐다. 그의 리모컨 작동으로 몸은 외유 중이지만 청와대에 있을 때보다 더 막강한 화력이 행사됐다. 친노세력은 당헌 당규에 없는 ‘당원대회’란 것을 내일로 잡아 놓기까지 했다. 예정대로 열리면 지도부 성토장이 될 것이다. ‘당원대회’에 참가할 당원은 친노그룹 일색일 것이기 때문이다.

신당파와 친노파가 어차피 한 지붕 식구가 아닌 것은 기정 사실이다. 이미 돌아설 수 없는 강을 건너도 한참 건넜다. 싸우는 것은 명분 챙기기다. 갈라서는 책임을 서로 상대방에게 떠안기려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이 무엇이든 그것은 그들의 정치적 자유다.

그러나 자유스럽지 못한 두 가지가 노 대통령에게 있다. 그 하나는 신당파를 지역당 회귀로 매도하는 것은 그 자신의 모순이다. 노 대통령의 당선은 97%의 호남 몰표가 안겨준 선물이다. 이런 몰표는 선거사상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당선을 제외하고는 전례가 없다. DJ의 정치적 양자로 지역당의 몰표를 승계한 노 대통령이 이제는 ‘무호남 무국가’(無湖南 無國家)를 말하는 DJ와 양자 관계를 재확인하면서 지역당을 말하는 것은 말과 행동이 완전히 다르다.

또 하나의 모순은 당정 분리의 위배다. 겉으로는 이를 내세우며 속으로는 평당원 대통령의 위세로 당 총재나 대표를 겸했던 것보다 더 영향력을 부리고자 했던 것은 과거지사로 친다. 이제 임기가 15개월도 안 남았으면서 정치 개입에 노골적으로 나선 것은 누가 봐도 당정 분리에 어긋난다. 대통령 직분에만 충실해주길 바라는 국민사회의 소망과도 거리가 멀다.

민생은 말로만 챙기고 속은 속빈 강정이다. 이념경제로 오히려 민중의 민생을 저해한다. 대북관게는 핵 무기를 포기케 하자는 것인지, 핵 보유국으로 인정케 하자는 것인지 진의가 아리송하다. 미군용산기지를 이전케 할 것인지, 철군케 할 것인지 정책 추진이 모호하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도 예외가 아니다. FTA를 하자는 것인지, 하는 체만 하는 것인지 헷갈린다. 지금 이 순간에도 FTA 제5차 본협상이 영하 15도의 혹한이 몰아치는 미국 몬테나주 빅스카이리조트에서 열리고 있다. 회의 벽두부터 뼛조각 쇠고기 수출을 받아들여 달라는 미국측 요구를 우리대표단은 완강히 거부했다. 본협상은 여전히 난항이다. 그런데 선전 분투하는 대표단을 맥빠지게 하는 것은 미국측이 아니라 서울에서 날아드는 이상한 소식이라는 게 현지 소식통이다. ‘FTA 협상을 다음 정권에 넘길 것’이라는 말까지 들린다는 것이다. 대표단 가운데선 이 때문에 “나중에 청문회에 서는 것 아니냐?”는 자조가 나오는 지경이라고 한 언론은 전한다.

대통령직은 최고의 정상이다. 대통령을 하고나서 더 해야할 정치는 없다. 이런데도 노 대통령은 여전히 현실 정치에 집념을 버리지 못한다. 세상을 휘저어 한 번 확 바꾸려고 했던 흔적이 역연하다. 그런데 휘젓기는 했지만 작심한대로는 바꾸진 못했다. 이런 과정에서 청와대 만찬의 감격속에 ‘님의 노래’를 부르며 뜻을 같이 했던 일부의 사람까지도 어쩌다가 등을 돌리게 된 것이 분당 상태다.

하지만 타고난 승부사다. 국민의 지지도가 10%를 밑돌고, 열린우리당이 깨지고, 이래서 한나라당이 다음엔 곧 집권할 것처럼 보여도 결코 그게 아닌 다른 계산을 하는 게 분명하다. 지구 저 넘어를 날으는 비행기 안에서 친노 당원의 궐기 소식을 감상하면서 자신의 세상을 이어갈 후계구도 확립의 밑그림을 구상할 것이다. 뭔가 또 한 번의 깜짝 쇼 연출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안 된다. 바둥거려도 살기가 고단하다. 살기가 고단한 것은 세상탓이 아니다. 노무현 탓이다. 이 정권이 가져온 양극화는 민중의 삶을 좌절시켰다. 그가 휘저은 세상은 불확실성의 불안, 총체적 불신 사회를 가져왔다. 민중은 그에게 인내하며 이끌려 가기엔 너무 지쳤다. 더 이상 이끈다면 도대체 가고자 하는데가 어딘지 의심스럽다.

민생을 돌볼 줄 모르고, 민심을 외면해가며 잘하는 정치는 없다. 이런데도 잘 한다고 우긴다. 좌파나 우파가 문제가 아니다. 열린우리당이 어떻게 되든 그게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그 자신이다. 달라질 위인이 아니다. 노무현 정치는 이제 이래서 안 된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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