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과학계의 석학 피에르 부르디외에 따르면 지식인은 문화의 영역에서 권력을 갖고 있는 문화지배권력이라고 한다. 사회 전반에 걸쳐 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담론을 전제로 예술에 적극적으로 접근하고 토론하며 작가와 소통이 활발한 유럽의 한 예를 들어보자.
필자 부부의 작품 콜랙터중 한 분은 70대 중반 독일인으로 현재 파리 남부 작은 고성에서 만년을 보내며 한폭의 그림처럼 살고 있다. 미술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평생 개인 사업을 했던 분이다. 그런데도 학예 예술사를 능가하는 현대미술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필자를 매번 놀라게 한다. 토론할 때도 한없이 깊고 풍부한 문화적 지식과 예술철학을 바탕으로 작품들을 읽고 분석할 줄 알고 때때로 유머를 곁들인 신랄한 비평·풍자와 함께 자신의 느낌을 표현한다. 이 분은 “자신의 멋진 행복을 위해 작품을 구입한다”고 표현한다. 또한 자신이 죽게 되면 자녀들에게 예술소장품을 상속하는 게 아니라 현재 거주하고 있는 남불지역 현대 미술관에 작품을 기증하겠다고 한다.
10여년 전 이 분의 작은 성 앞채를 보수했다. 지역 주민들을 위해 집안에 갤러리를 만든 것이다. 1주일에 이틀, 평소에 굳게 닫힌 대문을 활짝 열고 주민들이 자신의 현대미술 소장품들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일관되게 수십년동안 구입한 몇몇 작가들의 카달로그들은 물론 도록 등도 펴내기도 한다. 자신의 소장품 작가와 수십년동안 깊은 유대를 유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들의 성장을 지켜보며 조건없는 메세나(예술가의 지원활동)를 실천하는 것이다. 이 갤러리에선 1년에 2~3번 기획전시를 여는데 콜랙터로서 작품을 수집한 안목은 탁월하다. 문화지수가 곧 행복지수인 분을 콜랙터로 둔 필자 부부는 행운인셈인데 어느새 필자도 이 분처럼 늙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우리나라 미술계는 부익부 빈익빈으로 양분화된다. 재벌가의 부인이 어느 작가를 선호한다고 하면 미술시장의 패러다임이 그쪽에 맞춰지고 가격이 폭등하는 사례도 있다. 유럽은 작가의 지명도보다 콜랙터 자신이 선호하는 작품을 구입하며 누가 뭐라고 하든 자신이 원하는 작품이 최상이지 대가의 작품이라는 이유만으로 구입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그만큼 자신들만의 탄탄한 안목을 갖고 예술을 읽고 해석하는 문화 풍토가 전반적으로 형성돼 있다.
지난 10월 서울대 미대 60주년 기념 동문작품전에서 496점을 60만원에 균일가로 판매한다고 하자 10일동안 3만여명이 관람했고 작품 7만5천건에 대한 구매신청이 쇄도했다고 한다. 서울 미대측에 따르면 평균 150 대 1의 경쟁률을 보였고 대가 몇분 작품은 3천 대 1 정도의 경쟁이었다고 했다. 한마디로 한국미술계의 로또사건인 셈이다. 이같은 내용을 접한 필자는 여러 생각들이 머리를 스쳤다. 한국에 이처럼 숨은 미술애호가들이 많다면 진심으로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한국의 콜랙터중에 아무리 세계적 대가의 작품이 싼 가격에 나왔어도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사지 않을 배짱 두둑한 사람들은 없는 것일까?
작가나 작품 등에 대한 별다른 이해 없이 작품을 재테크 수단으로 구입한다면 하루 아침에 금전적 이득을 취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문화인으로 순식간에 둔갑할 순 없다. 사회 전반에 걸쳐 진정한 문화를 만들어가는 인식이나 노력 없이 형성된 허울뿐인 반짝문화는 사상누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노 경 화 멀티미디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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