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어법이나 역설변증법은 일종의 자극제다. 그래서 이의 논리 구사엔 한계가 있다. 되풀이 되는 자극에 내성이 생기면 자가당착의 모순에 빠진다. 양치는 ‘늑대소년’의 우화처럼 믿음을 잃는다. “임기를 다 마치지 않은 첫번 째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 ‘늑대소년’을 방불케 한다.
들어도 신물나게 들었다. “대통령직 못해 먹겠다” “국민에게 재신임 묻겠다” “대연정하면 권력 통째로 내놓겠다” “임기단축, 2선 후퇴도 고려한다”는 등등 모두가 비슷한 말들이다. 그 어느 말도 진실이 아니다. 엄살이다. 과장이다. 술수다. 협박이기도 하다. 대통령의 지위에 합당치 않은 수사다. 한 두번도 아니다. 무려 대 여섯 번 째다. 그 자신의 입방아로 자신을 희화화하여 품격을 떨어뜨린다. 이건 대통령의 소박한 이미지가 아니라 무책임한 말 농간이다. 심신 상태를 의심할 지경이다.
대통령의 권한인 인사마다 발목 잡는다고 했다. 더 말할 것 없다. 인사를 개떡같이 사물화하면 비판이 쏟아지는 건 당연하다. 국회의 협조가 잘 안 된다고 한다. 집권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제1당인 처지에 할 소리가 아니다. 협조가 잘 안 되는 것은 정권 내부의 문제다. 이를 이유삼아 국민사회에 대고 진담도 농담도 아닌 헛소릴 하는 것은 독선이다.
정기국회가 끝나면 열린우리당을 탈당할 모양이다. 예견된 일이다. 대통령은 이미 열린우리당 지도부를 버렸고 열린우리당도 대통령을 버렸다. 더 이상 모양새 사나운 버림을 당하기 전에 먼저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는 것이 탈당 카드다. 중립내각이 구성될 것이라지만 의미가 없다. 대통령중심제에서 노무현 정부의 칼자루는 어디까지나 노무현의 것이다.
여러 여론조사 결과는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도가 한자릿 수로 나타났다. 전례가 없는 일이다. 지지도가 땅바닥을 기는 무력감에 엉뚱한 화풀이를 해대는 것이 예의 ‘임기타령’이겠지만 레퍼터리가 유치하다. 걸핏하면 뭘 잘못했는 지를 구체적으로 대라고도 한다. 알고도 그런다면 궤변이고 모르고 그런다면 자질 문제다. 그간의 실정을 열거하자면 100大 죄상이 가능하다.
한 마디로 나라꼴을 온통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것이 있다. “남북 관계만 잘 되면 다른 건 다 깽판나도 된다”고 했다. 당선되고 나서 탈당한 민주당 당내 후보 시절에 했던 말이다. 이인제와 경합했을 때의 일이다. 당시 청와대 주인인 김대중의 적자를 자임하기 위한 몸짓으로 새겨 들었다. 그런데 지금의 나라안 꼴이 딱 들어 맞았다. 어디 성한 데가 없이 도처에 깽판난 투성이다.
그렇다고 남북 관계가 잘 된 것도 아니다. 북녘은 대통령이 안 할 것이라는 미사일을 쏘아댔고, 대통령이 안 할 것이라는 핵 실험도 강행했다. 핵 폐기는 커녕 평양거리는 축제분위기속에 기고만장하다. 포용정책이 되레 포용당했다. 햇볕정책이 불바다정책이 되어 되돌아올 판이다. 남북관계가 잘되고 다른 게 깽판난 것이 아니라, 다른 것도 남북관계도 다 깽판난 꼴이 되고 말았다.
프로레슬링을 보면 이런 경우가 있다. 코너에 몰려 상황이 불리하면 상대에게 죽는 시늉을 다 한다. 그러다가 상대의 공격이 느슨해지면 벼락같이 되몰아친다. ‘임기타령’을 늘어놓을 때마다 코너에 몰린 프로레슬러의 죽는 시늉을 연상했다. 이번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대통령은 그래도 강자다. 지지도가 땅바닥을 기는 ‘늑대소년’처럼 보여도 대통령의 권능은 막중 막강하다.
노 대통령이 이런 권능을 막강한쪽 보다는 막중한쪽으로 행사하면 좋겠지만 걱정이 태산이다. 퇴임후에도 정치 언론투쟁을 하겠다는 분이다. 하물며 재임 중엔 더 말할 게 없다. 대통령이 한마디 던진 ‘임기타령’으로 정치권이 적잖게 술렁거린다. 열린우리당은 신당파의 결별설이 나오는 가운데 친노파의 움직임 또한 심상치 않다. 한나라당은 내년 대선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 세운 채 예의 주시 중이다. 대통령은 자신의 말 한마디로 일어난 응수 타진의 파장을 감상하며 다음 포석을 구상할 것이다.
이래 저래 더 수렁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이 민생이다. 대통령의 정치 신선놀음에 민중의 민생이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있다. 정말 역겨운 게 임기를 빌미 삼는 대통령의 도박이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서 즐겨 써먹는 것 같다. 누가 그만두라고 한 것도 아니다. 내놓으라고 한 것도 아니다.
이런 데도 우정 즐기는 ‘임기타령’에 그 자신이 즐기는 반어법으로 한 마디 하겠다. 정 그러시다면, 그럼 ‘그만 두시지요’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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