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이 배부르다 보니 머슴 배곯은 줄 모른다’고 했습니다. 대통령이 머슴이 아닙니다. 서민층이 머슴입니다. 당신이 우리의 주인이고요. 말씀하는 것 보면 정말 속 터지는 물정모른 소리만 하잖습니까. 나랏 돈으로 먹여주고 재워주는 청와대에 들어가면 그렇게 되는 건가요. 일찍이 진영 땅에서 고생했던 가난은 깡그리 잊고 남은 건 오기 뿐인것 같습니다. 머슴꼴이 된 민중의 원성이 이렇습니다.
하긴, 측근들은 주군의 인덕을 칭송하더군요. “예전에 함께 고생한 사람들과는 콩 한쪽도 나눠먹는 식으로 챙겨주는 의리있는 분”이라고요. 그렇습니까, 정부 산하의 자리라고는 자리마다 코드인사로 채우는 말이 나온 끝에 나온 얘깁니다. 이 정권 들어 새 판으로 잘사는 것은 신기득권층인 ‘노무현 사단’이란 말이 있습니다. 물론 대통령이 사갈시하는 구기득권층도 여전히 잘 삽니다. 죽어나는 것은 중산층에서 몰락한 영세 서민층입니다. 절대 다수의 국민사회 계층이지요.
도대체 뭣 하러 대통령을 하십니까, 국민 잘 살게 하려고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왜 살기가 이토록 고단하기만 합니까. 전임 시절의 IMF 사태를 탓하지 마십시오. IMF 때도 이러진 않았습니다. 이미 실패한 정책 실험은 이제 그만 하시지요. 그 망할 정책 실험 때문에 민중은 초주검 맛입니다. 연못에 던지는 돌멩이에 노상 얻어맞는 개구리꼴입니다. 갈수록 벌어 먹기가 영 신통찮으니까요. 잘 모르시는 모양인데 경제가 지금처럼 나빴던 적은 일찍이 없습니다. 길에 나가면 널린 가게가 잘되어 문을 연다고 생각하시면 착각입니다. 그나마 문 닫으면 빚쟁이들 한테 쫓기기 때문에 닫지못하는 가게가 태반입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요. 전 국토를 투기지역으로 만들다시피해가며 신도시 아파트값만 잔뜩 올린 부동산정책은 어차피 내집 마련을 체념한 돈없는 민중은 상관없다고 쳐도, 사람답게 벌어먹고는 살 수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지나친 좌파적 실험정책이 빚은 병리현상이 아닌가요. 높은 재정 의존도에 기대는 분배는 혈세 낭비입니다. 성장속에 분배로 가는 균형이 참다운 복지사회라고 믿습니다. 이런데 유보율이 600%에 이른다고 합니다. 10대 재벌의 유보율은 710%라지요. 투자가 기피된 수십조의 돈이 겨울잠을 자는 것입니다. 생산자금으로 물꼬를 트지못한 수백조의 부동자금은 부동산 투기에 몰리고 있고요. 기업을 틀어 옥죄는 반기업정서의 조장 때문입니다.
투자가 없는데 어떻게 성장이 있고, 성장이 없는데 어떻게 민생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전국의 지방법원은 법원마다 파산신청 심리로 판사가 격무에 시달리고, 게시판마다 연일 면책공고와 경매공고로 도배질을 합니다. 역대 정권에서 볼 수 없었던 이런 파산 사태가 사태 나는데도 강건너 불구경하듯 하실 겁니까. 수원지법에서만도 올들어 파산자가 지난해보다 3배나 늘었습니다. 전국적으로는 12만명의 파산자가 발생, 이들이 진 빚 10조원 중 상당부분이 금융기관의 손실부담으로 돌아갔습니다. 문제는 실제론 파산상태에 처했으면서 파산신청을 내지않은 잠재파산자가 약 80만명에 이른다는 사실입니다. 경제의 심장인 투자가 멈추다시피 됐기 때문입니다.
국내 기업의 바탕은 시장주의가 토양입니다. 모든 것이 시장의 기능에 의해서 조율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중도도 아닌 좌파적 관치로 기업을 과다규제하다 보니 생소한 토양에서 기업이 뿌리를 더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업, 특히 재벌기업의 못된 버릇을 고치는 덴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경제의 체질을 고치는 것이라면 다릅니다. 시장주의의 본질적 정체성을 뭘로 고친다는 것입니까. 제발 민중의 고달픈 삶을 더 어렵게 만들지 마십시오.
살기가 어렵다 보니 부부싸움이 잦고 부부싸움이 잦다보니 어느 한쪽이 집나가고, 심지어는 부부가 각기 가출해버려 고아 아닌 고아가 생기는 가정이 수두룩합니다. 경제협력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많은 자살자가 속출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전망이 밝은 것도 아닙니다. ‘민이식위천’(民以食爲天)이라는 데 민중은 도대체 어디에 삶의 희망을 걸어야 합니까. 정치는 이념의 수단입니까, 아닙니다. 민생의 수단이 정치일 것입니다. “큰 틀에서 본다”는 말씀을 잘 하시지요. 그래서 크게 보아도, 더 크게 보아도 아무래도 아닙니다. 민중의 불행이지요.
루이 16세가 있었지요. 당신은 그런 분은 아니잖습니까. 그가 빵을 달라고 아우성 치며 시위하는 민중들에게 그랬다지요. “빵이 없으면 고길 먹으면 될 것을…. 바보 같은 것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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