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풍이 매섭다. 삼삼오오 발걸음을 재촉하는 노인들은 가슴을 웅크린다. 가슴은 움츠러 들어도 마음은 활짝 피어난다. 젊은이들이 뭐라고 재잘대며 무리지어 간다. 찬바람 속에 걷기가 짜증난다. 그래도 마음은 마냥 즐겁다.
수원시 장안구 이목동 104의4 계명고등학교 학생들의 등교 장면이다. 배움으로 노소동락하는 노소공학(老少共學)이다. 평생교육의 대안학교다. 젊은시절 배움의 기회를 놓친 노인들, 다른 학교에 다니다가 그만 두게 된 학생들이 정규 고등학교 과정의 배움을 부활하는 학교다. 물론 중학교를 졸업한 뒤 순탄하게 진학한 학생들도 많다. 학생수는 500여명이다.
이달순 교장 선생님은 이렇게 말한다. “평생교육이라니까, 대학에서 흔히 하는 비정규과정의 단기강좌쯤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면서 화가 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평생교육, 대안학교를 잘못 아는 그릇된 일부의 인식이 몹시 불쾌한 듯 했다.
노소공학은 공생의 관계다. 젊은 학생들은 어른들이 갖는 만학(晩學)의 열기에 배움의 시기가 얼마나 중요한 가를 알게 된다. 노인들은 막내나 손주 같은 젊은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는 것을 삶의 재생으로 안다. 이러면서 노인들은 젊은이 사랑, 젊은 학생들은 어른 공경의 인간애를 형성한다.
이 학교엔 문제아가 없다. 더러 다른 학교에선 말썽을 피웠던 학생도 이 학교에서는 양처럼 순한 학생이 된다. 학교에서 인격을 존중해주기 때문이다. 교칙 같은 것도 학생들 입장에서 만들었다. 예컨대 두발은 어떻게 하든 자유다. 불필요한 규제는 최대한 풀어 편안하게 해주면서, 필요한 최소한의 규제는 자율적으로 실천케 한다. “어른들도 변해야 할 것은 변해야 한다”는 게 학교 당국의 말이다.
특강교육은 인격 형성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이수성 전 총리 같은 저명인사의 초청 특강도 있었지만 농구선수인 허재씨 같은 주로 전문인들의 특강이 많다. 이같은 특강은 젊은 학생들의 진로 선택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자랑이 되기도 한다. “야! 너희 학교는 허재가 왔다 갔다며!!” 다른 학교 학생들이 이처럼 부러워 하는 소릴 이 학교 학생들은 곧잘 듣곤 한다.
졸업하면 비교적 취직이 잘된다. 사회의 각종 기술분야와 제휴, 특활로 교육받은 분야엔 거의 취업을 한다. 일종의 산학협동이다. 다른 인문계 고등학교와 마찬가지로 진학 또한 많이 한다. 지난 번엔 20여명이 대학에 갔다.
그중엔 60대 할머니가 있었다. ‘그 나이에 대학은 무슨 대학이냐’고 한다면 뭘 모르는 소리다. 젊어선 가난으로 배우지 못했다. 결혼해서는 남편 뒷바라지, 아이들 뒷바라지 해가며 때론 생활전선에 나서야 했다. 그러면서 아이들 다 시집 장가 보내고 나니 자신은 이미 늙었다. 그 할머니는 배움의 성취욕으로 자신의 새 인생을 되찾고 싶었던 것이고, 그리고 성공해보인 것이다.
오늘은 2007학년도 대입 수능시험을 치르는 날이다. 이 학교에서도 30여명의 학생이 시험을 보았다. 아침엔 빙점의 날씨였다. 비록 추웠지만 마음은 푸근했을 것이다. 학교생활을 즐기며 공부했기 때문이다.
이달순 교장 선생님이 부임한지 꼬박 이태가 된다. 전엔 평생을 대학에 몸담았던 수원대 명예교수다. 올해 일흔세살이다. 계명고등학교에 부임한 걸 교육자로서 마지막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천혜의 기회로 알고 온갖 심혈을 기울인다. 학교 증축을 위해 도교육청이며 시청이며, 또는 대학 등 여기저기 안다닌 데가 없다. “선생님들이 일은 두 배나 한다…”면서 처우를 맘과 같이 못해주는 것을 항상 안타깝게 여긴다. 이러는 가운데 학생들을 위해 갖는 간절한 소망이 마을버스 연장 운행이다.
학교 앞까지의 시내버스 운행은 대로에서 한참 들어왔다가 다시 나가야 하므로 노선이 될 수 없다. 방안은 마을버스 연장 운행이다. 지금의 마을버스 종점에서 학교까지는 걸어서 25~30분 거리이지만 버스로는 약 8분이면 된다. 그런데 이 연장운행이 아무리 애를 써도 안되고 있다. 수원시청에 수차 진정을 했는데도 여전히 ‘불가’ 통보다. ‘민원이 야기될 수 있다’는 게 이유다. 행정명령을 내려서라도 운행케 해야할 일에 무슨 ‘민원 야기’란 건지 도대체 알 수 없다.
답답한 학교측은 마을버스측에 연장운행에 소요되는 연료를 대주겠다고 제의했다. 그러나 이도 아니다. 학교 부근에 500평 부지 규모의 차고를 만들면 운행하겠다는 것이나, 그럴 여력이 있으면 아예 자가용 버스를 사서 운행할 수 있는 것이 학교측 입장이다. 수원시청이나 마을버스측이나 다 사정이 있긴 하겠지만 경직된 행정이 너무 답답하다.
학생들은 오늘도 삭풍이 매서운 등굣길을 25~30분 걸어서 간다. 노인학생들도 걸어서 간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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