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행의 이상을 꼭 실현하기 바랍니다” 그랬더니 대답이 엉뚱하더라는 것이다. “그런 말보다 지금 내가 들어야 하고 들려주고 싶은 민생 얘기가 뭣인지요”하고 되레 묻더라는 것이다.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의 ‘100일민심대장정’을 탐방받아 하루 해를 꼬박 보내며 땀흘려 함께 일했던 한 친지의 전갈이다.
정치권은 새 짝 짓기가 시작됐다. 정치권의 발정기다. 물밑 접촉이 심상치 않다. 열린우리당 전 의장급 원로들은 신당 창당의 정치권 재편을 시도한다. 정대철, 이부영, 김원기씨 등이다. 청와대 후원의 외딴 정자에서 며칠 전 밤에 이런 논의가 있었다. 이들은 신당 창당에 노무현 대통령의 불참을 주문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열린우리당 참여의 뜻을 밝혔다. 결론은 나지 않았다. 모임엔 포도주가 곁들여졌다. 다들 취한 가운데 대통령은 경호원의 부축을 받았을 만큼 대취했다고 한 신문보도는 전했다.
고건 전 국무총리는 팔방미인이다. 안 끼는 데가 없다. 한동안 한나라당과의 교감설이 있더니 열린우리당도 민주당도 기웃거리고 또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당 쪽에서도 속내를 떠보는 눈치다.
그렇다고 열린우리당이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김근태 당 의장이 있고 정동영 전 의장도 외유 중인 독일에서 서둘러 곧 오는 모양이다. 천정배 전 법무도 명함을 내밀 요량인 것 같고 유시민 보건복지는 복병이다.
한나라당은 손 전 지사와 더불어 박근혜 전 대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부동의 주자들이다. 박 전 대표가 독일가서 메르켈 여성총리를 만나고 이 전 시장은 카자흐스탄을 방문했던 그 시각에 손 전 지사는 남원에서 벼베기를 하고 있었다.
여당의 원로 그룹에선 범여권통합을 논의하고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한나라당과 민주당 사이는 한쪽에서 합당 가능성을 제기하는가 하면 또 한 쪽에선 합당 불가의 선 긋기로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이 모두의 짝 짓기 모색은 야합이다. 서로의 정치적 편의에 따른 궁합 찾기다. 명분은 만들기 나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이 가장 절실히 여기는 궁합찾기 과제는 지역감정 해소가 아닌 편승이다. 서로가 서로의 지역기반을 이용하면서 자기네 이익을 챙기려고 하는 동상이몽을 꿈 꾼다.
그렇지만 아니다. 지역감정 편승으로는 평생가도 지역감정 해소가 요원하다. 이 사람들은 또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다. 사회계층간의 갈등을 간과하는 것은 염통 곪는 줄 모르는 처신이다. 차기의 절대적 과제가 지역감정 해소 그리고 계층간의 갈등 해소다. 손학규 전 지사는 이런 지리적 지역감정, 사회적 계층갈등을 해소하는 데 성공할 수 있는 적임자다. 그의 민심대장정은 13개 시·도를 육신의 피땀으로 누볐다. 각계 각층의 사회계층을 허심탄회하게 만나 심적 피부를 맞대는 접촉을 가졌다.
지금의 정치권 새 짝 찾기는 국민에 대해 결국 위에서 만드는 상층구조의 명분이 되겠지만 손 전 지사는 아니다. 아래서 폭발하는 민중적 하층구조의 명분은 다른데선 찾아볼 수 없는 그의 메가톤급 무기다. 그리고 이엔 모든 지역, 모든 계층의 간절한 열망과 불 같은 분노가 농축된 기대가 담길 것이다.
그도 언젠가는 짝 짓기를 하긴 할 것이다. 하지만 순서가 다르다. 상층구조의 실리를 위한 선(先) 짝 짓기는 야합적 수단인 데 비해, 하층구조의 민생을 위한 후(後) 짝 짓기는 정치적 방법이다. 순전히 하층구조를 바탕으로 분출하는 이런 정치적 방법은 정치사상 전례가 없었던 일이다. 손 전 지사는 지금 정치권의 혁명을 위해 도전하는 것 같다.
서두르지도 않고 늦추지도 않는 인내와 도전 정신은 강점이다. ‘100일민심대장정’이 반환점을 돌면서 막바지 들어 현장 고행을 함께하는 자원봉사자며 각계의 격려 방문이 줄을 잇고 있다. 그러나 처음엔 냉담했다. 고독했을 것이다. 혼자 고군분투 했을 때나 방문성시를 이룬 지금이나 한결 같은 자세라는 게 제삼자의 전언이다.
오는 10월7일이면 일단 대단원의 막이 내려진다. ‘100일민심대장정’은 아마 추석 민심 탐방이 마지막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잘은 몰라도 여의도에 나타날 땐 선비 같았던 전의 면모가 아닐 것이다. 다듬어진 야성의 모습을 보일 것 같다. 민중의 바다 가운데서 직접 챙긴 민심을 어떤 정책으로 구현해 보일 지 앞으로가 궁금하다. 체험의 실체는 탁상의 논리보다 진실에 접근하는 탄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그는 지리적 지역갈등, 사회적 계층갈등 해소에 체험적으로 터득한 사회통합의 기수라는 사실이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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