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이야기’의 발단이 기묘하다. “내 집권기에 발생한 것은 성인오락실과 상품권 문제 뿐인데 청와대가 직접 다룰 성격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바다이야기’로 온 나라가 떠들썩 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이런 말이 있고 나서다. 검찰 수사도, 감사원 감사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그런 말을 할 때까지만도 “대통령 역시 알긴 아는 모양이구나…” 이렇게만 여겼다. 도박장화한 성인오락실의 폐해는 한 해, 두 해의 일이 아닌 사회적 고질이다. 언론에서도 수차 거론했다. 이런데도 정부는 까닥도 하지 않았다. ‘바다이야기’는 더 번창하기만 했다.
지금 생각하면 대통령은 민초들이 짐작하는 것 이상으로 ‘바다이야기’의 내막을 더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바다이야기’는 곪을대로 곪아 어차피 터질 지경이 됐던 모양이다.
청와대는 무작정 ‘게이트’가 아니라고만 하지 말고, 아니면 아는대로 국민에게 공개하는 것이 순리인 데도 고소만 일삼는다. “허위사실을 적시하여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고소 이야기를 하는 김에 한 마디 더 한다. ‘노사모’출신의 아무개 얘기는 그 계통에선 파다한 구문이다. 그 분 역시 명예훼손을 걸어 고소한 것 까진 그럴 수 있다해도 고소 당한 상대가 ‘성명 불상의 네티즌’인 것은 실소를 자아낸다.
성인오락실이란 이름의 도박이 어떻게 공공연하게 자행될 수 있었던 가는 평소의 사회적 의문이었다. 상품권으로 포장된 노름돈이 노골적으로 거래될 수 있었던 것 역시 사회적 의혹의 대상이었다. 사실상의 이런 도박장이 손쉽게 신고만으로 개설될 수 있었던 것 또한 사회적 지탄을 면치 못했다.
이에 영상등급을 내주고 상품권 발행을 하도록 해준 것이 이 정부다. 문화관광부는 영상물등급위원회에, 영상물등급위원회는 문화관광부에 서로 심의기준을 완화해 사행성을 조장시켰다고 우긴다. 이는 그렇다 쳐도 문제의 상품권은 문화관광부 처사가 심히 괴이하다. 상품권 지정 권한을 민간업체에 떠맡기면서 상품권 발행 자격마저 지나치게 완화했다. 법적 근거없이 재량권의 한계를 일탈했다.
피해는 도박 중독증 환자와 그 가정만이 아니다. 오락실 업주들은 비록 눈총을 받긴 했지만 공권이 허용한 업종을 생업으로 삼았다. ‘바다이야기’ 소동으로 장사가 안 된다. 상품권을 없애면 경품으로 상품권이 나오는 오락기도 쓸모가 없어진다. 상품권 발행사에 현금 상환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데도 이게 잘 안 된다. 민중사회에 이래저래 입힌 피해가 실로 막심하다.
정책실패라고 한다. 성인오락이 정책이랄 수 있는 건지 잘 알 수 없다. 설령 정책이라도 그렇다. 정책이 빗나가면 고치는 것이 정책이다. 그런데 고치기는 커녕 더 덧나게 만들었다.
IMF가 생각난다. 환란을 가져온 정책 결함의 책임을 강 아무개 경제부총리에 지워 법정에 세웠으나 대법원은 무죄를 확정지었다. ‘정책 실패엔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본 대법원의 판례를 생각해 정책 실패로 돌리는 지 모르겠다.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청와대는 정치공세니, 과장보도니하며 자꾸만 대수롭지 않은 일로 돌린다. 그러한 신경 과민의 대응이 되레 이상하게 보인다. ‘바다이야기’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상품권 발행은 굉장한 이권이다. ‘도박공화국’으로 만든 경위를 단순하게 안보는 민중 정서는 지극히 정상이다. 정책 실패로 보아 달라는 요구는 무리다. 치밀한 로비, 어마 어마한 뒷배가 없고서는 불가하다고 보는 것이 ‘바다이야기’다.
1972년 미국의 워터 게이트는 민주당 선거본부 사무실에 기도한 공화당 사람의 도청사건이다. 닉슨이 시킨 것은 아니다. 도청도 성공하지 못하고 미수에 그쳤다. 이런데도 닉슨이 사임한 것은 미수에 그친 도청 때문이 아니다. 뒤늦게 알고도 부인한 것이 도덕성의 치명적 결함으로 지탄됐기 때문이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 대국민사과를 진솔하게 했더라면 그토록 악화되진 않았을 것이다.
여우굴보다 깊고 이상한 ‘바다이야기’ 속내를 아직은 알지 못한다. 청와대가 거짓말을 한다는 증거도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분명한 것은 정책 실패든 권력 협잡이든 그냥 넘어갈 순 없다는 점이다. ‘바다이야기’ 괴담의 출연진이 어디까지 번질 것인지를 민중은 지켜본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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