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지사, ‘정치와 행정’

절대주의시대엔 정치와 행정이 분화되지 않았다. 분화된 건 근대민주주의 들어서다. 행정이 ‘행정학’의 새로운 학문 분야로 독립한 것은 근대 이후인 현대다. 이 과정에서 정치와 행정의 관계에 이원론이 일원론으로 갔다가 신이원론이 나오는 등 학설이 분분하다.

경기도지사 자리는 지방정치의 정상이면서 중앙정치와 연계되는 다구도 역학 관계를 가졌다. 김문수 신임 경기도지사 역시 이에 예외일 수는 없다. 하지만 도지사 자리가 정치인인 것 만은 아니다. 행정인이다. 지방행정, 그도 지방자치행정의 수장이다. 정치가이면서 행정가의 자질을 요구받는 것이 광역단체장이다.

김문수 경기도지사에게 지켜보고자 하는 게 있다. 도정은 지방행정의 요인이 대부분이다. 지방정치의 요인은 거의 없다. 지방행정과 중앙정치는 거리가 멀다. 김 지사가 도청 직원들에게 행여라도 정치행위를 강요하는 것은 금기사항이다. 지방행정은 행정행위를 하는 기관이며 행정행위는 어디까지나 법규에 의존한다.

새삼 이런 얘길 하는 것은 만일의 노파심 때문이다. 삶의 상당 부분을 들국화처럼 살았다. 들국화도 잡초라면 잡초다. 1996년 4월 제15대 국회에 입성하면서 비로소 제도권의 전환을 가졌다. 당시 부천 소사구 선거구는 일대 격전지였다. 노동운동가 김문수는 떠오른 별 박지원을 우여곡절 끝에 눌렀다. 누구보다 안타깝게 여긴 것은 김대중이다. “지원이가 떨어졌어? 됐어야 하는 건데…”하고 수차 되뇌었다.

이젠 3선 국회의원 출신의 도백이다. ‘특위’ 위원으로 날카로운 송곳활동을 했다. 텔레비전 토론에서는 정곡을 찌르는 달변으로 명성을 떨쳤다. 정치인으로서는 명성이나 행정경험은 제로다. 행정을 우격다짐의 정치로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그리해서 일이 된다면 그래도 괜찮다. 일은 되지 않으면서 도청 직원들만 피곤하게 만든다. 기관장이 바뀌면 다시 새롭게 출발하고자 하는 긴장을 갖는 것이 공무원 사회다. 시동이 걸린 엔진을 신명나게 돌아가도록 하면 제풀에 가속도가 붙는다. 반대로 엔진을 꺼뜨려서는 좀처럼 불꽃을 되살리기가 어렵다.

이미 그간 알려진 일들을 여기에 중복해 일일이 들 것은 없다. 김 지사의 신임 청사진은 포괄적으로 보아 의욕적이다. 견해를 같이 한다. 문제는 현행 법규에 걸린 게 많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사안별로 전문기구의 싱크 탱크를 둔 것은 잘 했다. 난해한 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면 좋은 줄을 몰라서가 아니고 고양이 목에 어떻게 방울을 다느냐다. 해법은 논리개발과 접근법을 새롭게 찾아내는 데 있다. 김 지사가 매사에 직접 행정을 할 것 까진 없다. 도청 직원들의 행정능률이 극대화하도록 신바람 나게만 해주면 된다. 중앙정치에 때로는 방패가 되고 때로는 창이 되는 것은 김 지사의 몫이다.

취임사에서 밝힌 ‘분서갱유론’은 충격이다. ‘수도권정비계획법’을 비롯한 이 정부의 규제 강화를 겨냥한 ‘분서갱유’ 비판은 사실적 비유가 아닌 의제적 비유는 능히 가능하다. 김 지사의 정치적 역량과 행정적 역량은 별개다.

한고조 유방이 대장군 한신과 나눈 대화다. “짐은 몇 만 군사를 통솔하는 장수의 자격이 있소” “잘 해야 십만 정도일 것입니다.” “대장군은 어떠하오” “소장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그럼, 왜 과인 휘하에 있는거요?” “폐하는 장수로 거느리는 병사는 적지만 장수는 많이 거느릴수록 잘 거느리는 장수의 장수인 것이 소장과 다릅니다.” ‘십팔사략’이 전하는 고사다.

경기도정은 중첩된 파란을 예고한다. 이를 돌파하는 내공은 도청 공무원들이 행정으로 받쳐준다. 김 지사의 중앙정치에 대한 장악력이 이 내공에 의해 좌우된다. 소리만 요란한 빈수레 정치보단 소리없이 속이 꽉 차는 행정을 더 원하지만 행정의 한계를 극복해내는 것이 또한 정치다. 행정과 정칠 구분할 줄 알면서 속찬 정치를 적절히 구사해내는 것이 김문수 도정의 요체다.

현대 행정학에서 정치와 행정의 관계를 신이원론으로 보는 것은 법규의 집행과 법규의 제정으로 나눈 개념의 차이가 근원이다. 김문수 도지사가 가야할 길은 이의 균형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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