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다. 서둘지도 멈추지도 않는다. 내일 이임식을 앞둔 경기도지사 공식 일정이 오늘 하루도 빽빽하다. 온화하다. 담소에 상대를 가리지 않는다. 청년시절 구로공단 위장취업 때 사귄 근로자 중엔 지금도 소주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세상 물정 얘기를 나누는 옛 친구가 있다. 작가 황석영씨의 자전소설 ‘들판에서 마을을 보았네’의 줄거리에 이런 대목이 있다. 그 당시 함께 위장취업하여 한 방에서 지낸 손학규는 곧 경찰에 깡그리 붙잡힐 판인데도 손에서 책을 떼지 않아 ‘너는 영판 서생’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서생은 그러나 안위를 초월한 뚝심이 있었고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도 서생이긴 마찬가지지만 강단은 여전하다. 작년이던가, 이해찬 국무총리의 수도권문제회의 주재 방식에 독선을 지적하며 자릴 박차고 일어난 불참 선언을 끝내 지켰다.
사람을 부릴 줄 안다. 일을 신명나게 하도록 하고, 신명나게 하는 것은 최선을 다 하는 효율의 극대화다. 일의 초점은 하나도 열도 민생행정으로 모아진다. ‘10대 정책분야 51개 역점사업’은 경기도지사 취임 1년 성과와 함께 발표된 ‘경기비전 2006’이다. 이제 임기 4년을 마치는 시점에서 보는 ‘경기비전 2006’의 등급은 확실히 ‘수’는 아니다. 미진한 분야도 있고 미흡한 사업도 많다. 하지만 아무리 인색하게 보아도 ‘우’는 분명하다. 이런 가운데 그래도 더 돋보이는 것은 인간 능력의 한계가 완전함은 이를 수 없는데도 있겠지만, 최선을 다 했다고 보는 평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출판기념회에 공전의 성황을 이룬 ‘손학규와 찍새 딱새’는 수원 인계동 동양문고에서 하루에 300권 이상이 팔리기도 했다. 일본 미국 유럽 등지를 이웃 집 드나들듯이 뛰면서 이룩한 외자유치는 손꼽히는 업적 중 하나다. 책 이름은 원래가 조선일보 양상훈 정치부장이 쓴 지난 3월 29일자 ‘손학규와 경기도의 찍새·딱새들’로, 찍새가 외국기업을 찍어 데려오면 딱새가 행정지원을 제공하는 일사불란한 팀워크를 지칭한 것이다. 칼럼엔 ‘경기도 외자유치 100건 140억달러·일자리 3만개 손지사·경기도 공무원들 땀과 눈물에 박수를’ 이런 멘트형 부제가 달렸다.
이젠 곧 경기도지사가 아니다. 대권을 향한 백의종군으로 ‘100일 민심 대장정’이 시작된다. 농어촌 불우시설 영세공장 등 사회 각계 각층의 저변을 몸으로 터득하는 민심의 바다속에 뛰어든다. 철저한 실사구시의 중용지도(中庸之道) 추구는 시대가 요구하는 차기 면모와 일치한다고 보아 장점이다. 중용은 기회주의적 무임승차가 아니다. 주변의 모순을 최대한 수용하는 사회통합의 구심점이다. 민생을 위한 국익, 국익을 통한 민생의 ‘민생행정’ 제일주의에서 ‘민생정치’ 제일주의로 용틀임하는 웅지를 펼쳐 보인다.
사회주의는 방법상 실패했지만 뜻은 유효하고 자본주의는 방법상 성공했지만 흠을 무효화해야 할 이 시대에서 중용지도는 새 치도(治道)의 길이다. 국토분단에 이어 내부분열이 심하다. 돌아보면 사회양극화 해소는 분배도 분배지만 성장을 통해 서민층 소득을 끌어올리고, 영호남 갈등 같은 고질이나 우심한 세대간의 마찰을 푸는 등 이밖에도 산적한 현안이 절실하다. 이의 가장 정확한 중심 위치에 서야할 차기가 누구여야 하는가를 생각해 본다. 남북관계도 예컨대 평양 근교에 조성한 ‘경기도합작농장’은 새로운 경협의 모델인 것이다.
보편적 가치의 추구로 특수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조개가 모래를 머금어 진주를 만드는 것과 같지만, 사람들은 껍질속에 든 진주를 알지 못한다. 빌 클린턴 지사가 미합중국 대통령에 도전한 아칸소주는 남부의 작은 지방정부다. 이에 비하면 경기도는 서울 못지않은 웅도다. 정치인 손학규 도지사의 강점은 좋은 친구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클린턴이다. ‘아칸소사단’과 같은 ‘경기사단’의 대장정이 요구된다.
한나라당 당내 후보 선출이 약 1년 남았다. 답답할 정도로 고지식함을 고집하는 그를 도와야 할 사람들은 주변이다. 가야할 길은 산 넘어 산이다. 당내 후보를 거머쥐는 것도 가시밭 길이지만 당 후보에 그쳐서도 안 된다. 범야권 단일화를 이룩하는 길 역시 험난하다. 서둘지도, 멈추지도 않는 중용의 황소 여유와 뚝심을 지켜보고자 한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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