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 지방선거가 끝나기 바쁘게 (전 총리) 고건이 고개를 내들었다. 치명상을 입은 열린우리당은 초상집같은 공기속에 전열 정비로 설왕설래한다. 기대 이상의 압승을 거둔 한나라당은 다음달 전당대회를 앞두고 각 계파가 표정관리 하느라고 바쁘다. 이런 가운데 그동안 꽁무니를 뺐다가 한판 씨름의 지방선거가 반여권 정서로 끝나자 새 명함을 내민 고건의 7월 ‘희망한국국민연대’ 발족설은 일종의 대세 무임 승차다. 내년 대선 엔진의 예열 시동은 고건 만은 아니다. 열린우리당 (전 의장) 정동영, (전 최고위원) 김근태는 여전히 후보군이다. 키워드도 가지가지다. 고건의 국민연대는 연대 대상으로 열린우리당·민주당·국민중심당·한나라당을 꼽고, 정동영은 ‘민주평화개혁세력통합’을 표방, 민주당과 외곽세력연대를, 김근태는 ‘범민주양심세력대연합’을 내걸며 민주당·고건·시민사회측과의 연대를 모색하고 있다.
(민주당 대표) 한화갑은 후보군이 아니지만 ‘중도개혁세력통합연대’의 킹 메이커로 고건·열린우리당·국민중심당과의 연대를 점치고 있다. (보건복지부 장관) 유시민 또한 복병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총애가 각별하다. 완전개혁주의를 표방하는 개혁 순혈세력과의 연대가 가능하다.
한나라당의 (당대표) 박근혜, (서울시장) 이명박, (경기도지사) 손학규는 세상이 다 아는 당내 후보군의 빅3이다. 박근혜는 지방선거 압승의 견인력, 이명박은 청계천 효험, 손학규는 민생투자에 의한 국부 기여의 이미지가 강하다. 이들 세 명은 차이는 있지만 크게 보아 ‘중도실용주의 개혁’으로 분류될 수 있다.
인물이 많은 것인지, 대통령 감이 그토록 많은 건지 아무튼 대통령하겠다는 사람들이 참 많다. 그러나 딱 한 마디로 나누면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다. 보수도 꼴통 우파가 있어 문제고, 진보도 급진 좌파가 있어 문제이긴 하지만 보수와 진보·진보와 보수의 구도로 압축된다.
그런데 대선 구도는 이런 양대 진영이 아니고 두 진영 인물들이 제각기 다 잘 나서인지 난립이다. 대선 예비 구도만이 아니고 본선 구도도 그래왔고 내년 역시 그럴 전망이다. 묘한 건 진보진영의 비단일화로 인한 당선권 잠식보다는 보수진영의 비단일화로 인한 당선권 잠식이 치명적이라는 사실이다. 가령 진보진영의 대선 출마자가 둘이면 누가 되든 큰 영향이 없지만 보수진영의 출마자가 둘이면 공멸하는 것이 그간 보아온 경험법칙이다. 내년 대선에서는 보수진영의 출마가 둘도 아니고 그 이상 나올 전망이다. 이래선 백전백패로 진보세력에 정권을 또 헌납한다.
지방선거에서 진보진영의 득표가 위축됐다 하여 진보세력이 위축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유사시엔 이내 뭉칠만큼 응집력이 강하다. 그러나 보수진영의 응집력은 거의 모래와 같다. 진보세력이 지방선거 대패에도 불구하고 재집권을 낙관하는 연유가 이런 보수진영의 속성을 잘 아는 데도 있다.
보수진영이 더 이상 이 정권과 같은 실험적 농락에서 벗어나 안정적 개혁으로 나라 경영을 하고자 한다면 뭉쳐야 한다. 물론 한나라당이 당내 경선결과에 불복하는 돌출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나라당만이 그런다 해서 되는 건 아니다. 민주당, 국민중심당 등이 보수정당이 맞다면 함께 연대하여야 한다. 고건의 ‘희망한국국민연대’도 마찬가지다.
중용(中庸)은 기회주의적 중간파가 아니다. 주변의 기(氣)와 세(勢)와 의(意)를 다 수용하는 것이 중용의 진수다. 한나라당과 당내 후보는 범야권 단일화를 이룩할만한 중용의 도(道)를 유효화 할 수 있어야 한다. 쇠꼬리보단 닭대가리 노릇을 더 좋아했던 보수정당 지도자들은 이제 그런 치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보수정당끼리의 대합당이 있으면 더욱 좋다. 대보수정당의 신당안에 한나라파, 민주파, 국민중심파, 국민연대파, 기타 파벌이 있을 때 있을지라도 하나의 정당으로 뭉치는 것이 정치 발전이다. 보수정당만이 아니다. 열린우리당도 어정쩡한 모임의 형태를 더 지속하기 보단 환골탈태한 진보정당의 제 모습을 보여 합당할 당이 있으면 합당하여야 한다.
보수·진보, 진보·보수의 양대정당 체제로 가는 것이 진정한 정계개편인 것이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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