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5·31 지방선거와 ‘건달들’

건달이 국회의원은 할 수 있다. 아는 건 쥐뿔도 없으면서 행세하는 건달 정치꾼이 있다. 안건 심의는 상임위 처리에 맡기면 된다. 본회의 표결은 당론에 따라가면 된다. 이런 건달 정치꾼일수록 처세는 능하다. 이래도 티가 잘 안 나는 것이 국회의원의 의정생활이다.

대통령이 유식하지 않아도 대통령노릇을 할 수 있다. 실례로 전두환 장군을 박식하다 할 순 없다. 대통령 자릴 차고 앉다시피 했다. 그랬어도 그의 재임 중에 ‘물가가 가장 안정됐다’는 말이 주부들 입에서 나왔다. 물가안정엔 3저(底) 효과의 행운이 따른 건 사실이지만, 그보다 사람을 잘 부린 작용이 크다. 전문 분야마다 전문가들에게 책임을 지워 맡겼던 것이 그의 인재 관리 요령이었다. 어설프게 아는 지식을 밑천삼아 물덤벙 술덤벙 아는 체 하며, 간섭 안 하는 데가 없는 것 보단 낫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은 다르다. 무식한 자치단체장은 시·도지사나 시장·구청장·군수를 제대로 할 수 없고, 무식한 시·도의원이나 시·구·군의원은 지방의원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예를 든 국회의원이 크게 보아 지방의원보다 막중하긴 하다. 그런 큰 물에서 놀기 때문에 한편 건달노릇을 해도 티가 잘 안나 묻혀 지나간다. 그러나 지방의원은 아니다. 건달의원은 티가 난다. 지방의정은 주민생활과 피부를 맞대기 때문이다. 지방선거가 총선보다 중요하다고 보는 역설이 이래서 성립된다.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뜨거운 열기가 벌써부터 감지된다. 네번 째 실시되는 지방선거다. 이제는 지방자치가 겉무늬만이 아니고 실속있게 제대로 뿌릴 내려야 할 때가 됐다. 그간의 시행착오는 지방자치의 경험이 낮았던 탓으로 치자, 하지만 이젠 그같은 경험을 살려 제대로 가는 지방자치를 해야 된다.

특히 이번 지방선거는 엄청난 지역주민의 세부담이 든다. 선거를 치르는 데 드는 기본 행정비용이 2천681억원으로 2002년의 1천320억원 보다 2배 가량 증가했지만 이건 약과다. 선관위가 자치단체에서 돈을 받아 집행할 선거비 보전 비용이 3천545억원으로 2002년의 644억원보다 5.5배나 불어날 전망이다. 선거비 보전은 선거공영제에 따른 입후보자의 유인물 등 선거비용을 자치단체가 보태주는 것으로, 유효 투표수 15% 이상의 득표자에게만 전액 보전해주던 것을 10% 이상 15% 미만 득표자에게도 절반을 보전해주도록 지난해 6월에 법이 고쳐져 부담이 더 늘게 됐다. 결국 올 지방선거의 주민부담은 6천226억원으로 경기도내 주민부담은 무려 1천160억3천300만원에 이른다.

이만이 아니다. 더 엄청난 주민부담은 지방의원의 월급 돈이다. 의정활동비 등 외에 지급되는 유급제에 따라 지방의원들은 부단체장급 대우를 요구한다. 부단체장 연봉이면 광역 6천800만원, 기초 5천800만원이다. 행정구조조정이다 뭐다하여 하급 공무원들을 감원한 게 언젠 데, 부단체장급까진 몰라도 상당한 월급을 줄 지방의원을 무더기로 두게되는 것이 이번 지방선거다.

이토록 비싸게 치르는 5·31 지방선거에 건달들을 뽑을 수는 없다. 유권자들의 책임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 때맞춰 한국정치학회장을 지낸 김영래 아주대 교수 등이 주축이 된 ‘5·31 매니페스토선거추진본부’가 어제 서울 세종회관에서 출범한 것은 매우 주목된다. 매니페스토(Manifesto)운동은 정당이나 후보자의 선거공약을 목표·우선순위·기간·공정·예산 등에 수치적 검증과 평가를 가해 정책선거를 유도하는 것으로, 1997년 영국의 블레어 노동당 정권이 시작한 이후 2003년 일본의 지방선거에 파급됐다. 국내에 이 운동이 본격화되면 ‘믿거나 말거나, 되든 말든’식의 무책임한 전시성 이벤트 ‘빌공자’ 공약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단체장 다운 단체장을 뽑기 위해서는 우선 행정과 법률을 잘 알고 강단력과 포용력있는 리더십을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 지방의원은 되도록이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다방면으로 많이 진출하는 것이 좋다. 이런 사람들 같으면 적어도 건달은 아니다.

5·31 지방선거에선 아는 것 없이 허세나 부리고 트러블을 일삼으며 자기 욕심만 챙기는 건달꾼들은 발을 못 붙이도록 옥석을 가려야 한다. 이는 막대한 지방자치비를 부담하는 유권자들의 권리이며 의무다.

/임 양 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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