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의 화두를 쉽게 풀어본다. 학원법인을 만들어 학교를 세우는 데 들인 수 천억원은 출연자 개인의 돈이다. 그렇다 하여 그 학교가 출연한 설립자 개인의 것은 아니지만, 설립자의 손에서 벗어나게 된다면 누가 학교를 세우겠는가. 사학은 육영의 공익사업이 지, 선심성 자선사업은 아니다. 학원법인의 이사진을 가급적 혈족으로 구성하는 것은 인지상정상 당연하다. 학원법인이 아닌 일반의 사단법인도 이사진의 상당 수를 혈족으로 채우는 것이 통례다. 그러지 않으면 설립자인 이사장이 이사회의 결의로 주객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학원법인은 더 말할 게 없다. 땡전 한 푼 안낸 개방형 이사가 수 천억원을 들인 학교 설립자를 괴롭힐 수 있는 것이 개정된 사학법이다. 개방형 이사의 수가 문제가 아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흙탕물을 다 일으킨다’고 했다. 박힌 돌이 굴러온 돌에 밀려나는 최악의 사태가 있을 수 있다. 설립자의 입장이 아닌 교육의 수요자인 학생들 입장에서도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학원법인의 안정을 해쳐서는 학교의 안정이 있을 수 없다. 학원의 불안은 그 피해가 학생들에게 곧바로 돌아간다.
사학의 비리를 용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학의 비리는 척결돼야 하고 학원법인의 운영은 투명해야 한다. 그러나 쇠뿔을 고치려다가 소를 다치게 만드는 사학법 개정은 방법이 될 수 없다. 국내 교육의 70%를 맡고 있는 사학이 일제히 반발하자 이 정부는 전가의 보도를 꺼내 들었다. 비종교계 사학비리 전면수사 선언의 초강수는 협박이다. 이 으름장이 먹혀들어 갔다고 보는 청와대측 수법은 교활하다. 사학비리의 개연성을 저인망식으로 훑어 그물에 걸리는 구체적 혐의를 잡아보겠다는 생각은 인권 침해다. 이도 건들면 벌집이 될 것 같은 종교계 사학은 제외하고 일반 사학을 대상으로 한다고 했다. 인심 쓸 것은 쓰면서, 이 또한 사학을 종교계 사학·비종교계 사학으로 편가르는 분열 책동이다.
그런데 이 정권 권력의 핵심부에서 새로운 고민이 생긴 것으로 들린다. 건곤일척의 사학법 파동이 오는 5·31 지방선거의 변수가 된 것은 흥미롭다. 김진표 교육부총리의 열린우리당 경기도지사 후보는 부동의 기정사실로 알려졌었다. 이것이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으로 바뀔 공산이 높아졌다. 이에 신중한 검토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학법 파동의 주역이 김 부총리다. 그의 악역이 얼마나 본인의 진의였는 진 알 수 없다. 경제부 총리였을 때다. 주택거래 신고제인 가를 두고 허가제론이 제기됐다. 그러자 그는 “한 걸음 더 나가면 사회주의”라며 반대했다. 개정된 사학법의 자율권 침해 역시 일종의 사회주의식 발상이다. 김 교육부총리의 악역이 그의 신념이었는 지, 아니면 정부 조직상 수장으로서 책임에 충실했는 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사학법 파동의 악역이 경기도지사 후보로 도움이 안되는 마이너스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정권 핵심부의 저울질에도 고민이 있는 것으로 안다. 진 장관이 삼성과 인연이 있는 정보통신 분야의 아무리 권위자라 하여도 경남 의령 사람이다. 수원 사람으로 경기도 토박이 출신의 김 부총리 보다 득표력이 더 하다고 볼 수 없는 것이 대타의 난점인 것 같다.
진대제의 김진표 대타 검토는 장관직 사퇴의 법정 시일이 3월 말까지이므로 여유는 있다. 유동적 상황의 관찰이 크게 작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학법 파동의 추이가 함수 관계일 것 같다. 야구에서 대타의 적시 기용은 감독의 능력이긴 하다. 그러나 기용된 대타가 반드시 히트를 날리는 것은 아니다. 비정규 멤버보단 정규 멤버로 가는 것이 순리일 때가 많다.
주목되는 것은 이 정권이 사학법 파동에 부담을 갖는 사실이다. 사립학교법 개정은 그간 내세운 이른바 개혁입법의 하나다. 소신을 가져야 할 개혁입법에 부담을 갖는 것은 앞뒤가 안맞는다. 그러지 않고 신념을 갖는다면 굳이 대타를 검토하여 피해갈 이유가 없다. 그동안 악역을 맡은 사람을 내세우는 것이 오히려 떳떳하다. 사학법 개정에 국민의 심판을 묻는 상징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임 양 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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