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버리고’ ‘베풀기’의 반비례 공식

아파트에 새로 입주하면 공간이 넓어 보인다. 몇 평이라도 평수를 넓혀 옮길 때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그 여유로움도 한두해 살다보면 금세 답답함으로 바뀐다. 같은 공간인데도 왜 시간이 지날수록 좁아 보이는 걸까. 살림을 하다보면 이런저런 물건이 생기게 마련이고, 당장은 쓸모가 없더라도 언젠가 필요하겠지 하는 생각에 모아 두는 게 교과서적 살림태도다. ‘알뜰함’은 프로주부의 기본덕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알뜰함’에는 ‘바지런함’이 따라 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집안은 어느새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 차 버린다. 정작 필요할 때면 어디 있는지 찾지도 못하고 집안만 지저분해 진다.

진짜 프로 아줌마의 공간활용 지혜는 ‘버리기’다. 버리기는 손해가 아니라 남는 장사다. 우선 버린만큼 공간이 늘어난다. 미련을 털면 더불어 머리마저 맑아진다. 당장은 아까워보이지만 없어도 살아가는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버린 물건은 누구에겐가 정작 필요한 사람에게 넘겨지면 제 가치를 발휘할 수도 있다.

생활 속에는 버리는 만큼 남는 또 다른 삶의 반비례공식이 있다. 바로 ‘베풀기’다. 공간을 넓히기 위해 ‘버리기’는 못쓰는 것들의 위치이동이지만 ‘베풀기’는 가장 귀중한 것들의 위치이동이다. 내가 가진 가장 귀중한 것들-시간과 노동과 마음과 금전 등은 쉽사리 남을 위해 건네기 힘들다. 이것들은 인생의 목표이기도 하고, 이것 때문에 목숨을 걸기도 한다. 자식을 위해서도 쉽사리 내놓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우리 주위엔 나의 귀중한 시간을 할애하고 육체적 피곤함을 마다하지 않으며 따뜻한 미소를 건네고 주머니를 털어 이웃의 힘겨움과 외로움, 배고픔 등을 채우고 메워주는데 기꺼이 나서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희망2006이웃사랑 캠페인’이 진행중이다. 이웃돕기성금 기탁자들을 보면 과거 관이 추진할 때와는 달리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성금이 매년 늘어 나는 추세다. 강요나 분위기 때문이 아닌 본인의 순수한 뜻에 의한 성금이 그만큼 늘고 있는 것이다.

‘베풀기’는 우선 그 고마움을 받는 쪽에서 보면 액면가 이상의 효력을 발휘한다. 가진 쪽에서 건넨 1만원은 받는 사람에겐 그 몇 배 힘을 발휘한다. 당장의 배고픔과 고통을 이겨내는 징검다리가 되기도 하지만, 금전에 실린 따뜻한 마음의 온기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용기와 희망이 되기도 한다. 베풀고 나누는 선행은 실제 주는 쪽에도 적잖은 반대급부가 돌아간다. 기업의 사회공헌도는 기업평가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 기업의 이미지는 광고비를 들여 일방적 홍보를 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다.

대학입시에서 사회봉사활동이 당락을 결정하기도 하며 평소의 선행은 법을 어길 경우 법정에서 선처를 받는데 결정적인 근거가 되기도 한다. 누군가의 서랍에 헌혈증서가 있는 것만 봐도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는 달라보인다. 더 중요한 건 그러한 외부의 평가보다 스스로 느끼는 만족감이다. 베풀어본 사람들은 안다. 남에게 받을 때보다 줄 때의 기쁨이 더 크다는 사실을.

베풂의 참맛을 아는 사람들은 남이 권하지 않아도 즐긴다. 모처럼의 주말에 가족들과 시설에서 봉사의 땀을 흘리며 출·퇴근 때마다 톨게이트 모금함에 웃으면서 동전을 던지고, 전년도 ‘사랑의 열매’가 서랍에 있지만 올겨울 새로운 열매를 가슴에 달며….

베풀기에서 오는 가슴 뿌듯함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값진 것이다. 베품과 나눔의 1-1은 0이 아니라 무한대다.

/박상용 경기도공동모금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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