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선 교단…
“아이들이 있어 행복”
“도와주신 분들이 덤으로 주신 새 인생, 밝은 웃음과 열심히 사는 것이 그분들에게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백혈병이라는 병마와 1년2개월간 혈액형마저 바뀌는 치열한 싸움 끝에 다시 환한 웃음을 지으며 희망과 함께 교단으로 돌아와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화성 정남초 전명기 교사(45).
지난해 5월 본보를 통해 안타까운 백혈병 투병기가 알려진 전교사는 지난해 4월21일 평소 왠지모를 무기력증에 시달리다 별 생각 없이 받은 검사에서 급성골수염 백혈병 판정을 받고 그 길로 병원에 입원, 병마와의 싸움을 시작했다.
부인과 열살난 쌍둥이 두 딸과 18평 임대아파트에서 생활하면서 늘 학생들과 함께 하는 것이 천직이라 여기며 살아 온 전교사에 소리없이 다가온 병마는 청천벽력이었다.
고집스러울만큼 교단에만 충실해 오던 전교사와 가족들에게 1억여원이 넘는 수술비와 입원비는 감당할 수 없는 고통으로 다가왔고 전교사는 하루에도 수없이 ‘포기’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했다.
전교사는 “당시 집안 사정이 좋은 편이 아닌 상태에서 보험을 들은 것도 없어 모든 비용을 자체적으로 해결해야했다”며 “18평짜리 임대 아파트마저 병원비로 내놓으려는 아내를 보며 차리리 ‘내가 포기하는 것이 아내와 딸들의 고통을 줄이는 길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루에도 수십번씩 했다”고 말했다.
전교사의 투병생활 고통은 금전적인 것만이 아니었다.
면역력의 급격한 저하로 인한 바이러스 감염 위험때문에 가족과 떨어져 병원 무균실에서 홀로 생활하면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쌍둥이 두 딸들이 눈에 밟혀 하루에도 수십번씩 병원을 뛰쳐나가고 싶었고 4번의 피를 말리는 항암치료는 머리가 빠지는 것은 물론, 독한 항암 치료약으로 정신마저 혼미해지면서 스스로 대·소변 마저 처리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더욱이 완치의 유일한 길인 골수 이식을 위해 전교사에게 적합한 골수를 찾았지만 국내 67만명의 골수기증자는 물론이고 미국과 일본 등에서도 적합한 골수를 찾을수 없게 되면서 전교사의 투병은 무모한 싸움으로 변해갔다.
이처럼 고통스러운 투병생활을 해오던 전교사에게 다시 한 번 새 삶의 희망을 안겨준 것은 다름 아닌 전교사가 졸업한 전주교대 동기들을 주축으로한 주위 동료 교사들과 정남초 학생·교사들, 그밖에 교육청 관계자, 안타까운 사정을 듣고 찾아온 전·의경들이었다.
전교사의 골수이식 수술(조혈모 세포 이식)비와 입원비 등으로 1억3천여만원의 비용이 들어간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주위에 알려지면서 전교사가 근무하던 화성 정남초 학생 및 교직원이 700여만원을 모금하고 전주교대 동문들이 5천300여만원 등 총 1억5천여만원의 성금을 모아 전교사의 투병생활에 희망을 보탠 것.
이밖에도 전교사의 치료과정에 많은 양의 수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된 인천지방경찰청 기동대와 서울 서대문경찰청 기동대원들이 수혈이 필요할때마다 자신들의 휴식시간까지 반납한 채 기꺼이 자신들의 피를 제공했다.
이러한 도움은 끝내 이름을 밝히지 않은 27살 청년의 골수 기증까지 이어져 지난해 12월28일 골수이식 수술을 하게 되었다.
수술 당시 골수 기증자와의 적합 판정에서 95%밖에 일치하지 않아 위험할 수 있다는 의사의 소견이 있었지만 전교사의 새 생명에 대한 의지는 확고했다.
전 교사의 이러한 의지가 결실을 맺으면서 지난 1월19일 마침내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병원생활을 마감했고 퇴원 이후에도 골수생착 과정에서 무기력증, 근육통, 면역억제제 복용에 의한 구토 등의 어려움을 겪었으나 전 교사는 마침내 지난 7월4일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았던 교단에 서게됐다.
전교사 돕기에 앞장서 온 이광로 교사(파주 심학초)는 “전 교사의 완치는 내 부모·형제가 나은 것처럼 기쁜 일”이라며 “전교사의 완치는 주위에 하루하루 고통으로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세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 교사는 “골수 이식수술 당시 아내에게 유언까지 남기고 수술방에 들어갈만큼 굳은 각오를 했다”며 “골수 이식으로 혈액형마저 AB형에서 A형으로 바뀌는 등 지금의 새 삶은 주위 많은 분들이 주신 생명인 만큼 이 사회에 필요한 사람으로 열심히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전 교사는 또 “새해를 맞아 고통받고 있는 주위의 모든 분들이 나의 새로운 인생을 바라보면서 단 한순간이라도 용기와 희망의 웃음을 지었으면 좋겠다”며 환한게 웃었다.
/최용진기자 comnet71@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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