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황 교수 사태’ 나의 시말서

서울대조사위원회가 황우석 교수의 2005년 논문을 조작으로 발표한 지난 23일, 많은 국민이 슬퍼했다. “오늘은 슬픈 날”이라며 모두들 침통해 했다. 이런 가운데 나는 한 가지를 더 해 ‘부끄러운 날’이기도 했다. 벌써 일주일이 됐지만 그 날의 부끄러움을 잊을 수가 없다. 줄기세포 연구를 돕기 위해 자신의 난자를 제공하겠다고 흔쾌히 나선 천명이 넘는 여성들, 그가 입원한 서울대병원 현관에서 층층이 오르는 입원실까지 진달래 꽃길을 깔아, 빨리 건강한 몸으로 즈려 밟고 퇴원하기를 기원했던 천사같은 여성들에게 정말 부끄러웠다. 어린이들에게 잘못 심어준 환상을 빼앗은 것도 부끄러웠다. 신문 독자들에게 말 바꾸기가 부끄러웠다.

MBC ‘PD수첩’ 팀에게도 부끄러웠다. ‘PD수첩’은 진실 규명에 기여했다. 취재상의 윤리결함은 분명한 흠결이지만 기여도가 훨씬 더 높다. 이런 것을 두고 나는 ‘PD수첩’ 팀을 공격했다. 힐난했다. 그 중엔 지금도 유효한 대목이 있긴 하지만 대체로 많은 과오를 범했다.

진실을 모른 채 독자를 오도했다. 그의 연구발표를 두둔했다. 조작을 비호했다. 국민적 영웅의 허상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내 신문기자 평생에 씻을 수 없는 최대의 오보를 했다. 지방언론의 한 모퉁이에 있는 나의 오보가 얼마나 영향을 끼쳤는 진 모르겠다. 하지만 책임을 모면할 수는 없다. 생각하면 ‘미생지신’(尾生之信)이었다. ‘사기’(史記)등에 나오는 노(魯) 나라 미생이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한 여인을 믿고 강물이 불어나는 데도 그대로 기다리다가 익사했다는 맹신(盲信)을 빗댄 고사처럼 옳고 그름을 따지 지 못했다.

황 교술 믿었던 게 잘못이라는 핑계로 언론이 오보의 책임을 모면할 순 없다. 생명공학이 좀 어려운가, ‘체세포 주입’ ‘난자핵 제거’ ‘계대배양’ ‘줄기세포 주입’ 등 독자가 모를 용어를 나도 잘 이해 못하면서 오도한 책임은 분명히 이를 보도한 언론에 있다. 따지고 보면 황 교수를 그렇게 만든 것도 언론이다. 학문 분야의 경쟁적 뻥튀기 보도에 그치지 않고, 전설적 입신의 이인(異人)으로 다투어 과장 보도를 일삼았다. 줄기세포주를 속인 논문 조작은 그러지 않고 사실대로 했어도 자랑할만 했다고 생각한다. 이런데도 그는 2개의 줄기세포주를 11개로 조작했다. 조만간 밝혀질 DNA검사 결과가 환자 맞춤형이 맞을 지라도 실용화 단계는 멀었다. 이런데 언론은 당장 뭣이 되는 것처럼 난치병 환자들에게 신기루를 만들어 보였다. 언론의 조작에 강박감을 느껴 서둘러 가져온 것이 결국 논문 조작으로 보는 관점이 가능하다.

언론도 물론 알고 그런 것은 아니다. 어느 나라든 언론은 때때로 시대적 영웅을 만든다. 가슴 답답한 이 시대에서 ‘황우석 뉴스’는 신선한 암울의 돌파구였다. 문제는 언론의 과포장을 반성하면서 학문에는 왕도가 없는 사실을 곱씹어 본다. BC 3세기경의 그리스 수학자 유클리드는 ‘유클리드 기하학’을 정립한 기하학의 원조다. 이런 그가 헬레니즘문화를 꽃피운 이집트의 프롤레마이오스 1세의 수학 개인 교습을 했다. 이 때 배움에 어려움을 느낀 프롤레마이오스 1세가 빨리 배우는 방법을 묻자 유클리드가 대답한 게 “학문에는 왕도가 없다”라는 말이었다. 언론은 황 교수에게 왕도를 독촉했고 끝내는 버렸다.

그래도 그만한 생명공학자가 국내에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 하다. 하지만 만신창이의 거짓말쟁이로 전락한 그가 재기의 용기를 가질 수 있을는 지는 심히 의문이다. 언론은 책임을 정부에 돌리고 청와대로 돌린다. 서울대에도 문책의 화살을 쏘아 댄다. 물론 책임이 없지 않다. 황 교수도 책임이 있고, 청와대도·정부도·서울대도 다 응분의 책임은 있다. 그렇다 하여 언론이 책임이 없다할 순 없다. ‘황우석 사태’에 관한한 언론은 면책이 허용되는 성역이 아니다. 진실 규명의 계기가 언론이 아닌 ‘PD저널리즘’인 사실을 언론은 참으로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

나는 내가 쓴 사설이나 칼럼이나 단평 등을 모아 오려 붙인다. 자료로 쓰기 위해서다. 그런데 뒤적거려 보기가 싫어졌다. 황 교수에 관한 글을 보면 내가 나 자신에게 부끄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억지로 보는 것은 스스로를 고문하고자 해서다. ‘황교수 사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기복이 또 있을 것이다. 이런 가운데 갖는 그날의 많은 국민들 슬픔속에서, 뼈저리게 느낀 나의 부끄러움을 고백하는 것은 이 해를 보내면서 용서를 구하기 위해서다.

/임 양 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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