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법칙은 거의가 불변성이다. 거의란 더러 이변이 있었기 때문이다. 빙하시대를 예로 든다. 지구의 북반구 대부분을 빙하로 뒤덮었던 때가 70만~80만년전에 있었다. 인류가 생긴 이후에도 홍적세(洪積世)까지 네 번이나 있었다. 그러나 자연법칙의 대부분은 불변성이다. 지구가 생긴 지 약 35억년이 되도록 밤과 낮은 ‘나노’ 수치의 한 점 차이 없이 약 2조2천775억일을 한 해를 주기삼아 되풀이하며 지속해 왔다.
인간사의 인간법칙은 자연법칙의 반대다. 불변성보다 가변성이 대부분이다. 아마 100년 전에 가슴살이 드러나는 드레스나 허벅지살이 보이는 미니 스커트를 입고 다녔으면 “미쳤다”고 했을 것이다. 지금은 그러한 옷차림이 당당하다. 오히려 가슴살이나 허벅지살을 눈 여겨보는 남성은 치한(癡漢)으로 몰린다. 이는 가치관의 변화다. 인간사는 이처럼 변하지 않는 게 거의 없다. 시류의 변화가 가치관의 변화를 가져온다. 그리고 시류의 변화는 곧 인간생활의 발달과정이다. 인간생활은 정체를 거부하므로 이에 수반하는 발달의 과정은 필수적이다.
정치도 변화를 수반하는 인간사의 한 생활 분야다. 생동하는 정치는 제자리 걸음이나 뒷걸음이 아니고 앞으로 나아간다. 변화를 두려워해서는 발전이 있을 수 없다. 이 정권은 많은 변화를 시도한다. 진보주의가 보수주의의 과오를 상당히 일깨워 준 사실은 시인되어야 한다. 그러나 참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이 나라의 건국을 폄훼하는 근대적 민족·민중사관의 교과서는 용인될 수 없다.
대한민국이 광복 직후 미 군정하에서 이승만 등의 정치세력에 의해 건국된 것은 맞다. 마찬가지로 북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역시 소련 군정하에 김일성 등의 정치세력에 의해 건국된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데도 교육부의 고등학교 ‘근현대사 교수 학습자료’는 남쪽은 장기집권 및 독재정치·강압통치 및 부정부패 등 부정적으로 일관되고, 북쪽은 사회주의 경제건설·주체사상 옹위확립 등 긍정적으로 일관된 것은 어느 나라 교과인 지 알 수 없다. 무려 57년에 걸친 부자 세습정치, 6·25전쟁 발발 책임, 인민들의 기아 실상은 묵과됐다. 이런 반남찬북(反南讚北)으로 편향된 근현대사를 고등학생들에게 가르치라는 정부가 대한민국의 정부라 할 수 있는 지 의아스럽다.
대한민국이 있어 그 헌법에 의해 선출된 노무현 정권이 나라의 정체성을 이토록 왜곡한다면 국기를 부정하는 그 저의를 이해할 수 없다. 일본과 중국의 역사 교과서 왜곡을 연상케하는 자국의 국내 교과서 왜곡은 국가적 범죄다.
비록 분단의 태생적 불행은 있었으나 자유민주주의를 천명한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제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의 법통을 외면하는 정부의 ‘근현대사 교수 학습자료’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제국주의 침략자들을 반대하며 조국의 광복과 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실현하기 위한 영광스런 혁명투쟁에서 이룩한 빛나는 전통을 이어받은 혁명적인 정권이다’(북 헌법 2조)라는 말과 어떻게 다른 것인 지 묻는다.
노무현 대통령은 신임 사무관 특강에서 진보와 보수의 구도를 언급하면서 “극단주의자가 있다”며 극단주의의 폐해를 지적했다. 열린우리당 정세균 의장은 노 대통령 당선 3주년 워크숍에서 “과격한 구 좌파 세력이나 소수 기득권 세력만을 위한 수구 우파 세력은 역사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나 정 의장의 말은 되들려주고 싶을 만큼 적절하다. 되들려주고 싶은 것은 말과 행동이 다르기 때문이다. 흔히 친북(親北) 세력을 좌경시하지만 여기선 그렇게 안 본다. 이쪽 주관을 갖고 대하는 친북은 있어야 한다. 문제는 친북을 위장하여 저쪽 주관에 동조하는 찬북(讚北) 세력이다. 찬북세력의 ‘근현대사 교수 학습자료’는 당장 바로 잡아야 한다.
동족상잔의 전쟁은 한 번으로 끝내야 한다. 평화통일은 절대적이다. 언젠가는 평화통일 방안의 마지막 단계로 대한민국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없애고(흡수통일이 아닌)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는 일이 있다 하여도 정체(政體)는 자유민주주의여야 하는 것은 불변의 상궤다. 대한민국 건국의 자유민주주의 이상은 이래서 훼손될 수 없는 영원한 시류다. 변하는 게 인간사이지만 이만은 변할 수 없는 자연법적 법칙이다. 이를 수호하기 위해선 편의적 궤변으로 카멜레온의 보호색을 띠고 있는 ‘반남찬북’세력을 주시해야 한다. 사회주의(김일성주의) 이념은 이미 검증된 인간사회의 빙하기를 가져오는 시대적 유물이기 때문이다.
/임 양 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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