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PD는 기자가 아니다

“내가 연예인인가? 벗기긴 뭘 벗겨!” 아닌게 아니라 그는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끌었다. 1983년이다. 그해 생긴 KBS ‘추적60분’은 같은해 6월에 있었던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와 함께 황금프로그램의 쌍벽을 이루었다.

교양제작국의 ‘추적60분’ 신완수PD는 전인미답의 이 영역에 개척의 깃발을 꽂은 기수다. 키는 작달만하지만 다부진 몸매에 안경알속으로 반짝이는 두 눈은 매섭다. 어느 신문에서 그의 모든 것을 알아보는 특집 기사 제목 중 ‘… 벗긴다’는 대목에 그는 심기가 뒤틀렸던 것이다.

그러나 첫회의 ‘추적60분-한국의 할리우드 충무로 영화가’ 방영은 실패했다. 국내 영화사를 조명하려 했던 의도와는 달리 잡담 투성이었다. ‘추적60분’이 성공한 것은 ‘택시 왜 불결한가?’ ‘낚시터 뭣을 낚는가’ ‘한국판 몬도가네식’ ‘심야지대 퇴폐의 현장’ ‘가짜 고급시계, 가짜 녹용’ 같은 고발성 사회프로그램으로 포맷을 바꾸면서 안방극장의 시선을 끌기 시작했다. 현장 취재 땐 사람은 맞아도 카메라는 빼돌릴 퇴로를 미리 탐색해 놓는가 하면, 취재진이 길가다가 괴한에게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국내 TV방송의 PD저널리즘 효시를 당시 서울신문에서 방송을 담당하며 이렇게 목격한 그때의 교양제작국 안국정 부장은 지금 SBS 사장으로 가 있다.

PD(Producer Director)는 엄연히 구분된 프로듀서와 디렉터를 합성한 국내 방송 특유의 조어다. 기획자(Producer)와 연출자(Director)는 입안과 현장의 소임이 각기 다른데도 1인2역을 PD란 이름으로 수행하는 것이 한국 방송의 관행이다. 얼마전부터 프로듀서의 기능으로 CP(Chief Producer) 제도를 도입하긴 했지만 PD의 2중 역할은 그래도 여전하다.

고발성 사회프로그램 중심으로 시작된 PD저널리즘이 이른바 시사성 포맷으로 둔갑돼 정치색채를 강하게 풍기기 시작한 것은 진보, 즉 좌파세력이 득세한 이 정권 들어서다.

KBS스페셜 ‘한국사회를 말한다’ ‘송두율 교수의 경계도시’ ‘돌아온 망명객’ 등을 예로 들 수가 있다. 심지어 MBC는 판결을 며칠 앞두어 대법원이 방송에 신중을 기해달라는 사안까지 우정 방영했다. PD수첩은 공정성과 형평성 위반으로 선거방송심의위의 경고를 받은 적이 있다. 이같은 좌파 시각의 시사물은 거의가 사물에 같은 부류 사람들만의 인터뷰 등으로 일관하여 당시의 시대를 체험하지 못한 시청자들은 그것이 진실인 것처럼 믿도록 오도하곤 했다. 끼리끼리의 합작이므로 ‘추적60분’처럼 고발성 사회프로그램 제작과 같은 위험의 요인이 있는 것도 아니다.

MBC ‘PD수첩’의 황 교수팀 취재원 협박은 그같은 안일한 제작 관행이 맘 먹은대로 통하지 않은데서 비롯된 오만이다. 제작 폐습이 잘 들어맞지 않은데서 나온 이성의 상실이다. PD의 2중 개념이 빚은 폐단이기도 하다.

초기의 PD저널리즘이라 할 ‘추적60분’은 다큐멘터리의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지금의 시사물은 아니다. 다큐멘터리는 인위적인 것을 배제한다. 먼저 실재한 현상을 다 취재하고나서 뒤에 구성한다. ‘추적60분’은 그렇게 만들었다. 지금의 PD저널리즘은 이와 반대다. ‘결론을 미리 내려놓고 제작을 그에 꿰맞춘다’는 비판에 자유로울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이런건 제작이기 보다는 조작이다.

PD도 문화세력의 축을 형성한다. PD저널리즘이 그렇다 해서 언론일 수는 없다. 언제부턴가 시사물 PD를 언론인으로 보는 시각이 생긴 것은 오류다. 영국 독일 미국 등 서구사회도 그렇고 일본도 그렇다. 이들 나라의 방송에서 시사물을 만들려면 기자와 PD격인 디렉터가 공동작업을 한다. 기자는 취재를 하고 디렉터는 취재의 효과를 살리는 영상을 연출한다.

문제의 PD수첩팀은 MBC 교양제작국 소속이다. MBC 보도본부 소속이 아니다. PD수첩이 방영되고 나서 처음 말썽이 시작됐을 때 내부적으로 말이 없지 않았던 것 같다. MBC 뉴스데스크의 지원사격이 인색하다는 게 교양제작국측에서 나온 불만이었던 것으로 들렸다. 그러나 보도본부의 입장에서는 같은 회사 일이라고 무조건 두둔하고 나서기에 난감한 건 당연하다. PD 독과점의 미검증물을 검증기능이 중첩된 보도본부측이 확인하기엔 어려운 일이다.

분화된 사회에서 미분화된 생각을 가지면 으레 낭패를 겪기 십상이다. MBC의 명예를 추락시킨 PD수첩 역시 이러하다. 비단 MBC만이 아니다. 방송계의 성찰의 계기가 돼야 한다. PD저널리즘의 원조인 ‘추적60분’은 원래 이런 게 아니었다.

/임 양 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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