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색깔에 묻힌 말 ‘동무’

“나라를 잘못 다스리는 건 원래 아는 게 모자라서 그런다지만…” “그런다지만?” “나라를 왜 이북에 말이야…” “설마 그럴려구?” “설마가 아니야, 노골적으로 편 드는 막말을 해도 비호해 주잖아!” “그도 자유라고 하니까” “역적이나 하는 말을 해도 괜찮으면, 그럼 여기는 뭐야?” “그런 말하면 케케묵은 색깔론이란 말 듣는다!” “이 사람아 나도 유신 때 감옥에 갔던 사람이야…” 어느 좌석에서 있었던 60대의 대화 내용이다.

색깔이라니까 생각나는 게 있다. 동무다. 이 동무란 말이 색깔속에 폭 파묻혔다. 국어대사전은 동무란 말을 ‘늘 친하게 어울리는 사람·친구·벗’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동무나 친구나 벗은 다 같은 뜻이긴 하지만 맛이 다르다. 친구는 ‘친할친 자’(親)에 ‘옛구 자’(舊)로 된 한문 용어다. 이에 비해 동무나 벗은 순수한 우리말이다. 뜻은 같지만 맛이 달라 쓰임새 역시 다르다. 어린이들 간에는 원래 동무라고 했고, 벗이란 말은 어른들 사이에 많이 쓰였다. 어린이들이 벗이라고 하거나 어른들이 동무라고 하는 건 생소했다.

그런데 지금은 꼬마 아이 동무도 친구라 하고 어른 벗도 친구라고 한다. 어른 벗끼리 친구라고 하는 것은 괜찮지만 동무 또래의 어린이까지 친구라는 것은 좀 어폐가 있다. 원래의 맛이 아니다. 속담에 ‘동무 따라 강남간다’고 했지 ‘친구 따라…’라고는 안 했다. ‘어깨동무’라야 자연스럽다. ‘어깨친구’는 영 어색하다. 이은상 작사 박태준 작곡으로 ‘동무생각’이란 가곡이 있다. ‘(전략)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 백합같은 내 동무야(후략)’ 만약 여기서 ‘내 동무야’를 ‘내 친구야’로 부른다면 노래의 맛깔스럼이 쉰다.

이 좋은 동무란 원래의 우리 말이 꺼리어 쓰길 피하게 된 것은 한국전쟁 이후다. 낙동강 전선만 빼놓고 남쪽이 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세상이 됐을 때다. 인민위원회, 보위대, 청년동맹, 부녀동맹 등 할 것 없이 토착 좌익 진영은 남하한 인민군대 따라 서로의 호칭을 무조건 ‘동무’로 통했다. 하급자는 가령 상대가 위원장이면 ‘위원장 동무’ 상급자는 하급자에게 ‘(이름)아무개 동무’라고 했다. 또래 끼리는 ‘김 동무’ ‘박 동무’라고 불렀다. 동무란 호칭이 이렇게 퍼지다 보니 더러는 형제간도 동무라고 했다. 심지어 북에서는 사상이 그만큼 확고하다는 비유로 ‘아바이 동무’라고 까지 한다는 말이 나왔다. 동무라는 호칭은 한국전쟁이 있기 전에는 남로당이 지리산 피아골 등에서 맹활약 한 빨치산(반란군)끼린 썼다. 그랬던 게 공산주의 세상이 되다보니 붉은 완장을 두른 사람들만이 아니고, 포의(布衣)도 붉은 완장을 상대할 때는 “동무…동무” 소릴 할 지경이 돼 버렸다.

동지도 아닌 동무란 말을 그토록 호칭에 즐겨쓴 데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이른바 계급사회가 아닌 평등을 강조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한 가지동 자’(同)에 ‘힘쓸무 자’(務)의 뜻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북녘은 광복 직후 한문을 없애고 한글만을 썼던 것을 생각하면 후자보다는 전자의 설이 유력하다. 아무튼 그러고 나서는 동무란 말이 사라졌다. 당시의 보수정권에서 금지령을 내렸던 것도 아니다. 전쟁의 참화를 겪고 난 시대상은 반공(反共)도 아닌 멸공(滅共) 일색이었다. 그같은 사회 분위기가 붉은 완장을 연상케하는 동무란 말을 절로 추방한 것이다. 그러나 동무는 원래의 우리 말이다. 불행한 시대적 배경을 극복해야 한다. 어린이에게는 친구란 것보다 동무라는 것이 더 정서적이다. 이념의 격랑속에 실종되어 반세기동안 묻힌 동무란 말을 살리는 것이 진정한 이념의 퇴색화다. 돌아보면 동무란 말 말고도 이런 류의 잔해가 또 있을 것이다.

보수도 변화를 거듭한다. 멸공, 반공에서 승공(勝共)으로 점차 둔화됐다. 이젠 협공(協共)도 비정치 분야에선 인정한다. 그러나 합공(合共)은 아니다. 그들 60대들의 대화는 이렇게 이어졌다. “만경대 정신 이어받아 통일위업 이룩하자는 거나, 6·25는 북한의 지도부가 시도한 통일내전이라는 말은 저쪽 대변인이나 하는 말이지, 그게 무슨 학문이야?” “문제는 그런 말을 하고도 큰 소릴 치는 강(아무개)교수란 사람 보다는 그토록 간을 키워주는 정부에 있는거야! 마치 카멜레온 같아요. 색깔을 드러내면서 색깔론이라며 되레 맞받아 치거든, 살다보니 정말 별 꼴을 다 봐!”

생각이 다른 좌·우의 이념은 자유민주주의 서구사회에도 있다. 이런 데도 우리의 처지가 서구사회와는 달리 불신의 골이 깊은 것은 전쟁을 일으켰던 북녘이 여전히 자유민주주의 사회가 아닌 데 있다. 남쪽은 지금 분단국가에 겹친 분열국가의 혼란에 빠졌다. 이 정권이 위로부터의 혁명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수의 민중 정서를 좌파로 보는 것은 오산이다.

말하자면 예의 동무란 말을 살리는 수위의 사회복원이 적절하다.

/임 양 은 주필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