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멀리 산에는 노랗고 빨간 옷들을 새로 갈아 입고 한껏 하늘거리는 자태가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어느덧 가을의 중턱에서 우리는 자연의 반복이 주는 어질머리를 경험한다.
반복이 주는 자연의 아름다움은 거울의 반영 같은 동일함에서만 비롯되는 게 아니다. 뭐라고 규정할 수 없는 차이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즉 눈으로는 식별할 수 없는 다름을 우리가 느끼기 때문이다. 같지만 다른, 또는 다르지만 같은 사물의 놀이에 우리는 반복에 대한 권태나 냉소가 아니라 자연이 주는 미묘한 행복을 맛본다.
자연 앞에선 이처럼 냉소주의가 설 자리가 없지만 우리의 선거는 아직까지 즐거운 축제가 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 탓을 ‘우스운 정치판’이나 ‘다 똑같이 부패한 것 같은 정치인’에게만 돌려서는 해결이 안 된다. 바로 우리 안의 냉소주의가 중요한 원인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다 똑같거나 차이가 있어도 그게 그것이라고 생각하는 냉소주의는 판단에 대한 유보라는 신중함을 자랑한다.
그러나 물이냐 수증기냐는 겨우 1℃ 차이다. 더 깊이 들어가면 물과 수증기를 구분하는 문턱은 규정할 수 없이 미세한 한 점일뿐이다. 그 미묘한 차이가 세상의 수 많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후보자나 정당에 대한 많은 자료들이 우리 선거관리위원회의 정치포탈사이트를 비롯한 사이버공간에 가득 쌓여 있다. 후보자, 그의 배우자 및 직계 존비속의 납세, 병역, 범죄경력 등 신상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클릭만 하면 볼 수 있도록 정리돼 있으며, 선관위가 유권자들에게 직접 송부하는 후보자 정보공개자료도 있다.
물론 자료들이 우리가 원하는 모든 걸 다 말해 줄 수는 없다. 후보자의 검증이나 정당의 정책에 대한 판단은 우리 나름의 해석 기준이나 정치적 판단력에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객관적이지만 그만큼 틈이 많은 자료를 의미있게 읽는 수준이나 방식은 사람마다 각각 다르다. 누군가는 후보자들의 개인적 신상정보를 사소하게 생각할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는 그것을 정치적 판단의 유일한 잣대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정당이나 정책에서도 자신의 관점에 따라 중요하게 보이는 것들이 있고, 도덕성이나 자질에 대한 판단에서도 유권자 각자 우선시하는 항목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자질이나 도덕성, 정책 등이 다들 엇비슷하다고 생각해 정도의 차이를 무시하는 것이다.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수도 있는 작은 차이를 무시하는 이런 태도를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주어진 자료를 꼼꼼히 살피는 것, 그래서 후보자간 또는 정책간의 차이를 확인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진정한 주권자이려면 반드시 갖춰야 할 자세가 아닐까. 그래서 우리의 미래가 ‘더 나빠지지 않게’ 필요한 최소한의 의무를 다 했을 때, 우리의 정치 혐오도 정당화되지 않을까.
에셔의 ‘그리는 손’이란 그림을 보면 한 손이 다른 손을 동시에 그리면서 서로의 존재를 만들어 내고 있다. 손의 윤회라고도 할 수 있는 이 그림은 우리와 후보자의 관계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우리는 선거라는 집중된 한 순간에 그들을 선택하고 우리 손으로 뽑은 그들은 우리 삶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막대한 영향을 지속적으로 미치고 있다.
26일은 우리의 주권을 행사하는 날이다. 물론 우리의 주권은 몇년에 한번씩 투표하거나 하지 않거나 해서 끝나는 건 아니다. 주권의 힘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선거에서 우리는 주권자다운 면모를 확실히 보여 줘야 한다. 우리와 우리 자녀의 미래를 위해 우리 유권자도 최소한의 것이라도 준비해 투표일을 맞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자.
/김 이 수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 공보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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