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두 분 할머니의 청년 의식

흔히 하는 말에 70세 청년이 있는가 하면 30세 노인이 있다는 말이 있다. 우리 사회에는 언제부터인가 마치 나이가 많으면 수구 세력으로 매도하거나 잘해야 보수 정도로 평가하는 반면에, 젊으면 신선하고 개혁적인 집단으로 과대 포장하는 경향이 지배하고 있다.

그래서 선거 때가 되면 젊은 피를 수혈해야 하느니 온갖 법석을 떠는 모습을 쉽사리 볼 수 있다. 아마도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하다 보니 사상이나 사고 등에 있어서도 같은 맥락에서 판단한 것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한다. 고정관념과 선입견, 그리고 편견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고 하는 말은 바로 이런 경우에 적용되어야 한다.

그러기에 본인은 한 순간도 나이를 보고서 판단한 경우는 없다. 오히려 나이가 많을수록 풍부한 경험과 경륜을 통해서 어떤 문제에 대한 현실적 해결 방안과 거기에서 더 나아가 다음 방향이 무엇인가 하는 모습도 발견할 수 있었다.

또한 청년들에게는 때론 파격적인 발상과 관념에서 신선미도 볼 수 있을 때 말 그대로 청년 정신을 보는 듯해서 안도를 하였다. 비록 고령의 나이지만 이러한 청년 정신을 갖고 있는 여성 두 분을 최근에 업무와 관련하여 각각 다른 기회에 만나는 행운을 가졌다. 한분은 인천상륙작전의 영웅이자 초대 해군참모총장과 국방장관을 역임한 손원일 제독의 미망인인 홍은혜 여사이다. 손원일 제독은 우리 인천보훈지청이 지난 9월 인천상륙작전을 기념해 이달의 국가유공자로 선정된 인물이다.

홍 여사는 90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서화전을 개최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과거 손 제독이 1960년대에 서독에서 재외공관장으로 근무할 당시 우리나라 경제가 어려워서 경제차관을 성사시킨 사실 등을 상기시키면서 당시 수도인 본(Bonn)에 주재하는 75개의 각국 대사 부부들과 교유했던 일을 회고 하였다.

유창한 영어 실력을 겸비한 홍 여사는 지금도 대화 중에서 자연스럽게 영어식 표현이 흘러 나왔다. 현재 서울 대방동 해군본부 부근 아파트에 거주하는 홍 여사는 해군의 어머니로 불릴 만큼 해군에 대한 지극한 애정을 갖고 있다. 현재는 몸이 과거 같지 않지만 초라하게 보이는 70대 할머니를 볼 때 마다 당당하지 못한 모습에서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고 한다.

다른 한 분의 여성은 동인천역 부근에서 평안수채화의 집을 운영하면서 직접 그림을 가르치고 있는 올해 83세의 박정희 여사이다. 박 여사의 부군은 내과 전문의인 유영호 선생으로 평생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선행과 봉사의 삶을 실천해 온 것으로 유명하다. 최근 박 여사에 대한 내용이 TV 프로그램에 소개되었는데 그 중에 박 여사의 선친인 송암 박두성 선생이 일제 강점기에 맹인들을 위해서 점자를 보급하였고 그 중에는 독립선언서를 점자화하여 맹인들에게도 독립의식을 전파하는데 일조를 하였다고 하여 독립운동가 가족으로 신청하도록 안내하기 위해서 만나게 되었다.

두 분에게서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로 독실한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하여 사랑을 실천해 오고 있다. 근 100년 가까이 집안 대대로 신실한 종교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점을 자랑으로 여기면서 “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정신을 실천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둘째로 선각자적 여성의 모습이다. 홍 여사는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박 여사는 서울대 전신인 경성제대를 졸업한 당대 최고 지성의 소유자로 그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지식을 연마하여 지금도 누구 못지않은 지성미를 풍기고 있다.

셋째로 평소의 소질을 부단히 계발하고 있는 점이다. 두 분 다 서화전을 개최할 만큼 예술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점이 젊게 사는 한 가지 방법이란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권 율 정

인천보훈지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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