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농업 살리기’ 정부가 온힘 쏟아야

얼마 전 올해보다 6.5% 증가한 221조원 규모의 내년 예산안이 발표되었고, ‘119조 투융자계획’과 쌀소득직불제 등의 야심찬 계획을 골자로 4.2% 증가한 8조 8천억원 규모의 농림부 예산도 발표됐다.

그러나 추곡수매가 폐지되고 공공비축제가 처음 실시되는 올해 정부의 의지를 비웃기라도 하듯 산지의 쌀값은 작년보다 15%이상 하락하여 수확기 농촌은 예년의 시름에 잠겨있다.

하지만 농업이외의 산업부문은 상황이 많이 다른 듯하다. 종합주가지수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가운데 다음 달에는 부산에서 APEC(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 정상회담이 열린다. 비난을 감수하고 농업인들은 이 대회장에 대규모 인원을 조직하여 쌀수입개방 국회비준 저지를 국민에게 알리기 위한 농민대회를 열 계획이라고 한다.

잘 알려진 바대로 일부 농민단체와 일부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쌀수입국회비준의 재고(再考)를 주장하고 있다. 이들의 이런 주장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경제논리가 결여된 전근대적인 발상’정도로만 치부되었으나, 최근 중국산 저질 농산물 파동 때문에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필자의 생각엔 우리 쌀과 농업을 지키겠다는 의지는 정부와 농업계의 의지는 별반 다를 것이 없으나 그 해법을 정부는 투자 증진에, 농업계는 농업에 대한 제도 전환에 중점을 두고 있는 점에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농업을 기반으로 한 회사에 20년을 넘게 근무하며 청춘을 보낸 필자의 경험으로는 제도 개선 없는 투융자 확대는 재고되어야 한다. 정부는 그동안 수많은 혈세를 농촌을 살린다는 명분으로 쏟아 부었다. 그 정책의 결과 지금 전국의 농촌에는 도산해 뼈대만 남아있는 유리온실이 즐비하며, 과잉 생산과 국내 농산물 유통구조 등을 감안하지 않은 일괄적인 투자는 결국 농가별로 수억원의 빚더미를 남겨줬다.

이런 과정을 고스란히 온몸으로 겪어온 농업인들로는 쌀시장개방효과를 상쇄하기 위한 정부의 투자증가보다는 농업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의 개선이 선행되기를 바랄 것이다. 선진국일수록 세계화 추세 속에서 규제완화와 자율경쟁의 가속화에도 불구하고 농업을 지키기 위한 제도적 보완책은 오히려 강화되고 있음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겉으론 세계화를 외치고 있지만 미국은 1996년 농업법으로 농지보호 프로그램을, 프랑스는 1999년 도시계획을 농민의 의견을 수렴토록 하는 신농업기본법을 정비하는 등 농업에서만큼은 ‘보호무역’에 가까우리만치 엄격한 보호를 하고 있다.

우리와 사정이 비슷한 일본조차 농지전용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는 사실은 농업이 무역의 논리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필자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피력코자 한다. 우리 농업을 지키겠다는 의지는 농업계와 정부가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하나 그 문제를 해결하는 접근방식 자체는 정부의 입장이 다시 한 번 고려되기를 바란다.

우리 농업이 정녕 투자금액이 부족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며 우리의 농업인이 과연 지원금을 달라고 아우성인 것인가 하는 자체에 정책의 초점이 맞추어 졌으면 한다.

농업을 지키기 위한 대안은 농업인이 땀 흘려 일한 대가를 제대로 받을 수 있는 체계를 확립하고 농업인이 지원의 대상이 아니라 엄연한 사회의 일원으로 대접받을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하는 것이라 하겠다.

119조 투융자 계획이 농촌에 또다시 흉물스럽게 텅 빈 유리온실을 농촌에 안기는 결과를 낳지 않도록 다시 한 번 12월에 있을 DDA(도하개발아젠다)협상에 최선을 다한 후 우리 농업을 살리기 위한 대책을 강구해 줄 것을 우리 정부에 촉구한다.

/류 석 희 농협중앙회 고양시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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