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세계 최강의 IT국가다. 세계 곳곳에서 핸드폰을 사용하는 네 사람 중 한 사람 꼴로 한국산 핸드폰을 사용한다. 새로운 상품이 출시되기 무섭게 팔리는 뜨거운 수요와 트렌드에 민감한 고객의 욕구에 맞추다 보니 핸드폰 업계는 한 달에 수 백개 종의 핸드폰을 내놓을 만큼 시장이 커지고 기술이 발달할 수밖에 없다.
몇몇 외국 회사조차 새로운 상품이 만들어지면 한국에서 제일 먼저 반응을 볼 만큼 새로운 것에 대한 한국인의 왕성한 호기심 또한 한국의 속도를 가속화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다. 인터넷 보급률과 인터넷 속도 역시 세계 최고다. 늦는 걸 절대로 기다리지 못하는 한국인의 빨리빨리 근성 때문이다.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으로 초토화된 땅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 고도의 경제성장과 발전을 이뤄 50년 안에 우리나라 경제력을 세계 13위에 올려놓은 공로는 역시 빨리빨리 마인드 덕분이다.
그러나 빨리빨리 문화가 순기능만 한 것은 아니다. 빨리 만드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다보니 부실한 공사로 삼풍백화점이나 성수대교 같은 대형 참사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수 백년 동안 서서히 경제속도와 의식속도를 균형있게 발전시켜 안정화된 서구와 달리 50년동안의 가파른 경제성장에 비해 의식의 변화는 느리게 변하고 있어 불균형을 초래하기도 한다.
조선시대부터 우리나라의 지배이데올로기였던 유교문화와 서양의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나라를 간섭하면서 들어온 자본주의 문화가 혼재돼 새로운 문화로 단단히 뿌리내릴 시간없이 계층간·세대간·지역간에 가치관이 충돌하고 있다.
기계화된 몸은 자동으로 움직이지만 ‘왜, 무엇을 위하여’ 라는 당위성과 이유를 스스로 납득하지 못한 채 빠른 세상의 속도에 맞추다보니 사회의 기준과 잣대에 맞추는 획일적 사고관과 가치관에 매몰되어 살아간다.
조급하고 기다리지 못하고 뭐든지 빨리빨리 하다보니 휴식을 취하는 것도 낯설기만하다. 잠시만 쉬고 있어도 견디지 못하고, 휴일이면 온 몸을 불사를만큼 화끈하게 놀아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오히려 휴일이 스트레스다.
이런저런 일로 수많은 사람을 만나면 겉모습만으로 평가를 한다. 상대방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어떤 사람인지 알아갈만큼 시간이 없다. 사회적 잣대로 사람을 판단하다보니 ‘남에게 보여지는 나’와 ‘내가 보는 나’의 간극은 상당한 차이가 난다. 프랑스 실존작가 시몬느 드 보봐르는 ‘남에게 보여지는 나’와 ‘내가 보는 나’의 간격이 적을 때 사랑 혹은 우정이 생기는 것이라고 정의를 내린바 있다. 그러나 빨리빨리 문화에 젖은 사람들에게 진실한 사랑과 깊은 우정을 나눌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다.
식민지시대와 전쟁으로 아무것도 없는 이 땅에 기적 같은 성장을 이룬 일등공신은 우리 국민의 근면함, 추진력, 빨리빨리 마인드다. 절대 평가절하 되어서는 안될 덕목이다.
그러나 이제 살아남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올인해야만 했던 시대는 지났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지만, 빈부격차는 더 심해지면서 상대적 빈곤감, 박탈감, 소외감으로 사람들은 여전히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다. 또한 세상의 빠른 속도에 휩쓸려 우리나라 전통적 가치와 미덕, 선(善)은 사라졌다.
이제는 물질적 추구가 자연파괴나 천재지변 같은 자연재해나 국가간의 전쟁, 사람들간의 미움이나 다툼으로 더 큰 재앙을 불러일으키기 전에 정신적인 회복을 해야 할 때다. 20세기가 경제적 패러다임이 완성된 시기였다면, 21세기는 황폐화된 우리의 정신을 되찾아 줄 문화의 세기, 영적인 세기로 만들어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 국 진 신흥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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