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이인제, 김대중의 함수 관계는 오늘의 노무현과 유관하다. 김영삼 말대로 노무현을 정계에 ‘픽업’한 것은 그 자신이지만 무원고립의 정치고아였던 노무현에게 정치 영양분을 공급한 것은 김대중이다.
1991년 9월 야권 통합의 민주당 출범 당시, 김대중 공동대표 밑에서 노무현은 초대 대변인을 지냈다. 1992년 총선, 1995년 지방선거, 2000년 총선에서 호남당의 영남 후보로 나서 연거푸 낙선했다. 김대중은 이런 노무현을 그때마다 보듬었다. 1992년 총선 낙선 이듬해엔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에서 47세로 최연소 당선자가 되게 했다. 1995년 지방선거 낙선후엔 1998년 서울 종로 보궐선거에 국민회의 후보로 내세워 금 배지를 달게했다. 2000년 총선에서 또 낙선한 그해 김대중 대통령은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기용했다. 2001년 10월엔 당내 대권 예비주자와 격을 맞춰주기 위해 김대중 민주당 총재는 노무현을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임명했다.
당내 경선에서 이인제 대세론을 깬 노무현 돌풍의 광주(光州) 이변이 일어난 것이 2002년 3월16일이다. 지각변동의 진앙이 김대중인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김대중 후광에 힘입어 호남에서 90%가 넘는 몰표가 쏟아져 노무현 대통령이 나올 수 있었다.
이는 이인제에 대한 팽(烹)이었다. 김영삼에 대한 배신이기도 했다. 1997년 12월 이인제가 김대중, 이회창과 대권을 다툰 것은 자신의 정치적 야심이기도 하지만 정치사부(師父) 김영삼의 영향이 컸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이미 대통령을 지낸 마당에 정적이었으며 민주화 동지인 김대중에 대한 애증(愛憎)이 새로웠다. 그는 괘씸죄가 심한 걸로 여긴 이회창보다는 김대중을 의중에 두었다. 이 과정에서 모종의 각서를 김대중이 김영삼에게 써주었다는 ‘각서설’이 정가 이면에서 있었지만 확인된 바는 없다.
어떻든 김영삼의 원려로 김대중이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인제가 얻은 4백92만5천591표는 김대중(1천32만6천275표)에게 이회창이 불과 39만557표 차이로 패배한 9백93만5천718표의 절반에 육박했다.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 민주당이 이인제의 국민신당과 합당한 것도 차기에 대한 묵계가 있었다고 보는 관측이 유력했으나 버림받았다. 이인제는 팽 당할 무렵, 청와대 담판 시도가 철저히 봉쇄됐을 만큼 오히려 권력의 핍박을 받았다.
김대중의 노무현 선택은 순전히 대북 관계에 있었다. 남북 관계에 상호주의와 중도 우파를 말하는 이인제 보다는 좌파 성향의 노무현이 미더웠던 것이다. ‘남북 관계만 잘 되면 다른 건 깽판나도 좋다’는 노무현 후보 시절의 말이 이에 연유한다. 6·15 공동선언을 역사적 업적으로 각인하려는 김대중으로서는 오로지 대북관계 계승만이 후계자 선택의 잣대였다.
하지만 배신은 이어진다. 그러한 노무현 대통령에게 김대중이 처음 배신을 당했다고 생각한 것이 2003년 3월 여소야대 국회가 통과시킨 ‘대북송금특검법’ 공포다. 동교동측이 바란 거부권 행사의 기대를 저버린 것은, 김대중 고리를 끊고 정면돌파를 시도한 노무현 대통령의 의지였다. 그러나 김대중의 입장에서는 대북송금 5억달러의 비밀을 이인제는 안 묻어 주어도 노무현만은 묻어줄 것으로 알았던 믿음이 깨진 건 경악이었다.
두 번째는 열린우리당 창당이다. 노무현은 민주당의 적자임을 자임, 이인제를 서자 취급하면서 ‘민주당의 정통성을 계승하겠다’고 당내 후보시절에 수 차 말했다. 그랬던 그가 개혁세력의 결집을 표방, 민주당을 낡아빠진 당으로 침뱉고 분당으로 동강냈다. 김대중을 욕보였다.
세 번째가 이번에 말썽이 된 도청 파문이다. ‘또 치욕을 주느냐’는 것이 김대중을 중심으로 하는 동교동측의 분노다. ‘김대중 정권 때도 국정원이 도청했다’는 발표가 모독이나 음모 공작은 아니라고 변명해도 곧이 듣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두 아들을 8·15 특사 하는 등 김대중 달래기에 신경을 쓰는데도 노여움을 풀지 못하고 있다.
문제의 도청 테이프가 노무현 대통령 말대로 ‘파헤친 게 아니고 불거져 나왔다’해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건 틀림이 없다. 이미 도청 테이프 존재를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그로서는 공개가 이롭다는 이해득실의 계산이 나와있는 것 같다. 구악(舊惡)을 확 쓸어내는 새판 짜기의 계기로 삼을 요량이지만 신악(新惡) 또한 구악 못지 않다. 배신은 또 배신을 부른다. 대권을 둘러싼 배신의 철학이 참 무섭다.
/임 양 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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