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복중한담(伏中閑談)

참 덥다. 낮이나 밤이나 연일 후텁지근한 찜통속이다. 열대야에 견디다 못해 밤새 창문을 확 열어놔도 그게 그 것이다. 누가 물었다. “아무 쓸모없는 모기는 왜 생겼습니까?” 조물주는 웃으며 대답했다. “쓸모없긴, 그 거라도 있어야 밤 손님을 막지!” 문 열어놓고 잠자기 마련인 여름철 밤에 모기에라도 물려야 실물을 막는 인기척을 느낄 수 있다는 옛 우스갯 소리다.

자동차 배기가스 같은 가스로 인한 지구의 온난화로 여름 날씨가 더 덥다고 하지만 여름은 원래 더운 게 제격이다. 지구의 온실효과로 북극과 남극 양극 지방의 거대한 빙벽이 녹아 해수면이 높아간다고 전문가들은 재앙을 걱정한다. 지구촌 곳곳이 가뭄과 홍수 등이 잦은 천재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렇긴 하지만 이 여름에 모질게 겪는 34℃의 불볕 더위가 예전이라고 없었던 건 아니다. 수원기상대 관측 이래 가장 높은 것으로 기록된 1994년 7월23일의 37.3℃는 올 여름 들어 가장 높은 지난 23일의 34.1℃ 보다 무려 3.2℃나 높다. 올 여름 같은 더위는 수 십 년 전이나 선대에도 있었던 더위다. 그런데 선풍기도 없어 부채 하나로 여름철을 나던 때에 비해 지금은 많이 다르다. 선풍기는 기본이고 더러는 에어컨을 두고도 더위에 호들갑을 떠는 것은 생활구조의 차이다. 한옥 중심의 도시가 아파트 등 시멘트 집 중심으로 바뀌면서 아스팔트 시가지로 탈바꿈했다. 벽이 황토벽이던 한옥은 그 자체가 피서지였다. 맨땅 마당은 낮엔 물을 뿌려 납량을 하곤 하였고, 밤엔 대나무평상에 가족이 모여앉아 담소로 더위를 식히곤 했다. 들어 앉으면 시멘트벽 투성이고 나가면 아스팔트 투성인 것이 괴물화된 거대도시의 현대 모습이다. 폭염에 달궈진 시멘트 집이나 맨땅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아스팔트 길 폭염의 열기에 갇혀사는 현대인들은 체감 온도가 더 높을 수밖에 없다. 자연환경과 멀어진 인공환경의 재앙이다.

자연은 여름다운 여름을 좋아한다. 푹푹 찌는 여름 날씨여야 오곡백과가 무럭 무럭 자란다. 논 물은 손을 넣으면 뜨거울 만큼 쩔쩔 끓어야 시퍼런 벼의 성장이 아침 저녁으로 달라진다. 밭 곡식은 콩밭을 매는 호미 끝마다 땅 김이 코가 막히도록 푹푹 솟아야 좋은 열매를 맺게 된다. 여름은 가을의 결실을 준비하는 계절이다. 그 에너지가 바로 쨍쨍 내리쬐는 태양의 뙤약볕이다.

삼복 중이다. 한 해 가운데 가장 더운 때다. 이 달에 초복과 중복이 있었다. 초복은 하지(夏至)에서 세 번째 경일(庚日), 중복은 네 번째 경일, 말복은 입추(立秋)에서 첫 번째 경일이다. ‘경’은 ‘갑·을·병·정·무·기’로 나가는 십간(十干)중 일곱 번째를 말한다.

그런데 절후가 일러 초복이 일찍 오면 월복(越伏)이란 게 있다. 올해는 월복이 든 해다. 초·중·말복이 열흘 간격이므로 여느해 같으면 지난 25일 중복에 이어 열흘만에 말복이 돼야 하는 데 올핸 월복이 끼어 스무날만인 8월14일이 말복이다. 삼복 더위가 그만큼 더 길어진다.

복날은 벼가 한 살씩 나이를 먹는 날이다. 줄기마다 세 마디가 있는데 복날에 마디가 한 개씩 더 생긴다. 세 살을 먹어 세 마디가 생겨야 이삭이 패게 된다. 그러니까 벼는 복 중에 성장을 다 하고 삼복이 끝나면 결실을 위한 출수로 들어간다. 여름철 이상 저온은 이래서 두려운 천재다. 덥지않아 좋다며 이상 저온을 반겨서는 흉년들어 배곯기 딱 십상이다. 여름철에 더위를 저주하는 것은 자연에 대한 반역이다. 그래서 자연에 감히 반역은 못해도 더운 것은 역시 덥다. 더운 데 안 덥다고 한다면 맛이 간 사람일 게다.

피서가 한창이다. 휴가철이다. 피서가기 위한 것이 휴가다. 피서 떠날 형편이 안 되어 휴가를 틀어박혀 보내는 ‘방콕 가장’들은 꼬마들에게 체면이 안 서기도 한다. 산하가 온통 오염되어 가까운 곳에서 멱감는 건 고사하고 족탕을 즐길 마땅한 곳도 찾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피서를 떠난다고 더위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피서길 또한 무덥긴 마찬가지다. 다만 기분일 뿐이다. 피서를 가든 말든 더위를 잘 수용할 줄 아는 것이 생활의 지혜다. 그리고 이의 요체는 마음 가짐에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무엇보다 삼복 복 중을 건강하게 넘기는 것이 상지상책이다.

/임 양 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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