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남편 부엌데기

폭력 남편의 가정엔 평화가 있을 수 없어도 폭력 아내의 가정엔 평화가 있을 수 있다. 부부간에 어느 쪽이든 폭력의 수단화는 아주 비겁한 것이지만 차이는 이토록 엄청나다. 이렇긴 해도 남편 폭력은 물론이고 아내 폭력도 없으면 가정의 평화가 더 할 것이다.

여성의 사회참여 폭이 넓어져 간다. 모든 직종에 여성이 못하는 게 없다. 남성 비율보단 많이 떨어지긴 하지만 앞으로 점점 높아질 것이다. 최근의 예로 외무고시 합격자 가운데 여성이 약 절반을 차지하고 수석도 여성합격자가 차지했다. 흥미로운 건 여성의 사회 참여가 확대되면서 가사의 남성 참여가 촉구되고 있는 점이다. 가사활동을 여성 전담으로만 여겼던 인식에 변화가 오고 있다.

물론 아직은 그렇다. 인식의 변화에 비해 실행은 아주 낮다. 가사활동을 둔 통계청 조사는 한국 남성들에게 일깨우는 점이 많다. 지난해 맞벌이 부부 중 여성이 가정관리에 쏟은 시간은 하루 평균 2시간 47분인 데 비해 남성은 20분에 불과했다. 전업주부가 가정관리에 들인 시간은 하루 평균 4시간 19분인 반면에 전업주부의 남편이 가사관리를 거든 시간은 겨우 15분에 그쳤다. 남편의 가사시간 15~20분은 집안 청소 한 번 제대로 하는 시간도 안 된다.

결혼 이후 설거지나 장보기, 세탁, 다림질, 변기 청소 같은 걸 한 번도 안 해 본 남편들은 크게 반성해야 한다. 남자가 할 일, 여자가 할 일이 따로 있는 데 무슨 소리냐고 해서는 안 된다.

스페인을 예로 든다. 스페인은 전통적으로 우리보다 더한 남성 중심의 사회다. 남편의 동의가 있어야 아내가 은행에 계좌도 개설하고, 계약서도 남편의 동의가 있어야 작성하고, 결혼한 여성은 대학 진학도 남편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 등 일상생활에 제약이 많았다. 법률로 정한 이같은 여성 규제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한 것이 불과 20여 년 전이다. 이러했던 스페인 사회에 남자가 할 일, 여자가 할 일이 따로 없는 가사활동 공동부담이 ‘결혼생활에 관한 법’으로 제정됐다. 남편도 집안 청소나 설거지 등을 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지워졌다. 이 틈을 타 약삭빠른 가전업계에서 부부가 번갈아가며 각자의 지문으로 작동되는 공동 세탁기를 출하시켰는 데 이는 남자의 작업량을 가늠하게 된다.

우리 사회에선 법제화까진 몰라도 변화의 시대상에 걸맞는 실행 의지를 다질 필요는 있다. 이를 위해 남성들의 의식이 달라져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여성들의 생각도 달라져야 한다. 특히 성장한 자녀를 둔 여성들은 더 그렇다. 가령 아들이 며느리를 거들어 설거지하는 것은 밉게 보고, 사위가 딸을 거들어 설거지하는 것은 곱게 보는 두 가지 잣대로 재서는 안 된다.

남편의 가사활동은 정말 좋은 체험이다. 가정의 소중함을 몸으로 터득하는 것이 남편의 가사활동이다. 예를 들어 이왕 빨래를 하려면 세탁기에 돌리기 보다는 손으로 빠는 것이 더 좋다. 비누질해가며 빨래판에 문지르고 헹구는 과정에서 가족이 뭔가를 깊이 생각하게 된다.

필자는 이런 말을 하긴해도 참 부끄럽다. 아내의 생전에는 나 자신도 가사활동엔 빵점이었기 때문이다. ‘락스’가 무엇인 지도 몰랐다가 ’락스’로 변기를 세척하게 되면서 항상 깨끗했던 연유를 비로소 알았다. 빨래 얘기는 따로 사는 손주들이 놀러와 자고 가면서 벗어놓은 옷을 빨며 느꼈던 얘기다.

생각해 보면 남편의 가사활동 보태기는 가정의 행복을 더 한다. 세상의 남편들, 특히 젊은 남편들에게 당부한다. 아내의 가사활동에 즐거운 맘으로 거드는 것은 가정의 평화를 일군다. 성장하는 자녀들의 정서교육에도 좋은 영향을 줄 것으로 생각된다.

사람 살이에는 마음 먹은대로 잘 안 되는 일이 참 많다. 돈 버는 일이 이런 것 중의 하나다. 돈은 마음대로 안 벌려 그런다지만 아내의 가사돕기는 남편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지금의 집안 구조는 옛날과 다르다. 부엌데기가 따로 없다. 남편 부엌데기, 아내 부엌데기가 서로 돕는 가정에선 폭력 남편도 폭력 아내도 있을 수가 없다.

/임양은 주필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