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갈 곳 없는 장기복무 제대군인들

제대를 앞둔 군인들은 하루가 한달처럼 길게 느껴진다. 제대를 하면 부모님께 효도해야지, 애인과 매일 만나야지, 돈 많이 벌어 결혼해야지, 복학해서 공부 열심히 해 졸업하면 좋은 직장에 취직해야지 등등 궁궐을 몇채씩 짓는다. 희망이 밤하늘의 별빛처럼, 부대 밖의 들꽃처럼 피어난다.

그러나 병(兵)과는 달리 준사관이나 장교로 10년 이상 장기복무하던 군인들은 다르다. 계급정년으로 군문을 나서는 제대자들은 부대 밖 세상이 바로 생활전선이다. 대부분이 당장 취업을 해야 하는 강박관념에 사로 잡힌다.

이렇게 제대하는 군인의 수가 매년 3천여 명에 이른다. 이 중 취업에 성공해 사회에 안착하는 사람은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800~900명에 불과하다. 그것도 예비군 지휘관, 비상계획관, 군무원 등 군 관련직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나머지 2천명 중 상당수는 사회에 흡수되지 못한다.

군은 조직 특성상 정년이 소령 45세, 중령 53세, 대령 56세로 다른 공무원(6급이하 59세, 5급이상 61세)에 비해 빠르다. 문제는 군(軍)이라는 특수조직에서 20 ~ 30여년간 몸을 담아온 이들이 제대로 된 취업 교육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사회로 몰린다는 점이다. 오지에서 20년 이상 근무하다 보면 사회에 대한 정보와 지식이 떨어져 제대 후 적응이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개인적인 인맥을 통하지 않고서는 기업에 취업하기가 쉽지 않다. 전문기술 습득이나 기능자격 취득도 어렵다.

기업들의 위관급 장교 선호도 장기복무 제대군인들의 사회안착을 어렵게 한다. 제대군인지원에 관한 법률(7조)에 따르면 20인 이상 고용업체는 군 장기복무자나 보훈대상자 등을 의무고용토록 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보훈처가 수도권 35개 기업을 조사한 자료(2002년)를 보면 의무고용 비율(3~5%)을 지킨 업체는 한 군데도 없다. 보훈대상자는 고용률이 그나마 1.8%로 체면치레를 했지만 장기복무자는 0.016%에 불과하다.

제대 후 시작한 사업이 망해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20여년 간 군생활을 하다 소령으로 예편한 A씨는 3천만원을 들여 치킨점을 차렸으나 적자로 가게문을 닫았다. 설상가상으로 가압류 통보도 받았다. 간신히 지인을 통해 건설현장 소장직을 얻었지만 이마저도 임금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그만 뒀다. 그 와중에 가계에 도움을 주겠다며 방문판매에 나섰던 부인은 2천만원 빚만 졌고 이 때문에 우울증과 암으로 드러누웠다. A씨는 계속되는 실패에 월세방으로 밀려났고 외동딸마저 학비가 없어 대학을 휴학시켰다. 다른 영관급 제대자 B씨는 막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사업에 뛰어 들었다 퇴직금을 몽땅 날린 탓이다. 취직자리를 구해보려 했지만 경영학 석사에 고급장교 출신이라는 것이 되레 걸림돌이 됐다. 어쩔 수 없이 고졸에 병출신이라고 속여 자가용 운전기사로 취직했지만 불황에 월급이 끊겨 막일에 몸을 맡겼다. 하지만 이마저도 노는 날이 많아 걱정이 태산이다.

또 다른 영관급 C씨는 중소기업 인사관리직 제의를 받고 있었음에도 대기업 보안담당직이 비어있다는 소문을 듣고 대기업에 지원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나 알고보니 대기업의 보안담당은 자신의 경력과는 상관없는 정보보안 전문가여서 중소기업쪽으로 생각을 다시 바꿨다. 하마터면 중소기업 일 자리도 잃을 뻔 했다. C씨의 경우는 눈높이를 낮춰야 할 사례다. 중·대령 전역자는 군에서의 위치때문에 고급 직위를 희망하는 경향이 있어 취직에 낭패를 볼 우려가 더욱 크다.

얘기하자면 끝이 없지만 이처럼 대다수의 제대군인들이 어렵게 살고 있는 것은 국가의 책임이 없지 않다. 외국 특히 미국과 대만의 경우, 장기복무제대자가 군 경력을 살려서 취업을 할 수 있도록 교육과 취업 알선 및 지원분야를 완벽하게 갖추었으나 우리나라는 지난해 문을 연 국가보훈처 산하의 제대군인지원센터가 고작이다. 그것도 2주일 정도 실시하는 사회적응교육, 직업전환교육이 전부다. 오죽하면 전역자들이 군대시절을 그리워하겠는가. 제대군인들이 사회에서 방황하고 절망케 해서는 안된다. 제대가 곧 제2의 새출발이어야지 인생고해가 돼서는 안된다. 장기복무 제대군인들이야말로 국가에 충성하고 국민을 위하여 헌신한 애국자들이다. 제대군인들의 공훈을 녹슬지 말게 하라.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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